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끝나지 않은 혁명 - 성 역할의 혁명, 고령화에 대응하는 복지국가의 도전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지음, 주은선 외 옮김 / 나눔의집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 8월호
‘불완전한 여성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복지국가의 도전!
양솔규 노동당 기획조정실 국장
『끝나지 않은 혁명』/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 / 나눔의집 / 2014년3월 / 14,000원
7월3일, 다른 당 또는 당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다양한 결사들에 이어 노동당 내에도 드디어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출범 선언문에는 “우리는 단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기본적인 삶을 보장 받는 보편적인 복지국가의 미래를 꿈꾼다……복지국가의 이상이 구현되는 날까지 노동당 사회민주주의 당원모임은 힘찬 전진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선언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동당 사회민주주의당원모임>의 출범 선언문에는 ‘복지국가’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종목표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매우 특수한 세계사적 조건(예컨대 냉전) 하에서 형성된 체제이지만,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금까지 현실성 있는 모델로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물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도 복잡하고 다양하며 명징하지 않은 혼돈 자체이기도 하다. 노동당 강령은 이와 관련해 “복지국가라는 빛나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를 훼손하는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데 실패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또한 극복 대상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언급은 한편으로는 복지국가를 긍정적인 성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지금 현실에 맞게 복지국가를 뜯어 고쳐 개선된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또는 복지국가라는 역사적 성과와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실패한 책임을 ‘사회민주주의’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만만치 않은 반론이 계속되어 왔다.
세계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출산률 저하, 이혼율 상승, 노동력 부족이라는 인구학적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것과 함께 이러한 중차대한 과제들을 함께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밋빛 미래는 없다.
덴마크 출신의 사회학자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은 1990년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복지국가의 유형을 ‘탈상품화’의 기준과 복지국가 정책에 따라 자유주의 유형(미국 등), 보수주의-조합주의 유형(독일,프랑스 등), 사회민주주의 유형(북유럽 스칸디나비아)으로 분류한 바 있다. 탈상품화는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복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복지국가에도 상당한 균열과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에스핑 안데르센은 이른바 영미형 수렴론을 경험적으로 반박한다.
이 책 『끝나지 않은 혁명』은 에스핑 안데르센의 최신작으로서 여성의 역할과 가족의 변화, 이에 대한 복지국가의 대응을 다룬다. 그는 이 책의 초점을 ‘여성의 변화하는 지위’이며 이러한 변화가 ‘혁명적인 격동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증가하는 여성 노동시장 참여, 가정 내 노동 분담, 자녀에 대한 투자 등 ‘성 평등적 균형’이 형성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 평등적 균형’은 충분하지 않고 혁명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이다. ‘미완’은 극심한 저출산, 가구소득의 양극화, 부모의 자녀투자에서의 양극화, 성별분업 및 젠더 평등의 양극화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시민들 대다수는 매우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 놓여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들(최적 이하의 결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바로 ‘성 평등적 균형’이 지배적인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저소득, 저학력자들 사이에서의 성 평등화가 필요하다. 또한 복지국가의 혁신, 즉 ‘성 평등적인 복지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가족정책이 여성혁명의 성숙을 가속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은 노년기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결국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은 이를 ‘연금 개혁은 아이들로부터 시작된다.’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집약한다. 양질의 돌봄과 교육 평등을 위한 복지국가의 개입이 세대 간 공평성과 세대 내 평등을 동시에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내공이 집약되어 있는 잘 짜여진 퍼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적인 구석이 없지 않다. 그가 주장하듯이 가족과 여성 역할의 변화가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거나 심화시킨다는(그는 그렇기에 미완의 여성혁명을 복지국가의 조력 속에서 더욱 밀어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소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반론이 없지 않을 듯하다. 그가 전제로 받아들이는 다니엘 벨 류의 ‘탈산업사회’론도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그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 개입은 물론 정당하게 강조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마치 해결의 유일한 키워드인 것처럼 강조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그가 얘기하듯 지체된 국가 대한민국의 복지 수준을 상기해보면 이들의 이론적 검토와 정책적 실천이 부럽기만 하다. 예컨대 그는 대규모의 이민이 발생했을 때, 이민 자녀들에게 집중적인 교육지원을 하는 스웨덴에서조차도, “이민 자녀의 학업 실패 가능성은 자국민의 5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이민 가족 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학업 실패 가능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은 다른 북유럽의 저명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복지국가론이든, 자본주의 국가론이든, 사회사상이든 영미의 학자들에 의존하는 지적 풍토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평가받지 못했다. 그의 역작인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역시 16~17년이 지나서야 번역이 되었다. 그나마 번역이라도 된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첨언하자면 이 책을 번역한 주은선, 김영미 교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다룬 『노르딕 모델』(삼천리)과, 가이 스탠딩, E.O.라이트, 빠레이스 등의 ‘기본소득’ 논쟁을 다룬 『분배의 재구성』 등 중요한 저작들을 공동 번역했다. 정말 판매가 가능한 지 모를 정도로 척박한 사회복지 분야의 최근의 논의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역자들의 노고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진보진영 내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론자들의 공세(?)가 약간 주춤한 듯도 한데, 에스핑 안데르센의 저서를 통해 보다 더 실천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노동당은 자극이 필요하다.
<더 읽을만한 책>
『변화하는 복지국가』/고스타 에스핑 앤더슨 / 인간과복지 / 1999년8월 / 12,000원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 일신사 / 2006년7월 / 20,000원
『복지체제의 위기와 대응』 / G. 에스핑앤더슨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7년1월 / 20,000원
『복지국가론 개정2판』 / 성경륭, 김태성 / 나남출판 / 2014년3월 / 28,000원 (복지국가론을 공부할 때 가장 기초적으로 봐야 할 개론서이다.)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 이창곤 / 밈 / 2010년11월 / 15,000원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1, 2』(인간과복지) 이후 최근의 논의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