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좀머 씨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 사서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사기 바로 전에 나는 <까트린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의 총 페이지 수는 104쪽 이었고, 104쪽 모두 글자로 빼곡이 매워진 종류의 것이 아니라 종종 아기자기한 삽화가 그려 넣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매우 인상이 깊었다. 그 후 며칠 뒤에 나는 서점에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제목의 어감도 비슷하고 페이지 수 또한 120쪽 이었으며, 장 자크 상페라는 사람의 삽화가 그려 넣어진 소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책이 바로 <좀머 씨 이야기>다.

내용상의 구조는 주인공이 어렸을 때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돌이켜 보면서 그에 연관되어 좀머 씨의 일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언덕에서의 어린이의 날개 짓과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의 쓸모 없어짐. 그리고 피아노 선생님 댁에서의 기분상하는 일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껴서 자신의 특기인 나무 타기를 시도해서 30m높이의 나무에 올라가는데 성공하지만 좀머 씨의 신음으로 가득찬 휴식을 내려다보고는 자살기도 포기. 우박 속에서 좀머 씨와의 만남에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는 외침 뒤의 좀머 씨의 실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인공인 ‘나’가 좀머 씨라고 하는 사람에 대하여 바라보며 썼던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로써 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의 유년기에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던 좀머 씨에 대한 내용이다. 좀머 씨는 밀폐 공포증이라는(정도가 아주 심한)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길다란 호두나무 지팡이와 배낭을 가지고는 걸어 다녔다. 일년 열두 달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방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온전한 이름조차 모른다. 후에 그가 더 이상 나무를 탈 수 없게 된 주인공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간 후에 (호숫 물 속으로 걸어갔으니까 죽었음이 틀림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온전한 이름을 알게 된다. 막시 밀리 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른이 되어버린 주인공의 추억을 회상하는 분위기이다. 항상 그렇듯이 현실은 추하다고 느껴지고, 추억은 항상 아름답게 기억되기 마련이어서 매우 부드럽고 선한 느낌을 지니고 읽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약한 마음으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종류의 것이고, 그저 순수한 마음만으로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소박함이 배어있다. 하지만 글의 전체적인 내용이 가볍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순수하고 화려한 장식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좀머 씨의 죽음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공포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자에 대한 동정일까? 어쩌면 주인공도 좀머 씨를 동정해서 그가 호수 속으로 걸어갈 때, 침묵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을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를 그리워 하지 않았다. 좀머 씨의 부인인 리들 아주머니는 좀머 씨의 몇가지 물건들을 지하실의 한 구석으로 몰아 놓고, 그 방을 여름 행락객들에게 빌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여름 행랑객’이라고 부르지 않기 위해서 어지간히 노력을 했다. (좀머 Sommer 씨는 독일어로 ‘여름’이라는 뜻)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슬프다. 같이 마주하며 살던 사람이 사라졌음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단지 ‘눈에 걸리적 거리던 무언가가 어느날 사라졌다’ 뿐인 것이다. 아니, 농담 거리는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그들에게 좀머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좀머 씨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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