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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RE:BORN - 가장 어려운 순간, 다시 태어나다
홍사라 지음 / 치읓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홍사라"라는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30대 초중반쯤 되는 미혼의 여성을 어슴푸레 떠올렸다. "사라"라는 이름이 세련되게 들려서 이름의 주인공이 나이가 많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이름은 필명이었다.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따 온 이름. "사라"의 의미는 "열국의 어머니"이다.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들의 조상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담은 이 이름은 <리본>의 저자가 스스로를 축복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알코올 중독자이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투시는 소리를 들으며 불안정하게 자란 유년기,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육아와 한 번의 유산과 암투병을 거치며 달팽이의 속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성인기를 반복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삶을 <리본>, 즉 RE:BORN (다시 태어남)이라는 측면에서 바라 본다.

홍사라 씨는 자신이 겪은 고통은 단순한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한다.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 208페이지
나는 여태까지 고통에도 의미가 있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그것이 사명에 해당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통을 사명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오프라 윈프리, 그리고 그 말을 인용하여 다시 강조하는 홍사라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득당했다. 나도 상처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가정 폭력, 연애를 하면서 존중 받지 못했던 경험, 그리고 20대 후반에 찾아 온 조울증까지. 홍사라 씨가 그녀만의 상채기들을 가지고 있듯이 나도 나만의 상흔들을 가지고 살아 간다. 내가 가슴 속에 묻어 둔 아픈 얼룩과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병이 나의 "사명"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살아 보려고 한다. 저 문장을 자신의 책에 운반해 준 홍사라 씨에게 고맙다.
또 이 책이 좋았던 건, 홍사라 씨가 곱게 수집한 다른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서였다. 두 가지 정도만 예로 들어 본다. 그 중 하나는 링컨 이야기였다.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조각이 발견되었다.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라고 적힌 신문 기사 한 조각이었다.
- 100페이지
이 이야기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링컨처럼 위대한 사람조차 기댈 곳이 필요했다니.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신문 기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위안을 받았다니. 어쩌면 링컨 같은 위인은 평범한 위로 따윈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편견이 지나친 것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이 대목을 보고 당시의 링컨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고, 우리가 서로의 의미와 소중함을 귓가에 속삭여 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다.
설리번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다.
- 64페이지
설리번이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수용된 일화를 나는 처음 접했다. 내가 기억하는 헬렌 켈러와 설리번의 이야기는, 헬렌 켈러가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짐승처럼 방치되어 있었을 때, 설리번이 헬렌 켈러에게 다가가 손바닥에 물을 부어 주고 손가락으로 "water"이라는 단어를 써서 최초의 소통에 성공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설리번에게도 그토록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거나, 듣고도 잊고 있었다. 정신병원에까지 수용된 설리번의 과거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 오는 이유는 나 또한 같은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설리번과 헬렌 켈러의 이야기야 말로, 고통을 고통이 아닌 사명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설리번의 고통은 단순한 고통이 아닌, 헬렌 켈러를 키워 낸 사명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리본 RE:BORN>은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동시대인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저자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저자가 전해 주는 이야기들은 깊고 다사롭다. 좋은 책을 접하게 해 준 치읓출판사에서 출간할 다음 책도 기대해 본다.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 P208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조각이 발견되었다.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라고 적힌 신문 기사 한 조각이었다. - P100
설리번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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