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 제15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불꽃>


 누군가를 웃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웃기는 일’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 조용한데다 왕진지한 성격이었던 나는 누군가를 웃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더욱 ‘개그맨’처럼 남을 웃기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이 컸다. 결혼도 예쁜 개그우먼과 할 거라고 친구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개콘의 봉숭아 학당에서 ‘하니’역으로 나온, 당시 미인 개그우먼으로 유명했던 김지혜씨가 내가 처음으로 생각한 결혼 상대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로 무를 가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의문의 패배와 아픔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재미있는 사람과 재미가 없더라도 누군가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꽃>은 내게 잠시 잊었던 개그에 대한 동경의 불꽃이 활활 일어나게 만든 작품이다.

 

 <불꽃>의 저자 마타요시 나오키는 개그맨 출신으로, 무명 개그맨 시절을 보내며 책을 사랑했던 독서광이다. 개그계 출신이 일본의 최고로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지만 TV앞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 시종일관 조용하고 왕진지할 것 같은 주인공 도쿠나가를 앞에 세웠으면서도 쿡쿡 웃음을 찔러주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불꽃>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어 읽다보면 마치 나도 얘처럼 조용해도 웃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부풀게 만드는 설정이었다.

 

 ‘나는 재미있는 희극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희극인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순간에도 재미있어야 한다. 가미야 씨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항상 재미있었고 같은 무대에 섰을 때는 적어도 항상 재미있으려고 했다.’

 

 빚에 찌들어 사는 개그맨 ‘가미야’. 선배 개그맨 가미야는 후배 도쿠나가에게 아무리 돈이 없어도 꼭 본인이 술값을 낸다. 왜냐하면 선배니까. 집엔 컵라면이 쌓여도 말이다. 그리곤 술에 취해 개그 철학을 전수하며, 내 전기를 쓰라고, 이럴 땐 이렇게 반응하고, 저 땐 저렇게 웃기라고 훈수를 둔다. 가미야는 자신을 믿고 ‘사부’로 따르는 후배 도쿠나가를 무척 흐뭇하게 여긴다. 도쿠나가는 정말로 전기를 쓰듯 가미야씨의 개그철학과 일대기를 기록한다. 제목은 물론 <불꽃>. ‘천치’라는 별명답게 가미야는 괴짜중의 괴짜지만, 그의 개그 철학만큼은 뚜렷하고 대범하다.

 

 ‘개그는 재미있는 것을 상상해 내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거짓 없이 순정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 요컨대 영리한 걸로는 안 되고 진짜 바보, 그리고 자기가 제정신이라고 믿고 있는 바보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개그야.’

 

 <불꽃>은 언제 웃어야 하는지 타이밍을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그런 개그를 늘어놓지 않는다. 앞서 말했든 그냥 덤덤하게 웃음기가 실리도록 쿡쿡 찌른다. 웃어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지만 나는 웃음이 났다. 그리고 도쿠나가의 영웅 가미야의 방황과 고난이, 사랑의 실패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려운 꿈에 대한 열망과 고단함이 <불꽃>을 태우는 장작처럼 작품 밑에 깔려있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배 개그맨 가미야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불꽃>은 역시 진짜 주인공을 ‘도쿠나와’라는 화자이자, 독자 자신인 ‘나’로 돌아서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세상의 찬바람을 맞으면 독감에 걸린다. 지독한 독감에 코가 콱 막혀 갑갑한 사람들에게 <불꽃> 추천한다. 웃기도하고 훌쩍거리기도 하다보면 코가 뻥 뚫린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리라 확신한다. 강추, 매우 강추, 또 강추다. 발정난 매미가 흥분 상태로 코풀기. 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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