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 은유

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있다. 글재주가 없어서 뭐라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사람이라면 ‘겸손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이 분명한 깊이있는 느낌’ 이랄까. 곳곳에는 줄치고 싶은 멋진 문장이 있고, 가슴도 먹먹하게 하는. 그런 느낌을 나는 주로 정혜윤 작가의 책을 통해 만났는데, 은유 작가의 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워지게 하는지. 이런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필력과 사회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알지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이런 글을 써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을 견뎌왔을까를 생각하니 내 그릇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야기는 현장실습생으로 출근하던 고3 학생 김동준군이 직장 선배의 폭력과 괴롭힘에 자살한 것으로 시작한다. 동준이의 노트, sns, 자기 소개서 속 이야기와 동준이의 어머니, 사회운동을 한 적이 있다는 동준이의 이모, 사건을 담당한 노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지 못하는 한 아이, 특성화고에서 취업을 나갔다가 자살하게 된 한 아이는 우리 교실에 한 명쯤 있을 수 있는 아이가 된다. 노동의 최하층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선이, 실은 계층의 최약자에게로 쏠리는 폭력에 대한 보호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2부에선 생수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사망한 이민호군의 이야기와 특성화고에서 노동인권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 특성화고에 다니는 아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기계고장이 잦았고 위험한 곳이 분명하다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폭탄돌리기처럼 위험을 더 약한 자에게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게 한다. 귀찮고 관심이 없어서, 혹은 해도 안될 것 같은 무기력함 때문에 문제를 외면한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민감성과 감수성이 있어야 다른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그렇다.

얼마전에 만난 언니도 그랬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교사로서의 민감성을 가진 그 언니는 학교의 구조적 모순에 답답해 하고 있었다. 사실 모든 문제는 어쩌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때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냥 나만 참고, 한 쪽 눈 감고 방치하면 그만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아마 이 글을 쓴 작가도 그러지 않을까 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당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고 자신 같은 부모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시스템을 바꾸고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해서 같은 생각을 하게 하고자, 아니 그들에게 시체팔이한다는 손가락질을 하는 짓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고백컨데, 나는 비겁해서 불의를 잘 참고, 강자에게 약하며, 사회적 문제를 캐치하는 민감성과 감수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도덕적 감수성이 뛰어난 책을 읽으면 한없이 부끄럽다. 너무 부끄러워서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치 않게 할 수 있을 의인 10명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어쩌면 한 도시를, 한 사회를 지탱해 가는 것은 자신의 직분을 소명처럼 다하는 10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