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선소 노동자 -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 코난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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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52(2019년 여름호)

 

병든 조선소와 사회를 바꾸는 용기 있는 증언

 

, 조선소 노동자/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코난북스/20194/15,000

   

       

양솔규(편집위원장)

 

지난 연대와소통(51) 책담에서는 “‘조선소 3부작을 통해 본 갈림길에 선 조선산업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소와 관련된 책 3권을 다룬바 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현대조선 잔혹사, 누운 배가 그것인데, 이번 호에도 조선소에 대한 책을 다뤄야겠다. 조선소 현실에 대해, 특히 하청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서술한 중요한 책이 발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을 기록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 조선소 노동자20175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프로젝트에서 벌어진 크레인 충돌 참사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에 대한 책이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을 하고, 심리상담사, 기록노동자, 활동가 등이 생존 노동자 9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어 냈다. ‘노동절에 근무하다가 벌어진 이 참사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 뿐만 아니라 최소로 잡아 161명의 노동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그만큼 끔직한 사고였다. 그러나 때는 박근혜가 탄핵 당한 뒤 대통령 선거가 한참 진행중인 시기였다. 사고 뉴스가 나오긴 했지만, 다른 뉴스에 가려, 또는 관심이 없어서, 놀러가느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던 듯하다.

    

책 제목은 책의 내용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 주기 마련이다. 이 책의 제목 , 조선소 노동자는 영국의 유명한 좌파 영화감독 캔 로치가 만들어 2016년 그에게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심장병에 걸려 실직한 다니엘 블레이크는 어이없는 자본주의 관료주의의 벽에 막혀 실업급여 수급에 실패하자 복지과 벽에 ,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스프레이로 휘갈긴다. 이후 부당한 실업급여 지급 거부에 항소하지만, 심장마비가 와 결국 재판정에 서지도 못한다. 항소 법정에서 읽기 위해 그가 쓴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아왔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으며,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잃어버린 자존심을 찾기 위해선, 밀려오는 수치심을 덜어내기 위해선 내가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선언해야만 했다.

    

다시 거제로 돌아오자. 왜 이 책의 제목이 , 조선소 노동자이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 사람만이 자기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나 2년 전 노동절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또한 삼성중공업 자본 측이나 산재와 치료를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의료진들도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건 당사자인 원청인 삼성중공업은 진짜 문자 한 통, 전화고 지랄이고 아무 것도 없었고, 노동부는 모르겠고, 노동조합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힘을 행사할 기관들, 국가 기관들이 안전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149) 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오로지 공기단축을 위해 투입하는 생산요소로만 생각하는 산업시스템 속에서 그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끔찍한 산업재해 현장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난 뒤 한동안 또 악몽에 시달리고 약을 늘려야 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상존하는 조선소 노동현장과 그날의 사고에 대해서 증언했다. 더 이상 끔찍한 사고가 노동현장에서 사라지기를, 아무 잘못 없이 죽어가는 동료가 더 이상 없기를,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힘겹게 증언하는 그들의 용기는 캔 로치의 영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과장, 부장, 법인 등은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골리앗크레인 신호수와 보조 신호수, 조작 관계자 등에게는 금고에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말하자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질 사람도, 잘못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수없이 죽어도 멀쩡한 세상이다. 아무리 산재와 직업병과 노동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금세 꺼지고 마는 거품처럼 달아올랐던 관심은 사그라들고 만다. 우리 역시도 이러한 현실의 공범에 다름 아니었다. 사회구성원들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현실이 되고, 기록이 되며, 힘이 될 수 있다. 세월호 투쟁에서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단순한 약속이 하나하나 모여 거대한 광장의 촛불로 타오르지 않았던가.

 

사고 난 이후 제가 가장 감동했던 때가 세월호 부모님들께서 자식 잃은 아픔 속에서도 계속 말씀하시는 걸 봤을 때예요. 그런 분들 보면서 저도 용기를 가져요.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게 통과될 날이 오겠죠. 그러니 기록을 남겨야죠. 저는 살아 있으니까요. 불쌍한 제 동생의 인생이 이렇게 기록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173)

 

사고 유가족인 동시에 부상자인 형의 다짐이 바로 증언 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아마 누구라도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마치 자신이 사고 현장에 있는 듯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묘사에 두근두근한 마음, 떨리는 자신의 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고 현장 곳곳에 있던 증언자들의 눈과 기억이 카메라가 되고, 구술기록자들은 전쟁의 포화에 무너져 내린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종군기자들처럼 꼼꼼하다. 사고현장에 대한 기록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그들이 각각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곳 땅끝 거제도 삼성중공업에 흘러들어왔으며, 어떤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은 쉬는 노동절날 사고 현장으로 모여들었는지, 사고 후 그들의 말 못할 트라우마와 고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구술자들은 공통적으로 환청과 환영, 불면과 짜증, 무기력과 분노표출이 지속되고 있으며, 오로지 이들 가족들과 자신 스스로가 책임지고 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들의 구술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사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사고 구술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주는 생생한 고발장이다.

 

초보자들이 일을 배우면 하청회사 입장에서는 돈을 더 줘야 하잖아요. 그러기 싫겠죠. 그래서 일부러 가르치지 않고 그냥 계속 숙련되지 않은 채로 두는 거예요. 구조가 정말 구려요. 초보자들은 일을 잘 모르니까 더 느려지고 더 위험해지고요. (37)

 

그런 게 얄미운 거예요. 말로는 안전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납기일에 쫓긴다 싶으면 위에서 용접하고 밑에서는 페인트 바르고, 그러다 사고 나면 일하는 너그들 책임이다 하고. 우리가 페인트 바르려고 오는데 용접하고 있으면 작업자들끼리 싸워요. 위에서 이렇게 지시를 내려놓고는. 일은 꿀벌들이 하고 꿀 먹는 놈은 삼성이고. (239~241)

 

조선소 일을 ‘3D 업종이라고 하잖아요. 이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크레인 일, 조선소 일,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한 걸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젖어 들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예요. (98)

 

사내하청과 물량팀, 돌관작업, 혼재작업, 계절노동, 이주노동 등을 담당했던 그 현장의 노동자들이 생생하게 온몸으로 견뎌 내면서 보고 겪었던 산업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뿌리 깊게 비인간성이 착근되어 있다. 왜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삼성중공업에서, 대우조선해양에서, STX에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기록되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제대로 몰랐던 진실……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무뎌짐과 오만함이, 혹여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조한 것은 아닐까묻는 기획자의 질문이 아리게 다가온다. 조선소를 일종의 막장이라 부르고, 세상의 끝이라 부르지만, 또 한편으론 산업의 최전선이다. 서울과 대척점에 선 그곳. 다수인 수도권의, 젊은, 비생산직 인구는 상상할 수 없는 산업현실. 그리고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무뎌져 버린노동운동. 과연 이런 책이 80년대 나왔다면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이미 87년이 40년도 넘게 흘렀는데 과연 노동산업현장이 좋아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경상남도와 국립민속박물관이 2013년도에 펴낸 <조선소 도시, 거제>에는 이런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 없다. 이미 당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비율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산업재해 역시 여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 과거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626) 여영국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는 , 조선소 노동자북 콘서트가 열린다.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입법화하기 위한 활동도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001~2017년 매년 평균 2,366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으며,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일본, 독일의 5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뿌리 깊게 착근되어 있다고 해서 뿌리 뽑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병든 사회에서, 병든 현장에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은 노동자, 그러나 그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또한 현장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나섰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낸 용기 있는 증언은 무뎌진 우리에게도 용기를 주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시민건강연구소/낮은산/20187/14,000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 활동보고서/마틴링게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2019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20188/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조선소 일을 ‘3D 업종’이라고 하잖아요. 이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크레인 일, 조선소 일,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한 걸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젖어 들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예요. - P98

그런 게 얄미운 거예요. 말로는 안전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납기일에 쫓긴다 싶으면 위에서 용접하고 밑에서는 페인트 바르고, 그러다 사고 나면 일하는 너그들 책임이다 하고. 우리가 페인트 바르려고 오는데 용접하고 있으면 작업자들끼리 싸워요. 위에서 이렇게 지시를 내려놓고는. 일은 꿀벌들이 하고 꿀 먹는 놈은 삼성이고. - P239

초보자들이 일을 배우면 하청회사 입장에서는 돈을 더 줘야 하잖아요. 그러기 싫겠죠. 그래서 일부러 가르치지 않고 그냥 계속 숙련되지 않은 채로 두는 거예요. 구조가 정말 구려요. 초보자들은 일을 잘 모르니까 더 느려지고 더 위험해지고요. - P37

사고 난 이후 제가 가장 감동했던 때가 세월호 부모님들께서 자식 잃은 아픔 속에서도 계속 말씀하시는 걸 봤을 때예요. 그런 분들 보면서 저도 용기를 가져요.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게 통과될 날이 오겠죠. 그러니 기록을 남겨야죠. 저는 살아 있으니까요. 불쌍한 제 동생의 인생이 이렇게 기록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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