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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순천의 지적 끝타리와 마주 잇닿은 광양가는 길로, 그 접경지. 그 지경 한 가운데 은밀하게 산세에 파묻힌 듯 깊숙이 자리해 있는 한 군부대가 내 의무를 다하고 있는 곳이다. 까마득한 이등병 생활도 산허리를 깎아 다소 거칠게 사면을 낸 자리에 허름하게 자리한 초소의 근막에서 부는 바람과 함께 저물어진 시간의 모퉁이로 휘돌아 날려간 지 오래다.
얼마나 흘렀을까. 한 선임의 소개로 현의 노래를 요사이 조석으로 가느랗게 묵독하였다. 그 첫인상, 자구 하나하나 사사이 고집하여 강밀한 얼개 꾸러미를 한가득 풀어놓는 김훈의 미려한 기교의 당돌참.
소설에서는 주된 축을 담당하는 두 인물이 있다. 그 한 명이 삼국 각개의 왕 치세에 이루어지는 격정의 한복판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먼지 나듯 산란한 대가야국의 망국자된 처지로서 소리의 참됨을 갈망하며 '칼이 노래하는 벌판을 뒤로 하고', '현이 노래하는 강토와 뒤엉켜 놀고자 하는', 정도를 지향하는 한 순정한 예인 우륵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야로는 대장장이로서 덩이쇠를 벼리고 이글대는 불꽃 와중에 쇠를 녹여낸다. 그리하여 형태화된 병장기는 육신이 잘리고 터져서 피비린내 한껏 진동하는 큰 무리의 대오 속에서 병장기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산통의 과정을 항변이라도 하듯 거칠게 날뛰며 광기를 산출한다.
그런 둘이서 가려는 길은 같기만 하다. 신라로의 귀부. 야로는 자신의 공을 높이 사주리라 순진하게 믿어 의심치 않아 신라 병부령 이사부를 찾고, 우륵 역시도 황량한 전장터를 제 몸과 멀리두어 산 자만이 누릴 '살아있는 동안만의 소리'를 위해 예술의 지속을 목적하고자 하나의 방편으로써 이사부를 뵙자 한다. 허나 한 길을 갔되 말로의 광경은 서로가 다르기만 하다.
'칼'의 순절함 없이 여러 국토를 넘나들며 어느 한 곳 뿌리내리지 못하는 그 기민한 뱀의 자태를 이사부는 인정에라도 신임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야로의 최후란 살풍경의 끝자락에서 위태하게 참담함의 장막으로 몸을 내던지게 되는 과보를 통한 종말이다. 반면에 우륵은 어디하나 적을 두지 아니 하고 단지 소리로서의 소리, 한없는 풍월의 기치를 뽐내며 국영을 초월한 제가끔의 소리, 예술혼의 깊이로 호소한다. 이에 이사부는 물론 신라 진흥왕에게까지 그 순정한 덕을 칭송 받기에 이른다.
이로써 현은 칼보다 위대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음악의 적(籍)없음, 즉 비이념성의 순수를 알게 한다. 칼은 드셀지언정 단박의 꺾임에 허망하게 부러진다. 하지만 현은 다르다. 흔들한 유순함 그 이면에 감춰진 질기고도 가열찬 생력감의 대거죽만큼이나 꿋꿋한 지조와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한결 같음이며 항상 그러함에 그러할 뿐인 것이다.
작금의 내게 있어 현의 노래가 던져지우는 의문부호 하나. 이 부유하는 물음은, 왜 나는 한 평생 절박한 심정으로 박약한 심상만이 다인 듯 살면서 절절한 목메임으로 사는지에 대한 것. 그저 우륵이 가진 생의 의지만큼만, 딱 그만큼 만을 살아내지 못하는 나의 정처없음에 서글프다. 그 언젠가 이 내 생애 현의 노래만 같기를 희구해 본다면 정녕 사치일까?
어찌됐든 항상 그러했음에 변함없이 이 해도 또 이듬해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경계서는 초소를 우습게 덮어버릴 듯 위태하게 뻗치고 자란 침엽수와 웃자란 수풀을 스쳐다 만드는 그 특유의 내음을 바람은 실어 날라 밤이면 내 안면과 허전하여 추워질 내 목 주위를 겨냥하고는 여지없이 차갑게 때려댈 것을 말이다. 또한 짧되 길기도 한량없을 그 시간에 바람의 세참이 내 귓등에 간질이듯 미끄러지며 자신의 고유한 소리를 흩뿌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날카롭되 선선하여 휭휭거리며 내 몸 근처를 에둘러 가는 바람 소리에 가끔은 내 육신이 몸서리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그 기세등등함이 '맹렬한 적막'으로 다가와 내 의식 빈자리에 음렬의 공허를 일깨울 것이다.
내 주위를 공전하는 시간과 소리의 영속성. 나는 귀기울이려 한다. 소리의 그 한없는 순정과 적(籍)없음을, 칼부림 그 이상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