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를 읽는 것이고 글자를 읽는 것은 '인식'이라는 작용을 거치게 됩니다. 책읽기가 중요한 이유는 인식이라는 틀이 개인의 정신적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 구실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이에게는 이러한 인식적 틀의 요구가 오히려 장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서적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서적 체험이 한 개인의 정신적 원형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어른들은 책이 없어도 자연에서 뛰어놀고 호흡하고 또래집단들과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정서적 교육의 효과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정서적 체험이 토대로 쌓였을 때 지식과 인식은 올바른 구실을 하며 개인의 정신사를 성숙시켜 갑니다.그러나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이러한 살아 있는,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원체험을 하기 힘듭니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과 구조가 너무나 많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어린이들에게 자연은 하나의 그림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그림을 통해서라도 되도록 많이 체험시켜 주어야 합니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정서적 충격을 가장 많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미지입니다. 현란한 영상과 빠른 미디어 매체 속에서 살아 가는 아이들에게 신비한 이미지의 체험은 다른 무엇보다도 큰 정서적 원체험이 될 것입니다.에릭 로만의 글자 없는 그림책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은 어린이들에게 글자를 읽히는 것보다 더 큰 정서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미지도 이미지 나름입니다. 효과없는 이미지는 어린이에게 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선입관만 안겨주게 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범상치 않습니다. 정적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동적인 이미지에 뒤지지 않는 느낌을 전달해 줍니다. 이것은 아마도 심리적으로 복합적인 느낌을 자아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일회적이고 단선적인 시간들을 뛰어 넘습니다. 현실의 창문에서 박물관으로 그리고 다시 공룡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시간의 거슬러 올라감, 혹은 중첩은 시간 뿐만아니라 공간과 세계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비상의 충동이 내재된 '새'라는 상징적인 동물을 통해 그 넘나듦은 더 활기를 띄게 됩니다. 그리고 그림의 질감에서도 이런 정서적 느낌을 부가시키고 있습니다. 눈동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세밀히 채색된 것과 갈색톤의 색감이 주는 느낌은 과거와 현실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편안히 넘나들도록 하게 해줍니다.어쩌면 아이들에게 이 박물관은 이상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환타지는 상상의 세계입니다. 그것도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현실과 현실 바깥이라는 구분 때문에 만들어진 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환타지도(현실과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아주 중요한 삶의 모습입니다. 글자 없는 그림책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은 이런 면에서 환타지의 세계를 삶의 중심에까지 끌어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현실과 허구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이미지를 통해 지워 버립니다.이 그림은 어린이들에게 매니아를 몰고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그 어떤 좋은 말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그림책이 한 개인의 삶 전체를 쫓아다닐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환타지를 다룬 소설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운몽>이 그것인데 이런 우리의 소설들도 이미지로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체험시켜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른이 된 나도 베갯머리 맡에 그림책을 놓고 들춰 봅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생각들이 꿈틀꿈틀 일어납니다. 아이와 함께 누워 이 그림책을 보며 대화라도 나눈다면 금상첨화일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