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목수정-이런 류의 에세이는 ‘우리나라는 왜 이모냥이지?’ 라는 격렬한 비판에서 시작해 ‘좋겠다, 부럽다, 내 자식에겐 미안하다’는 식의 자조석인 푸념으로 끝나곤 한다. 그래서 어짜라고, 나 혼자 바뀐다고 될 일인가? 그딴건 모르겠고 그냥 난 내자식이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결말에 도달하고 나면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왜 읽었는지에 대한 한심함만 남게된다. 나라전체가 꿈틀대던 촛불 혁명에도 한 번 참여하지 않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지능이 백치에 가까운 나에게 이 책은 좀 과분한 선물 같은 책이었다. 뼈속까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 살면서 누군가의 실패를 개인의 무능이나 불운에 돌려버리는 성공지향적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다.식견이 부족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이 익숙하지 않으니 여러 책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속한 사회나 나의 문화적 배경을 객관적 관점으로 보긴 어렵기만 하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나 의지가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삶에 대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하면된다는 말은 개인을 착취하는 사회제도적 불공정 시스템을 정당화 시키는 기제가 되었음을 말하는 다양한 논의들. 경쟁을 자연스럽게 부추기는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들은 곳곳에 존재한다. 당장 입시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이의 사교육에 대한 내 입장과 선택은 어떠할 것인가? 표면적이지만 그 끝은 교육과 인간에 대한 부모로서의 본질적인 가치관에 닿아있는 이런 질문에 나는 얼마나 대답할 수 있을까. 교육이 바뀌려면 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그것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으로 가능해 질 것이다. 더 나은 변화로의 움직임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계속되어 왔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 지금은 미비하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 나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고 무엇이 옮은 지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지 않을까?경쟁을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실천해본적은 더더욱 없는 나를 반성하게 한 책이었다. 프랑스의 중 2도 말할 수 있는,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나는 말할 수 있고 삶 속에서 지켜나가고 있는가? 깊게 생각하고 반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