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만큼 미쳐봐
임요환 지음 / 북로드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임요한. and 홍진호. 그의 이름을 모르는 남자 놈들이 있을까. 테란의 황제. 테란이 뭐냐고? 당신은 이 글을 읽을 자격도 없다. (물론 읽을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유학생인가?
<나만큼 미쳐봐> 임요한 저.
그가 전부 쓴 글일 가능성은 없다. 스타크래프트 하느라 바쁜 우리의 황제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자신의 일대기를 글로 적는 건 상상도 가지 않는다. 임요한. 곱상한 외모, 천재적인 센스의 경기 운영 능력. 그는 우리 시대의 전설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이등병으로 처음 자대로 전입 간 시절의 일이다. 훌륭한 이등병들은 모름지기 상꺽부터 병장을 막 단 영향력에 있어서 스페셜급 선임들의 일상적인 취향까지도 꿰뚫고 있어야 하는 법. 나는 그 법에서는 한참 멀었다. 군 생활은 존나 힘들었다.
어느 날 날이 어둑해진 저녁 시간, 커다란 창고 뒤에 인적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옆 생활관 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병장과 마주쳤다. 그가 물었다.
"너 스타 할줄 알아?"
내가 초등학교 시절 처음 스타크래프트가 나왔는데, 나는 반에서도 아니고 '전교'에서 스타크래프트 랭킹 부동의 1위였다. PC방을 가면 모두가 나와 함께 팀이 되려고 가위바위보를 했었지. 스타 할줄 아냐고? 어이가 없었다. 잡지책에 나온 빌드를 손으로 적어가며 연습한 놈이 그 시절 몇이나 되었을까. 내 스스로 길드를 만들어 우리 학교에서 모집할 정도였으니, 나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네! 할 줄 압니다!"
"그게 뭔지는 알아?"
"게임...입니다!"
"게임? 이 씹쌔끼가."
괜한 시비 걸어서 심심풀이용으로 날 농락하는 거구나. 비위가 상했다. 병장은 나를 보며 이런 하찮은 놈하고 말 섞기도 귀찮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스타는 스포츠다."
그렇다. 스타는 스포츠다. e-스포츠. 임요한이라는 슈퍼 스타를 갖고 있는 확실한 스포츠 종목이다. 웬만한 비인기 올림픽 종목보다 훨씬 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다. (덧붙여 그 병장은 대단한 게임광이었다.)
임요한은 재수 시절 처음으로 스타크래프를 접한다. 그리고 게임에 푹 빠진 채 재수 생활을 보낸다. 사실 결과가 소름끼칠 만큼 우연히 맞아 떨어졌을 뿐 그 당시 임요한은 누가 봐도 그저 하라는 공부는 지지리도 안하는, 미래가 캄캄한 재수생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억대 연봉을 받으며 프로 게이머가 되리라고 누가 예측했을까. 예측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하나의 게임이 e-스포츠라는 종목을 탄생시키고, 대한민국의 놀이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 흐름이 10년을 넘어갈 줄이야!
<나만큼 미쳐봐>에는 이런 임요한이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와 된 후의 일상이 담겨 있다.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이슈화된 인물을 꼬드겨 돈 좀 벌어 보려는 출판사의 의도가 짙은 것은 사실이다. 근데 뭐 어쩔 건데. 출판사는 기업 아닌가? 맞다. 내가 단연컨대, 지금의 흐름이라면 몇 년 안에 임요한 홍진호를 필두로 한 책이 나오리라. 예언한다. 지금은 2016년 3월 10일이다!
어쨌거나 스타크래프트를 스포츠로써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집어 들 만 하다. 아쉽게도 감동이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탄탄한건 아니다. 그러나 테란의 황제의 발자취를 집안 서재 어딘가에 꽂아 두는 것은 우리 스타크인들의 기본 소양이 아닐까. 너무 오타쿠스러운 발언인가?
아무튼 게임이든 공부든 일등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까이 두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