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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누리야 ㅣ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1
양귀자 지음, 조광현 그림 / 살림어린이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누리는 아홉 살 때에 훌륭한 작곡가였던 아빠를 잃고, 엄마도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누리를 찔레마을에 버리고 홀로 어디론가 떠난다. 누리는 누리의 이모는 가난하고, 작은 아버지는 부자지만 가서 쭈그러들며 살고 작은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의 투정 속에 살 수 없다고 결정을 내린다. 누리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누리를 고아원으로 보낼려고 하지만, 누리는 엄마를 다시 만나서 같이 살기를 바랄 뿐이다. 누리의 친한 친구인 필우에게만 이야기를 하고 아무도 몰래 집을 나온다. 예전에 엄마랑 같이 심었던 수정돌이 있는 자리에 엄마한테의 편지를 한장 남겨 둔 채로. 하지만 누리가 태어난 곳, 서울은 찔레 마을 처럼 편안하고 마음을 푹 놓고 엄마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엄마를 찾으며 돌아다니다가 강강자 언니를 만나 냉면집에서 일도 하고, 강자 언니가 떠나고 주인 할머니의 구박도 심해져 냉면집을 나온다. 하지만 누리는 점박이 아저씨라는 아저씨한테 속아 술집에서 아이들에게 곡예를 시키는 곡예단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는 이 층에서 아이들을 잠궈 놓고 밥은 감자조림, 김치 등등 반찬 세 가지에 밥이다. 그것도 매일 같은 식단이다. 누리는 여기에서 점점 더 야위어 간다. 한 번은 물을 마시며 간다는 핑계로 빠져나갈려고 했다가 점박이 아저씨한테 들켜 사정없이 매를 맞고 온몸을 맞았다. 그 때 점박이 아저씨에게 누리가 도망치는 것 같다고 말한 박기사가 미안해 하며 누리의 부탁, 곡예단에서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경찰이 출두하고, 점박이 아저씨와 아줌마는 감옥형이 내려졌다. 누리는 박기사 아저씨가 아는 사람에게 맡겨졌는데, 다행이 마음씨가 착해서 엄마를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겨울까지 트럭에서 방랑자 생활을 하며 엄마를 찾는동안, 강자언니를 다시 만나고 강아지 돌이도 만나게 된다. 강자 언니와 아저씨가 결혼하고, 그들의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아저씨의 동생이 걸렸던 병에 걸리게 된다. 누리는 병원비라도 벌기 위해 전교 1등이던 학업을 야간학교로 옮기고 공장에 다니지만, 정숙이 언니라는 공장 언니한테 월급 통장을 뺏기고 공장 사장한테 걷어 차여 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다행이 의사가 좋은 분이라 누리의 사정을 알고 병원비는 면해 주고, 괴팍한 한 노인의 가정부 일까지 소개시켜 준다. 그 노인이 너무 괴팍해서 여태 왔던 가정부들은 1주일을 못 넘기고 떠나갔지만, 누리는 할아버지를 항상 웃음으로 대해 줬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돈 덕분에 학교도 다시 갈 수 있게 되고, 필우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를 만난다. 할아버지 댁에서 몇 걸음만 가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는 다시 재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였었다. 누리는 엄마와의 다시 행복한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 누리가 엄마한테 자신이 딸이라는 것을 밝히면 엄마의 재혼 가족이 발칵 뒤집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속앓이를 해서 누리는 다시 야위어 갔다. 엄마가 준 찹쌀 경단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이사를 갔다. 누리는 너무나 슬펐지만, 할아버지와 여기서 살기로 했다. 그 결심은 여태 누리가 자라오면서 배워왔던 바른 선택이었다. 이 동화를 읽고 나서 누리의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 엄마가 누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화가 끝나고 뒤에 작가 양귀자 선생님이 옮겨놓은 누리 엄마의 편지를 읽고 더 감동을 받았다. 이 이야기가 실제라는 것이다. 누리 엄마도 누리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좀 더 빨리 알지 못한 것은 엄마가 찔레마을의 집을 나온 뒤에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 이었지만, 누리를 본 후 다행히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도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이티에서 난 지진, 그 때문에 가난에 허덕이는 아이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꼭 도와주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열심히 저금해서 꼭 1000원이라도 기부를 해야겠다. 우리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다가 언제 우리도 그렇게 될 자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