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진 - 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의 비전
토미 셰리단.앨런 맥쿰즈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매진 - 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의 비전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통권146호, 2006년 8월호

<이매진-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의 비전> / 이매진 / 13,000원 / 2006년 5월

1999년,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심장부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는 ‘작은 승리’가 일어났다. 처음으로 구성되는 스코틀랜드 의회에 SSP(스코틀랜드사회주의당)의 토미 셰리단이 비례대표 21.5%의 지지로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의 오른손엔 ‘독립 공화국’이라는 카드가, 그의 왼손엔 ‘사회주의자’라는 카드가 들려 있었다.

4년이 지난 2003년에는 토미 셰리단 외에도 5명의 의원이 더 배출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사회주의를 외치고 있으며, 노동당이 독점해 온 진보정치 비슷한 지형에 귀퉁이 하나를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노동당’(구노동당이든, 신노동당이든)을 선택하도록 ‘강요’ 당해 온 노동자들에게, 빈민들에게, 성소수자에게 자신의 꿈과 삶을 포기하지 않을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나 오른쪽으로 가버려 이제는 ‘노동’당이라고 부르기조차 어색한, 이제는 ‘빈곤의 짜르’가 되어버린, 그래서 자신들조차도 ‘신’노동당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당이 아니라, 민중에게 실질적인 통제권을 부여할 권력을 돌려주기 위해 투쟁하고 연설하고 모여서 집단적인 역사형성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당이 스코틀랜드 민중에게 생겼다. 그것을 SSP는 ‘홀리루드(의회가 있는 곳)를 향한 사회주의적 진전’이라 부른다.

이 책은 SSP의 대표적인 정치인 토미 셰리단과 ‘스코틀랜드 소셜리스트 보이스’의 편집자이자 SSP의 핵심적인 인물인 앨런 맥쿰즈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에 있다. 또한 한 문장, 한 문단이 짜임새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예들과 비유,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풍자, 적절한 인용과 글의 부드러움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이매진,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다. 이 책의 각 장의 제목과 책의 내용에는 존 레논의 노래가사나 제목이 쓰이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매진이라는 노래 자체가 불평등과 착취, 인종주의와 전쟁이 없는 그런 사회주의 세상의 비전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저자들의 책 제목으로서는 아주 ‘딱’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을 번역 출판한 출판사 이름조차 이매진이 아닌가.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과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배경이 매우 다른 것만큼이나 공통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SSP는 스페인의 카탈로니아와 바스크,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등의 민족주의+좌파정치세력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쟁점에 천착하고 있다. 또한, 사상적 폐허 위에서 다시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반자본주의세력의 결집을 선도하고 있다. ‘거대한 소수’ 전략의 성실한 발걸음이다.

민주노동당이 처한 현실에서 이러한 주제들은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들이 ‘거대한 소수’ 전략을, 명확한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전진’하고 있을 때, 민주노동당은 늪에 빠진 자신의 발을 원망하며, ‘거세당한 소수’의 행보를 거듭하고 있었다. 당내 소수자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시각은 따뜻하지도 않았으며, 정치적 슬로건과 전략의 채택을 놓고서는 단호하지도 않았다. ‘거대한 소수’를 바라보는 진짜 거대한 대중들의 시선을 민주노동당은 고정시키지 못했다. 채널을 고정시킬만한 내용이 부족했으며 채널을 좌지우지하는 리모콘을 민중들에게 돌려주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움직이고 있으나 당의 숨소리는 잦아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SSP는 민주노동당이 승인할지도 모르는 광범위한 전선체의 토대 위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경로가 다르다. SSP가 당적 통일전선체를 통일전선적 당이라는 실험을 통해 탄생했다면 민주노동당은 자기 외의 또 다른 옥상옥을 지으려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문호를 열면 열수록 배타적으로 되어 버리는 마술같은 역설이 진행되고 있다. 21세기의 초입에서 20세기로, 19세기로 자신의 상상력을 후퇴시키는 것을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반동’이라고 불러야 하나.

SSP는 민족문제를 세계화시대의 반자본주의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와 결부하면서 ‘미래’를 예견해 나가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문제로 축소시키거나 그 자체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바랬던 것은 소수가 다수가 되는 양적 확대 자체보다는 소수이면서도 ‘당당’하고 그 ‘당당’함이 곧 미래를 보증하는 선순환구조가 아니었던가. SSP가 ‘당당하게’ 초국적자본에 투항해버린 노동당과 보수당에게 맞서고 있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며 그 모습 때문에 이 책은 수많은 ‘몽상가’들에게 몰입의 기쁨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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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창원 역사읽기
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 엮음 / 불휘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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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http://www.ynlabor.net) <연대와실천>2006년4월호(제142호)


저무는 골목 안, 역사와 출구 - 마창 3부작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지난 2월 25일, 신문에 실린 기사 하나가 내 눈을 잡았다.

“구로 노동자 문학회, 문패 내리던 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자신이 문학에 그다지 관심이 있다거나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90년대 초반 이후에는 매니아급의 문학 편력을 펼친 것도 아닌데, 횡한 바람이 가슴 한켠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18년의 역사, 그러니까 1988년의 첫 시작의 설레임이 끝난 것이다. 마치 수줍은 손 잡던 연애가 파경으로 끝나듯이. 노동자의 글쓰기, 자기고백과 성찰, 현장성 있는 삶글, 이러한 수식들이 여러 문학단체나 행사들을 규정해주던 그 시기는 지났는가?
글만이 아니다. 이젠 민중가요도 보급되지 않는다. 김호철의 새 노래가 나왔다고, 테잎 하나 사서 복사해서 듣고는 뒷풀이 자리에서 문화의 전도사인양 목청 돋우며 ‘잘난 체’ 하던 그런 장면은 이제는 없다. 오로지 ‘파업가’와 ‘단결투쟁가’, ‘철의 노동자’ 등 몇 곡 외에는 듣지도, 부르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곡이 나오지 않느냐? 지금도 많은 문화활동가들은 앨범을 내고, 공연도 하지만 문화를 향유해야 할 동지들은 관심이 없다. 신곡을 풍성하게 담은 민중가요 노래책이 나오지 않은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많은 노동조합들은 집회용 CD를 제작보급하지만 신곡은 절대 없다. “내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10곡 넣을 때, 한 두곡씩 넣으면 안 되겠니?”
진보운동 속에서 문화운동을 고민하고, 급진적인 문화와 사회적 파급력을 고민해도 실천적으로 향유하지 않는 한 찻잔 속에 태풍이 될 수밖에 없다. 칠레와 네루다의 시, 빅토르 하라의 절절한 노래, 80년대 한국민중운동과 민중문화운동, 그 속에 있던 임진택과 오윤과 홍성담과 김호철. 알고 있으나 지금은 고민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풀 수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날 보고 신세조졌다 한다, 동료들은 날 보고 걱정된다고 한다……노동운동 하고 나서부터 참 삶이 무엇인지 알았네.” 한국 노동운동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던 마산창원에서 고승하 선생의 ‘고백’이라는 노래가 불리워지고, 전국적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던 시절, 확실히 입소문과 귀동냥의 강력한 파워는 그 시대를 풍성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그 마창에서 2005년과 2003년, 세 권의 책이 나왔다.

『마산 창원 역사읽기』(불휘, 2003)는 노동자들의 책은 아니다. 오랫동안 마산창원지역을 연구하던 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에 있는 교수 또는 언론인, 전교조 선생 등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마창에서는 꽤 유명한 홍중조, 김재현, 이은진, 김주완, 김용택, 김건선, 박호철, 유장근, 박진해 선생 등이 쓴 책인데, 필자가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한 주제와 꼭지로 마창 지역의 오래된 역사를 재미있게 소개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것을 처음 안 것은 2월에 마산 전교조 사무실에 갔을 때였다. 사실 필자도 이런 책이 나왔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청동기시대부터 10.18까지 여러 꼭지를 실었고, 이원수나 이은상, 장지연 등의 인물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마창의 역사를 풀기도 한다. 또한 마창 노동자들의 삶과 밀접하거나 밀접했던 공간들, 예를 들어 어시장, 『마산문화』, 결핵병원과 월영대, ‘책사랑 도서관’ 등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다. 민간도서관 책사랑은 88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지역 노동자들의 이용에 초점을 맞추었고, 하루 이용자가 200명이 넘었으며 개관 후 6개월 만에 가입자가 1만 명을 넘었다. 서울로 치면 ‘사회과학 서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마을 도서관의 성격을 혼합한 것이다. 여타 공간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는 ‘지역’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새삼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책이다. 마산 오동동에 있는 ‘불휘’라는 지역 출판사가 정성스럽게 편집을 했으나 불행히도 품절된 상태이다. 부산에도 ‘산지니’라는 출판사가 있다. 과연 지금 부산, 울산, 경남에 있던 얼마나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았을까 생각해보면 지역의 ‘문화공동화’를 걱정하게 된다.

『출구』와 『저무는 골목에서 삶을 만나다』는 문학도서이고 비매품이다. 두 권 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만든 책이다. 『출구』는 구로노동자문학회와 함께 노동자문학운동을 해온 ‘마창노동자문학회 참글’의 열두번째 작품집이다. 구로노동자문학회 관련 신문기사의 부제는 이렇게 되어 있다. “노동자의 삶글 쓰기 어디서 ‘출구’ 찾나?” 막힌 출구를 부여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창노동자문학회 작품집『출구』라는 제목은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출구를 못찾은 구로노동자문학회는 결국 자기 손으로 스스로를 정리했고, 마창노동자문학회 참글은 『출구』라는 작품집으로 ‘출구’를 찾고 싶었을까?

문학회 회장 김건곤 형의 말을 들어보자.

이번 작품집은 5년 만에 발간되는 것이라 그런지 다른 어느 해 보다 감회가 다른 것 같습니다. 5년 도안 참글이 무엇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조차 힘들지만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2006년에는 헤어진 발길들도 하나, 둘 참글로 돌아오는 꿈을 꿔 봅니다.


힘들게 힘들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마창노동자문학회 참글의 처지가 과연 구로노동자문학회보다 나을까? 자신의 삶만큼이나 문학회 활동이 힘들테고, 그 힘든 삶들이 문학회 활동을 더 힘들어 할테고, 부족함이 채워지지 않으나 삶을 참되게 증명하기 위해 5년 만에 작품집을 낸 그들에게 우리는 사실은 무관심하지 않았나? 5년 동안 공장을 다니며 삶과 문학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했으나 그 어느 것도 손아귀에 잘 달라붙지 않았을 지도, 그래서 스스로 무기력해졌을 수도 있겠다.

“문학이 부박해지고 노동자 민중의 통 큰 감동을 상실한 것은, 문학자체가 노동자 민중의 대지를 떠나는 것을 넘어 최소한의 70년대식 친구 의식조차도 버거워 한 그 순간이다”

결국 삶의 문제이다. 지난 5년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우리의 주위를 힘겹게 한 발 한 발 딛는 것이 숙제일테다. 참글이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모두에게도.

『저무는 골목에서 삶을 만나다』는 2004년 마산창원진해 문학교실을 수강한 사람들을 주축으로 하고, 2005년 ‘마창노동자문학회 참글’에서 주최한 ‘르포문학 실기교실’에서 공부하고 취재하고, 발로 돌아다니면서 만든 책이다. 마창에서 오랫동안 고독하게 노동문학을 움켜쥐고 있는 김하경 선생이 두 행사의 중심에 있었고, 남해에 사는 괴짜(?) 사진작가 오남해 형이 마산창원진해를 다니면서 구석구석을 필름으로 기록했다. 글은 노동문학을 하는 오도엽 시인과 정윤, 이일균 도민일보 기자와 김규석, 신미란, 박미영 등이 썼다.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마산창원진해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노인네들이나 토박이들에게서 그 동네의 애환과 변천, 고민과 부대낌을 담았다. 한때 전국 7대 도시에 들었다던 마산에는 어시장과 원조 아귀찜에 얽힌 사연들, 오동동 나래비골목과 통술집의 주당들의 취중추억이 빼곡하게 숨쉬고 있다. 마산의 관문인 양덕동에는 지금은 없어진 한일합섬, 이를 대체한 한일타운 아파트, 당시의 눈물나는 설움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한일여실 출신의 노동자들이 있다. 부림시장 옆 도둑놈 골목에는 ‘인자 이 골목은 끝나 뿟어’라고 말하지만 이 골목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게 마지막 고집인 삶이 있다.

영원히 사라지는 게 있는가 하면, 사람의 기억은 지웠다가도 되찾을 수 있다. 콘크리트 지우개로 하나씩 지워져 가는 양덕동 골목,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 보인다.(오도엽, 129쪽)

그렇게 되살아난 마산창원의 질긴 삶들이 담겨 있는 이 책을 보면서, 부산과 울산에는 얼마나 또 기가막힌 사연들과 변화들, 애환과 진솔한 재미가 흘러넘칠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그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둘 걸. 뼈아픈 반성이 회한으로 변했다. 사라져가는 골목과 거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기록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다. 기록의 필요성이 절박해졌다.(김하경, 9쪽)

그나마 마창이라서 이런 걸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게다. 울산도, 부산도, 거제도 골목 안 이웃들이 있고, 거리엔 노동자들이 있다. 때론 안타까움이 용기를 갖게 만든다. 부디 그 용기가 충천해 돌아봄의 용기로 울산과 부산을 휘감기를 바란다.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는 것은 출구를 찾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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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 독일, 서유럽, 미국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6년 2월호

1) 이희영, 「한국 80년대 세대의 초상화: 독일 68세대와의 비교」, 이해영 엮음, 󰡔1980년대 혁명의 시대󰡕, 새로운세상, 1999년

[68운동]

양솔규(redstar@jinbo.net)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그의 유명한 저서 󰡔반체제운동󰡕 에서 “이제껏 세계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그리고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둘 다 세계를 바꿔 놓았다”고 쓰고 있다. 1968년 혁명에 대한 웬만한 책들의 서평에는 거의 월러스틴의 언급을 빠뜨리지 않고 쓰고 있다. 본 서평도 어쩔 수 없이 월러스틴의 언급을 인용하고 말았는데 거기에는 한국 사회의 지적 변화를 언급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월러스틴의 평 중 가장 중요한 언급은 1968년 혁명이 ‘세계’혁명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두 혁명‘만’이 세계를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두 혁명 외의 다른 혁명들은 세계를 바꿔놓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잉글리트 길혀-홀타이,『68운동』, 2006.1, 들녘코키토, 12,000원

사실 1980년대 운동권에게 있어서는 1968년 혁명은 거의 금기시되거나 애초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이 그 세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으나 그 시대는 소위 ‘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1968년 혁명과는 달리 80년대 꿈꾸던 혁명은 레닌의 혁명, 전위정당의 혁명을 뜻했다. 또는 대중조직의 성장을 담보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바빴고’ 바빴기에 빠른 길을 원했다. 68혁명과 같은 패배한 길보다는 ‘승리’가 필요했고, 그 염원은 서유럽보다는 러시아로 시선을 향하게 했다.

60, 7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정확히 1968년의 영향이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유추해보자면 박정희의 쿠데타와 유신의 치하에 있었고, 좌파는 한국전쟁으로 소멸되었으며, 대학가는 여전히 80년대에 비해 느슨했다고나 할까? 대학가 밖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었고, 공화국은 도로 닦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68세대의 문화적 유산이 흘러들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위예술의 소문이, 다른 한편으로는 비틀즈와 밥 딜런, 존 바에즈의 노랫소리가 말이다. 그렇다고 현해탄 건너편 일본의 좌파들이 나리타 공항에 상륙한 1968년의 세계적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을 때 한국의 60, 70년대 젊은이들은 라디오나 듣거나 대학로 학림다방에 죽때리며 띵가띵가나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섭섭해 할 지도 모르겠다. 대신 한국의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전쟁터였다. 베트남 전쟁에 총알받이와 살육자로 떠나야 했던 청년실업자들, 청년 노동자들이 있었다. 김수영은 이렇게 썼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이 혁명은 4.19혁명을 말한다. 혁명이긴 혁명이네.

80년대 젊은이들에게 그 시대는 ‘정치적으로 바쁘고’, ‘정신적으로 바쁜’ 시절이었겠지만, 60, 70년대 젊은이들에게 그 시대는 ‘경제적으로 바쁘고’, ‘육체적으로 고된’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40년의 세월이 다 되어가는 한국의 ‘지나가시는’ 세대들이나 68을 만든 외국의 ‘지나가시는’ 세대들의 젊은 시절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클린턴도 힐러리도 블레어도 그 세대니.

80년대 프랑스의 5월운동에 관한 책이 번역되어 나왔으나(일월서각?) 그다지 관심을 끌었던 것 같지는 않다. 1979년 한나 아렌트의 「공화국의 위기」에 68학생운동과 관련한 표지 사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나 어렸을 적 엄마 책꽂이에서 본 기억이니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학에서는 신좌파의 스승들(밀즈,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관심은 80년대 이래 사라졌고 레닌이 사라진 후 ‘신사회운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철학도 마찬가지였고, 정치학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과 알게 모르게 연결된 1968년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나타났다. 1968년의 주역이었던 타리크 알리와 죠지 카치아피카스 등의 책이 출간되었다.

오랜 잠복기간을 지나 1968년에 대해 이제는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1968년 혁명에 대한 책들은 이미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와 까페에는 1968년에 대한 기사, 논문, 책줄거리, 서평들이 꽉 차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사는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학생운동의 쇠퇴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분명해지던 시기인 1990년대 초반, 한국 학생운동의 한 정파는 1968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무렵, 이들의 정치학교 자료집 “조반유리(造反有理))”에는 1968년에 대한 자료들과 해설들이 알차게 들어있다. 좌파의 보다 정통적인(?) 분파들은 이 정파를 심각한 어조로 훈계 내지는 조롱, 경계하였으나 대부분의 훈장님들은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예전 소련에서 번역된 「철학사전」(동녘)에는 1968년 사상가들과 이 운동에 대해 과연 훈장님처럼 비난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한국 학생운동의 정파는 독일의 ‘자유대학’ 개념을 본따 ‘제3대학’ 등을 열기도 했다.

2000년 하고도 벌써 6년이 지난 지금 세대들에게 이 사건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사실은 필자의 세대에게도 뭔가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듯이 지금도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뭔가 있는 듯 하나 뭔지는 모르겠는. 어쨌든 바꾼 혁명!

1월 25일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 「68운동」은 이전의 1968년에 대한 책들에 비하면 매우 훌륭한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짧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이전의 책이 베트남 전쟁 등의 사건을 잘 알고 있거나, 마르쿠제, 아도르노, 밀즈 등의 사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재밌게 읽힐 수 있지만 이 책은 그렇지는 않다. 짧고 어렵지 않은 것. 그건 활동가들 취향이기도 하고, 직장인들 취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쓴 잉그리트 길혀-홀타이는 빌레펠트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다. 독일 역사학계에서 1968년 혁명에 대한 연구를 선도적으로 하고 있는 교수라고 한다. 이 책에는 1968년의 혁명의 사상, 혁명 전야의 스케치, 혁명 와중의 사건들, 문화, 동원 과정, 그리고 운동의 붕괴와 그 영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흔히 1968년의 세계적 사건을 각 나라별 차이점을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이 책은 독일, 서유럽, 미국의 혁명과정의 공통점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1968년 혁명은 무엇보다 맑스주의 이론을 새롭게 해석했다. 교조적인 정통 맑스-레닌주의에 반기를 들었고 이러한 이론의 새로운 해석은 이후 맑스주의와 전세계 좌파의 사상적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또한 이들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지만 ‘구좌파’에게도 반기를 들었다. 이들이 보기에 몇 가지의 사건들 ‘프라하의 봄’, ‘헝가리 침공’은 소련 및 구좌파의 숨길 수 없는 치부로 보였으며 사회주의의 새로운 차원과 경로를 인식해야만 하는 증거로 보였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애매모호하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그 용어는 바로 사민주의와 현실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어서고자 했던 1968년의 깨달음이라는 점에서 1968년은 멀지만 가깝기도 한 과정이기도 하다.

네이버는 물론이고, ‘도전! 골든벨’에도 심심찮게 나오는 1968년이라는 주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다못해 조카나 후배가 물어볼 때 어슴푸레 대답이라도 해줘야 할 테니까. 1980년대를 살아온 분들에게는 이 책과 함께 각주의 논문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1)

1960년대 세대 김근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혹 ‘미워도 다시 한번’ 김대중이 아니라, ‘미워도 다시 한번 - 비판적 지지’가 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오빠가 돌아왔다! 하면서! 1960년대, 당시의 날카로운 시대정신과 생동감만 가져오자! 68에서 후퇴하지도 말고, 스며들고 조우하며 전복하기로 하자! 어떻게? 책을 읽으며!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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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 현장에서 기록한 노동운동과 노동자교육의 역사 서해역사책방 16
역사학연구소 엮음 / 서해문집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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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6년 1월호, 통권139호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노동자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혹자는 ‘계급투쟁을 배우는 계기’라고 대답할 것이고, 다른 이는 현재를 위한 길잡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어깨에 심대한 ‘역사적 짐’을 올려놓는 그 언사는 진정성과는 별개로 역사를 노동자로부터 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노동자에게 역사는 살아있는 역사이며, 살아가는 역사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노동자에게 역사는 자신이 주인공이며 역사의 주체임을 가르쳐 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않았는가? 단순한 양적 발전뿐 아니라 안정적인 조직이 있고, 부족하나마 교육도 진행된다. 위기가 얘기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자동차도 몰고 다니고 심지어 외국여행이나 연수를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노동자에게 역사는 당시보다 더욱 멀어진 듯 한 느낌은 왜일까?

이 책의 백미는 ‘2장 노동자, 역사 기록의 주체로 서다’이다. 책 제목과도 어울리는 이 장은 노동자가 역사를 어떻게 획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전노협 편집실에서 일하였으며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노동운동자료실 연구위원으로 있는 정경원 동지의 글은 노동자가 자기 역사를 쓰는 집단적 작업으로 ‘백서 작업’을 들고 있다. 필자 역시 전노협 백서의 작업과정에 참여하였으며,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의 백서작업과 발전산업노동조합 투쟁백서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경원 동지가 가르쳐 주는 해법은 이런 것이다.

①기록을 남길 때 수단에 얽매이지 말 것 ②백서작업의 기본은 자료수집이며 투쟁 과정에 조직적인 자료수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③가능한 주체 스스로, 최대한 주체를 추동해서 기록하자 ④백서는 과거의 기록과 미래의 평가뿐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

변화를 위한 투쟁은 역사기록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 백서작업과 발전노조 백서작업의 생생한 사례들에서 묻어나오는 것은 ‘역사기록 과정’이 곧 투쟁의 과정이었으며, 이 과정 속에서 투쟁시기만큼의 변화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난하고 힘들었던, 때로는 끔찍했던 투쟁기억을 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돌아보기는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이기에 노동자의 자기 역사 쓰기는 변화의 과정인 것이다. 한통계약직노조 이운재 선전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투쟁한 거에 대해서 글로 써달라고 해도 거부반응이 안 생긴다. 왜냐면 필요성을 공감했기 때문에.’ 단지 거부반응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노동자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몸에 베였다는 뜻이다.

‘투쟁 한복판에서는 투사였던 노동자들이 투쟁의 결과로만 판단해 자신의 능동적인 경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돌아보기는 과정을 묻어두지 않기 위함이다. 돌아보기를 통해 스스로의 삶이 변화했음을,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자신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즉 돌아보기는 행동의 주체인 노동자가 기록의 주체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주체로 서는 길이다.’(95쪽)

평가가 부담스러워 기록하지 않거나, 시간에 쫓기거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아예 시도조차 평가에 대한 부담 때문에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노동자교육과 관련하여 전노협 이전부터 노동자교육에 힘써왔으며 민주노총을 거쳐 노동자교육센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순 대표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또한 70년대부터 청계피복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민종덕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위원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말하자면 이 두 글은 노동자, 노동교육활동가의 일종의 생애사인 셈인데, 추상적인 역사적 흐름 속에서 두 인물이 어떻게 대응해왔고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재미있게,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다. 두 글 모두 유경순 연구원이 기록했다.

또 다른 장은 현대 한국 노동운동사 연구 현황과 과제인데, 다소 어렵기도 하거니와 제목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견해의 차이가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짧막한 글들이기에 해방 이후, 70-86, 87년 이후 세 시기에 대해 참고하고자 할 때 읽어두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장은 노동자교육운동과 관련한 역사이다.

1930년대 최초의 사회주의 학교인 경성 고학당에 대한 글과, 70-80년대의 민중교육운동 속의 파울로 프레이리의 사상의 영향에 대한 글, 더 좁혀 90년대 초반 노동자대학에 대한 사례를 통해 사회 변화 속에서 실패 또는 (노동조합으로의)이전, 중단되고 만 노동교육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각 지역에서 노동교육에 대한 새로운 욕구들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노동교육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지은이들은 머리말에서 라다크의 격언인 ‘‘지혜’란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을 나중에 지금의 아이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는 것’을 들어 돌아보기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자의 역사 형성과 그 역사에 대한 교육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역사는 다른 누군가가 죽이려고 해야 죽일 수 없고, 살리려고 해야 살릴 수 없는, 노동자들 스스로 해야만 하는 작업이며, 그것이 세상을 만들고, 기억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자에게 역사는 자기 역사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역사책들에는 역사의 주인이자 주체인 노동자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며, 노동자들은 역사를 고리타분한 먹물들의 전유물로 여기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억해보자. 80년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던 ‘노동자의 역사’, ‘노동의 역사’ 등의 책들은 내용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시의 학문적인 성과를 체계적인 정리, 쉬운 문체, 짧은 분량으로 많은 청년 노동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 주변의 헌책방이나 부산 보수동 골목으로 숨어들었고 그마저도 이제는 ‘헌책방의 헌책’으로 Kg당 얼마씩의 가격으로 팔려나가는 형편이다.

 


역사학연구소 지음,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2005.11, 서해문집, 1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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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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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기억의 정치를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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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개, 2004, 18,000원


*리뷰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소식지 진보부산 10호 8월호 http://busan.kdlp.org/
건축, 기억의 정치를 보증한다.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가끔 여러 분야에 일을 하는 사람들의 글, 즉 글과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가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소위 ‘글발’이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글이 지식전달과 감동은 고사하고 고치며 읽어야 할만큼 초보적 훈련도 되지 않은 것을 볼 때도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글발은 장난이 아니다.

필자의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승효상이 중앙일보에 건축과 관련한 글을 연재하면서 책을 펴냈다면, 건축가 서현 역시 동아일보에 글을 연재하였고 책을 펴냈다. 서현이 다룬 주제들은 대개 서울이나 광주, 부산 등 한국의 거리에 대한 에세이였다.

얼마 전 한 당원이 자기 동생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불현듯 나는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추천했다. 건축에 대한 문외한(門外漢)인 내가 건축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를 준 책이었다. 하지만 곧 도서 추천을 후회하게 되었는데 책 추천이라는 게 그렇게 심오한 행위는 아니지만 자기 경험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어쩌면 책을 권한다는 것은 책 한 권을 뛰어 넘어 삶의 변화를 권하는 것은 아닐까. 일종의 책임감이 드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건축’이라는 가깝고도 먼 주제에 대한 책이라면 더더욱.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책이 주는 장점은 장르와 시공간을 뛰어 넘어 모든 부분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공간을 바탕으로 하는 미술이나,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 영화 등 직접적 감각에 의존해야만 하는 장르조차도 책을 통해 우리는 그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직접적 감각의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동과 울림은 때때로 말과 글을 통해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부분보다도 건축은 직접적 체험과 그에 대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건축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건축가 김수근의 수제자로서, 한국의 현대건축계를 버티고 서 있는 건축가 승효상은 그 누구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독창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직접적 체험이 무엇보다 중요시될 수밖에 없는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책을 펴냈다. 그것도 건축에 관한 책이다. 건축가의 글은 어떤 모습을 지닌 것일까? 삶의 직접적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가)에 대해 2차적인 책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승효상이 자신의 ‘관습과 타성을 씻고 버려 건축의 본질에 가깝게 가려는 데 큰 자극’을 받았던 건축물과 건축가의 삶에 대해 다룬 책이다. 승효상의 화두는 이런 것이다. ‘토탈 이클립스’라는 영화에서 랭보가 베를렌에게 했던 말,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건축의 궁극적 목표, 목적, 왜 건축을 해야만 하는 지에 대해 끝없는 탐험을 승효상은 하고 있는 것이다.

승효상에 의하면 건축에 대한 일반의 상식은 건축이 예술의 한 분야거나 기술의 한 분야로 포함시키지만, 이는 망상이라는 것이다. 굳이 건축을 인접학문 속에 분류한다면 ‘인문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 속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축이 단순한 기술적 공학이 아님은 물론, 일반 대중의 삶과는 동떨어진 뭔가 고색창연한 예술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삶이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건축은 또한 공간, 즉 장소와는 뗄레야 뗄 수 없으며 건축의 존재의의는 인간의 삶의 영위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혁명만 혁명이 아니다. 흔히 건축의 3대 혁명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발명한 콘크리트이다. 재료적 혁명. 이를 통해 재료의 의지보다는 작가의 의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둘째는 고딕양식의 완성이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인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기억해보자. 이를 통해 벽은 새로운 기능, 창문을 담당할 수 있었고 건축은 ‘중력에서 해방’되었다.
세 번째 혁명은 바로 파리의 ‘뽕삐두 센터’이다. 각종 배관과 설비가 모두 외관에 드러난 상태의 센세이셔널한 건물.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야심찬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뽕삐두 센터는 바로 ‘하이 테크놀로지’의 혁명이었고, 그 자체보다는 ‘하이 테크놀로지’를 만든 ‘정신’이 곧 ‘큰 기술’이었다. ‘우리가 가졌던 종래의 건축개념을 뒤집어 우리가 믿었던 신념들을 다시 반추하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우리 시대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제시’했던 그 ‘정신’이 곧 혁명이라는 것이다.

도시와 주거,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도시정치. 민주노동당이 숙명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우리의 환경이다. 이 외부 환경을 어떻게 바꾸는가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과제임과 동시에 미래의 환경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건축현장이 있으나 건축의 정신과 건축의 목적은 사라진 곳, 재산증식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건축물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곳, 대한민국. 아파트(부동산) 투기 문제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APEC을 대비해 만드는 누리마루가 부산시민의 뇌리에 뿌리박히는 것. 이는 APEC에 대한 정당성, 도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의탁, 한나라당과 성장연합의 주도권이 확고해지는 기제가 된다. 소위 ‘기억의 정치’는 도시 건축물 속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에게는 ‘누리마루’가 ‘기억의 정치’의 기제이다. 부산시민의 바램과 열망을 모아 일체감을 갖게 하고 그 상징을 누리마루에 고스란히 유폐하는 것, 생각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도시 곳곳에 프린트된 누리마루의 경관은 내년 선거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에게는 ‘민주공원’이 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통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 공간은 소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수구 대 개혁의 구도로 허위 전화되면서 ‘누리마루’보다는 약하지만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역사성을 토대로 부산시민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겐 도시정치의 상징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아니 우리의 상징성은 그들과는 달라야 한다. 역사적 조형물, 이벤트의 기념물이 아니라 도시 생활, 부산 시민의 삶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쌓여 나갈 때에만, 도시는 좌파의 강력한 상징을 기억하고자 할 것이다. 바로 뽕삐두 센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종래의 개념을 뒤집고 신념을 다시 반추하는 것, 이를 통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 건축과 정치가 만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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