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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평점 :
내가 아는 국내 작가 중 서문을 가장 잘 쓰는 분은 은유 작가님이다. 지난 글쓰기 클래스에서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함께 읽는 책으로 읽게 되어 인덱스를 몇 장이나 붙였던지. 분명 같은 한국어 사용자인데 같은 언어로 이렇게나 정제되고 견고한 문체를 만들 수 있구나 감탄했었다. 이번에 감사하게도 은유 작가님의 신간을 제공받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계절이 다시 돌아왔을 때 '작년 이맘 때는 그 책을 읽었었는데!' 하기도 한다. 제목에 알맞게 매일 밤 조금씩 아껴 읽어가며 보낸 2월의 밤들, 아마도 내년 2월에는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말들, 아픈 데를 콕 짚어주는 막힌 곳을 뚫어주는 신통한 말들, 기어코 바깥을 보게 만드는 문장들,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같은 위대한 말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반칙인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프롤로그 중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이 책은 작가님이 그 동안 읽은 책, 영화 등에서 보고 들은 말들을 중심으로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는 책이다. 1부 관계와 사랑, 2부 상처와 죽음, 3부 편견과 불평등, 4부 배움과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역시나 눈에 띄었던 챕터는 4부. 교실 생활인으로서 학교 이야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에게는 고마운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무뎌져있던 사회 감각을 다시 깨워줬다는 점이다. 요즘 내가 기웃거렸던 책 장르는 자기계발과 재테크이다. 자꾸만 돈돈 하는 세상에 얼떨결에 휩쓸려가면서 나 혼자 뒤쳐질까봐 불안하여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책을 들여다보곤 했다. 모두가 다 하는 걸 나만 안하고 있다는 느낌이 종종 들곤 한다. 그럴 때 해방의 밤을 만났다. 해방의 밤을 읽으며 사회에 어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이었는지 다시 깨달았다. 단순히 '그럴 때가 있어. 쉬어가.' 라는 종류의 위로가 아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모두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며, 사회는 그것을 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해방의 밤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김질 했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서 나 또한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현실에 집중하며 살던 나에게 좋은 자극이었다. '여성, 가족, 관계, 글쓰기, 노동 등 다양한 주제로 굳어버린 내면을 흔들고 삶을 기계의 속도에서 인간의 보폭으로 바로잡아준 독서를 나눕니다' 라는 소개의 말이 지극히 사실이었다.
두 번째로 종종 꺼내보고 싶은 몇 가지 구절들을 주었기에 고맙다. 아래 몇 문장들은 꽤 인상적이어서 적어본다.
'세상이 만든 경쟁과 효율의 속도에 끌려다니노라면 내 조급함에 내가 파묻히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내가 친절해지는 삶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구축하는 게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불쌍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아예 아무렇지 않은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는 문장 쓰기가 아니라 관점 만들기를 배우는 일입니다.'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면 포스트잇을 들고다니며 무릎을 치는 순간 후다닥 붙여야 한다. 그게 바로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이다.
전반적으로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되게 순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읽은 글쓰기의 최전선이 경건한 서예라면 이번 책은 컴퓨터로 치는 타이핑 같은 느낌이랄까. 잘 읽히고 쉽게 머리에 박힌다. 마치 친한 친구들에게 다양한 썰을 들은 느낌도 난다. 그치만 역시나 차별화되는 점은 작가님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인 이야기가 살아있다는 것. 모든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포용이 느껴진다는 것. 그게 바로 은유 작가님의 책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