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의 공중 호텔 ㅣ 텔레포터
정화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살다 보면 꼭 한 번쯤, 어떤 기억은 지우고 싶어진다.
그날의 눈빛, 말 한마디, 가슴을 쿡 찌르는 감정들.
『비밀의 공중 호텔』은 바로 그 마음에서 출발한다.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이 따뜻하면서도 위험한 제안을 조심스레 건네며 독자를 초대한다.
정화영 작가의 이 작품은 단순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소설을 넘어서, 기억이라는 섬세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공중을 떠다니는 아름다운 호텔, 부드러운 조명, 친절한 안내. 모든 것이 완벽한 이곳에서 주인공 석준은 ‘기억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해질 것만 같았던 이 공간은 점점 낯설고 서늘해지고,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은 ‘지우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동화의 핵심은 핵심은 기억이다. 이 책은 기억을 지운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하지만, 그 상상력은 도구일 뿐, 진짜 이야기는 그 기억이 지워진 후 남는 ‘나’는 누구인가에 집중한다.
이 책이 전하는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다.
"지우고 싶은 기억도 결국 나를 만든다는 것.
그 고통스러운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완성해 간다는 것."
『비밀의 공중 호텔』은 감정의 진폭이 크고, 때로는 어지러운 마음을 품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선물한다. 그리고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는, 잊고 있던 감정의 민감함과 성장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픔, 누구나 겪는 흔들림. 이 소설은 그것을 덮거나 도망치지 않고, 부드럽게 꺼내어 마주보게 해준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작품이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아이들의 감정, 특히 청소년기의 복잡하고 미묘한 내면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다. 석준이라는 인물의 서사는 단순한 모험이나 사건이 아니라, 자아를 마주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기억과 감정을 되짚게 된다.
『비밀의 공중 호텔』은 지우고 싶은 기억 앞에서 망설여본 적 있는 모든 이에게,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말해주는 책이다.
“나는 내가 견뎌낸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러니, 지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비밀의 공중 호텔』은 말한다. 기억을 지우는 건 쉬울 수 있지만, 그 기억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 사람, 그 기억 때문에 성장해온 사람, 그리고 여전히 자기 자신을 찾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조용한 위로이자 질문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