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성명이 자아라면, 나(주체)는 성명에 의해 결정된다."는 문장은 참일까 거짓일까. 성명이 자아라는 전제는 거짓이다. 이름이란 사회망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분 짓는 일종의 표지 딱지라고나 할까. 당연하게도 이름은 실재적 자아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나(주체)는 성명에 의해 결정된다, 라는 결론 또한 모순됨으로 거짓이다. 나는 나로서의 나였고, 자연하게 주어진 주체였지 결코 성명이 먼저 발현하여 자기자신을 새로이 드러내주진 않는다. 거짓+거짓은=참이다. 거짓에서 거짓됨이 나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권두언에서의 명제는 참이다. 거짓된 전제에서 거짓된 결론이 도출됐으니 참말이 됐지만 또한 글이 의도하는 바가 사리에 맞지 않음 역시 드러내줬다. 그러므로 같잖게 부려먹은 기호논리학에 의하면 우리는 성명일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성명에 얽힌 모든 추억과 과거의 조각들의 모듦이 '나'를 완전하게 '나'임을 말해주며 충족해줄 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공수표로 전락한 원점 상태에서의 상황에 출사표를 과감하게 던져보려 한다. 과거의 깨어진 조각을 맞춰가는 퍼즐 놀이를 감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인, 내가 누구였었는지를 알아내겠다는 단일한 일념. 이런 주인공의 과거 완료형을 현재 진형형으로 되돌리려는 내밀한 감성 여행을 정치하게 그려 보이는 모디아노의 필적은 간명하고 정제된 만큼 자구 사이사이에서는 산열하듯 한 울림 가득 피어올린다. 작가의 소설들이 전반적으로 기억이 화두라면 그리고 과거를 추억하기, 추적하기를 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몽상에서 불연 듯 깨어나 순간 떠올리는 무규칙한 영상들의 파편과도 같은 단절함이 자연스럽게 작품 전체와 교응하게 된다. 그로 인해 문장까지도 회상의 자국에서 하나씩 떼어낸 작다란 편린의 수사학이 되고, 독자는 그 문장과 문장의 공백을 채울 아니 하나의 유의미로 체계화할 일종의 연관짓기를 통한 의미 산출의 임무를 떠 안는다. 그래서 모든 문장에 반각-을 사이마다 잇닿게 한다면 소설은 커다란 기억의 보고쯤이 될 수도 있으리라.

모르는 게 약이라고도 했던가. 그렇담 알면 쥐약이 된단 소리이기도 하잖는가. 출생의 비밀을 모른단들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면 그보다 더 무엇이? 과거가 말끔히 증발했지만 새 출발한 인생이 주옥같은 나날이면 이 또한 무엇이? 이보다 더 필요한 건 없지 않을까. 피보다 정이라고,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모든 게 당장의 현실인 것이고 또 그것이 필요로 하는 현재의 모든 것이기에 더는 가타부타 논할 게 아닌 것이다. 역자도 말했다. 이런저런 증거들의 나열이 뭔가를 살풋이 연상하게 해도 결국은 완전하지 않은 본질적으로 무상한 허무만이 눈 앞에 도드라질 뿐이라고. 소설 속 위트도 이렇게 말한다. "..... 나는 그것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군요....." 주인공도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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