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부수적 결과>를 고려한 미국 사법 시스템의 무서운 진실을 말한 책. 왜 이민자들과 가난한 흑인에게는 촘촘한 법망을 걸어 몇 푼의 벌금을 물 게 하면서, 한 도시를 집어 삼킬만한 거대 자본을 등처먹는 거대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법으로 제재 하지 않는가? 이유는 딱 하나. 거대 기업이나 은행들이 흔들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 신세가 될 가능성이 있을 뿐더러 이들과 연관된 작은 기업들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저자는 <부수적 결과>라고 부른다.

 

기자 : 왜 이민자나 가난한 흑인들을 위한 법 집행은 칼 같이 합니까? 거대 기업이나 대형 은행들은 몇 조원 씩 사기를 치는데도 가만두고 말이에요. 아예 건드리지도 않더군요!

 

검사 : (피식 웃으며)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지나가던 노숙자 한 명 잡아서 벌금 내는거랑 대기업 잡아 넣는거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야. 거대 기업들이 휘청거리면 관계된 그물망 같은 사회 전체가 휘청 거릴 수도 있어. 은행은 더 심각하지. 엄청난 실업자들을 만들 게 된다고.

 

기자 : (몹시 흥분한다.) 아니, 법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누구는 잡으니까 부수적인 문제가 있다고 내버려 두는 게 말이 됩니까?

 

검사 : 우리는 사회를 집행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야. 더 넓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지. 그리고 노숙자를 잡거나 하는 자잘한 일은 각 주에서 알아서 처리할 일이야. 경찰들이 잘 해결할거라고, 우리의 치안은. 우리 정도 되는 고급 법조인들은 중앙정부와 은행들을 상대한다고. 쓸데없는 질문 말고 네 할일을 해.

 

기자 : 이게 내 할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가 없군요. 중앙정부와 은행, 대기업들은 그래서 죄를 짓지 않는 군요.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겠네요. 어이가 없습니다. 결국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죄가 된다는 말이네요.

 

검사 :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래.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억울하면 돈을 벌어.

 

 책의 <부수적 결과>에 대한 내용을 각색하자면 이정도 되겠다.

 

 놀랍게도 사법부의 중요 직책을 맡은 인물들은 <부수적 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저자는 부자는 계속 부자일 수 밖에 없는 놀랍고도 무서운 진실, 그것을 이어가게 하는 더럽고 추악한 인물들을 실명을 거론하며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의 죄를 실감나게 듣다 보면 답답할 만큼 짜증난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라니! 두껍지만 기자의 글은 대부분 쉽고 빠르게 읽히듯, 이 책도 추리 소설 보듯 쑥 빨려 든다.

 

 <부수적 결과>는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흔히 겪는 윤리적 문제의 충돌이 발생한다. (참고로 방식은 더 잔인하다.) 다수가 피해를 본다고 소수의 희생을 묵인해야 하는 걸까?  잔인하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희생하는 소수가 인종차별의 희생자이며,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안전한 신분으로 살아가거나 신체적으로 약한 이들을 가르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권 분립의 하나로, 법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집행하는 기관을 '사법부'라고 부른다. 영화에서 "너 누구야?"하면 "대한민국 검산데요. 씨발."하고 반격 기술을 날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바로 그들이다. 물론 판결은 판사들이 하지만 어차피 같은 사법부.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 정책으로 시행하는 행정부 모두가 한팀이 되면 사실상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미국이 삼권분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사회에 대응하도록 바뀌려면 '법이 적용되는 범위와 처벌'에 대한 이슈거리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금융관련 법규는 너무 어렵다. 법의 범위와 처벌에 대한 정의조차 구분짓기 힘들다. 어쩌면 사회적 약자가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은 필연적일지 모른다. 소수 엘리트층의 자발적인 자각이 없는 한 이 시스템이 쉽게 무너질리 없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현실을 자각하는 것. 성인군자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그냥,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이 있다고. 너무 심하게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살살 좀 해"라고 말한다. 살살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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