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의 물고기
김양헌 지음 / 시선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작고한 김양헌의 첫번째 평론집 <푸줏간의 물고기>를 다시 들춰보았다.
생전 그는, 바른 문장을 쓰는 것에 대한 엄격한 자의식을 가진 몇 안 되는 글쟁이었다.
역시 미문이며, 독특한 문체를 보여준다.
그의 말 그대로 '문학 비평'을 넘어 '비평 문학'의 영토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 고여 있었다.
물론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텍스트가 부각되기 보다는 비평가의 수사와 비평적 맥락이 더 부각되기 때문)
오랜만에 맛보는 비평 읽기였다.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은 <푸줏간의 물고기>와 <불상유통(不相流通)/동기감응(同氣感應)>이다.
<푸줏간의 물고기>는 고기/정육점/푸줏간의 이미지와 의미를 바탕으로 1990년대 시의 특질을 설명한 글이다.
<불상유통/동기감응>은 참 재밌는 비평인데 특히 글의 전반부부터
문학을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는 문학애호가 생물학자의 등장은 신선한 발상이다.
생물학자의 말대로 만약 텍스트가 지닌 정서와 사상의 총합을 산출할 수 있는 방정식을 찾는다면
각 시편이 지닌 가치를 규정하는 일은 아주 쉬울 듯 싶었다.
이후 문학의 가치를 방정식을 만들어 대입해보는 시도는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1980년대 시의 핵심은 단절과 열정이었다. 부당한 시대와 단절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려는 열망, 그것이 1980년대를 '시의 시대'로 이끈동력이 아닐까. 그래서 1980년대가 끝나자 시인은 "만장에 박수갈채 날아오르던/열창의 시대는 갔다"(김정환, <열창>)며 한 시대의 종언을 선포한 것. 민중시든 해체시든 시대와 투쟁하고 현실과 전면전을 벌이는 당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현실인식 태도와 문체의 성격에 근거를 둔 종개념에서 생긴 단절이다. 그 아래로 다시 민중시는 내용에 따라, 해체시는 표현 기법에 따라 하위 개념의 분파를 거느린다. 1980년대에는 이렇게 체계적인 단절이 있었고, 단절의 거리에 비례하여 긴장도도 증가하였다. 긴장은 열정을 낳고, 열정은 다시 단절을 강화하였다. 단절이란 곧 자기 확립의 표지였던 것. 세종대왕이 "異乎中國, 不相流通"을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부정적 현실을 인식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단절의 의지를 강화하며 우리 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수립을 꿈꾸는 일이었다. 새로운 세계는 부당한 기존 현실과 단절하는 데서 비로소 배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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