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공감보다 나은 위로는 없다.

 

마스다 미리의 모든 책에는 공감이 있다. 공감 속에는 위로가 있다. 난 그녀가 그리는 인물들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서른 다섯 살의 미혼여성.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고 항상 직장에서 들볶인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결혼은 해야 한다.’ 혹은 결혼하지 않고 자식도 없는 노후를 어떻게 감당할래, 마스다 미리가 그리고 있는 인물들이 결혼에 대해 느끼는 무언의 압박을 나 또한 느꼈다. 격정의 20대를 지나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들은 20대를 넘어서 30대로 지나가는 시점에서, 그리고 서른 중반인 지금까지도 때때로 고민하고 나 자신에게 되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마스다 미리의 인물들과 나는 다를 바가 없어서,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공감되고 위로가 된다. 넌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너는 괜찮아, 라며 마스다 미리는 자신만의 단순하고 담백한 표현으로 도닥여주었다. 나는 괜찮아, 나 같은 인생도 나쁘지 않아. 나는 충분히 잘해내고 있어. 라는 기운을 얻었다.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다고, 제대로 살아내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성난 도시는 항상 지쳐있었고 그 피로감에 동화되어 매일을 회사를 나가고 사람들과 복작거려야만 한다. 사회생활 십년동안 얻은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체념과 일에 대한 부정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도피를 한다던가. 서른세 살이 되고부터 나의 꿈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일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20대의 꿈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되었다. 그것에 대한 최상의 방법이 주말엔 숲으로에 나오는 하야카와와 같이 시골’, ‘으로 가자, 였다.

 

시골에 가면 무엇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기도 막막해질지 모른다. 난 하야카와 같이 프리랜서도 아니고, 만화처럼 현실이 녹록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라이트를 켜고 어두운 숲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밑만 보느냐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 2-3m를 비춰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따위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마음은 단순히 무의식적인 도피다.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시골로 향하고 싶은가, 에 대한 목적 그리고 이유를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주말엔 숲으로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어떤 위로를 원하고 있는지. 직장 생활을 하는 마유미나 세스코는 현재의 나의 모습이다. 직장 부하 직원에게 짜증을 내고, 거래처 직원들에게 내 잘못도 아닌 것을 추궁당하거나. 남자들에게 외모 비하를 당하거나 성차별적인 언사도 서슴없이 듣는다. 그래도 참는다. 길에서 바빠 설문조사 하지 않았다고 못생긴 것이, 라는 말을 듣거나 기분이 한없이 바닥을 치는 날은 상대방을 욕하고 죽길 바라며 기도하기도 한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나는 상처받았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것이 내가 바라는 삶일까.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향하는 삶이란 말인가. 나란 인간은 고작 이 정도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다 미리는 주말엔 숲으로에서 말해주었다.

너도밤나무는 추위에 강해서 잘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대. 너도밤나무는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나무라서 그런 거래. 부드러운 나무는 건축자재로 쓸 수 없지만 추위에 무척 강해. 부드러운 나무는 눈이 쌓여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 거지.’

 

나는 너도밤나무가 되고 싶었다. 식물처럼 살고 싶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꽃을 피려고 노력하고 싶었다. 나는 그냥 인간이 아니라 이름이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 자신을 인정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야카와가 마유미와 세스코에게 해주는 말은 나에게 해주는 말과 같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은 해답이 없다. 무작정 숲으로 가서 살 수도 없다. 시골에 가서 살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하고, 아직은 직장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냥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마스다미리는 말해주었다. 인간은 목적지를 위해서만 걷는 것이 아니라고. 마유미와 세스코는 보여준다. 숲에서 얻은 지혜가 자신이 있는 공간 속에서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가짐 하나로 말이다.

 

몇 년 후 나는 시골로 가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여유를 찾아서 작은 꽃잎도 천천히 볼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힘내야 한다. 그저 고통 속의 회색삶을 살아갈 뿐만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을 찾아내고 싶다. 그러니까 내 스스로 변한다면, 마음을 바꾸어본다면 지금보다야 더 낫아지지 않을까.


마스다 미리가 주말엔 숲으로로 나의 등을 조금 쓰다듬고 밀어주는 듯 한 기분을 들었다.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 봐도 괜찮겠지.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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