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로우 - 무한경쟁 시대를 넘어서기 위하여
플로리안 오피츠 지음, 박병화 옮김 / 로도스 / 2012년 3월
평점 :
더글러스 톰킨스라는 양반이 노스페이스의 창립자 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띠지에 제대로 낚였다. - 플로리안 오피츠(이 글의 저자)인 줄 착각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자기계발서 내지는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같은 에세이나 어쩌면 생태 환경학 같은 종류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와 감독(다큐멘터리)일을 하면서 느낀 가속화에 대한 회의, 시간은 도대체가 왜 부족한 것일까? 속도와 경쟁에 집착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만나는 여정속에서 저자가 이해 못하는 것과 깨달음, 불안, 성찰, 그리고 다소 파격적인 대안까지도 오롯히 담아내는 인문학적인, 그런 책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기에 가까운 멀티테스킹 작업과 우선 순위를 정하여 처리하는 일들도 결국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분 초를 쪼개 쓰는 사람들, 100만분의 1초 빠른 뉴스를 전송하기 위해, 전송받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에 사람은 없다. '우리가 이러한 속도전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속도전은 누구에게 유익한가? 더 나은 세계와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난 몇십 년 동안 끊임없이 개발된 기술과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 효율성으로 절약한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그 시간을 훔쳐가기라도 한 것일까?' - p19
그리고, 늘 시간에 쫒기고 불안해 한다. 더 많은 정보를 알기 위해 사람들은 인터넷에 들어 가지만 곧 길을 헤매인다. 싸이월드의 파도를 타듯 링크를 타고 돌다 보면 애초에 내가 왜 접속했는지에 대해 잃어버리고 만다. 끊임없이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고 한 페이지 정도 되는 글은 스크롤을 내려버려 본인이 원한다고 하는 정보만 찾아 읽는....... 정신은 무감각해지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소통에 매달리지만 여전히 단편적인 SNS나 채팅같이 빠르게 더욱 빠르게 나의 관심사를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다닐 뿐이다. 모든 것을 관장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탈진.... 허무, 낙담, "인생은 선택, 한계를 인정하고 집중하세요." 디지털 세계와 6개월간 단절한 기자의 인터뷰는 생경하다.
거래소에서 주식을 사람이 마우스 클릭질로 판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일부 개미들은 그렇게 하겠지....... 초당 1,000건이 넘는 주식들이 마이크로 초단위로 변동하는 이익에 따라 기계적인 프로그램 매매로 사고 팔린다.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곳. 기계가 이미 점령하고 인간은 쓸모없어졌다. 사람을 위해 기계가 만들어졌으나 되려 사람의 가치가 필요없어지는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 이렇게 까지 빨라져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 - 우리가 아니고 아마 그.. 아주 극소수의 이익을 챙겨가는 그들(유한한 생명인데 돈을 싸들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들어갈 것인가.) "인간의 일상 생활과 복지에 의해 좌우되어야 할 경제가 왜 컴퓨터의 통제에 맡겨져야 하는 걸까?" -p129 알고 있으면서도 충격적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참담하다. "나는 왜 사람들이 속도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는 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태연했다. "모두 그렇게 하니까요. 기술을 개발하니까 그 기술을 이용하는 겁니다." -p 131
그렇다면 이 가속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불안해 하지 않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대안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다큐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활자로 날아 든다. 제도권을 탈출해 산장에서 감자를 깎으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금융 전문가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분주한 일상과 의도적으로 거리 두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행복....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 문제는 제도권 안에 벗어나기가 그의 말처럼 거짓말처럼 저지르기 쉽지 않다는 것... 그러면 스위스 산골 농장에서 소와 양을 키우는 바츨리 가족은 어떠한지.... 이들은 저자가 보기에 바람직한 삶을 위한 투쟁이라 보는 것 같다. 1년 365일 하루의 휴가도 없이 새벽 세네시에 일어나 젖을 짜고 일을 시작하는 이 사람들은 그 일을 행복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삶을 살 수 없지 않는가. 저자가 찾는 것은 현재이 가속화된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대안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나는 4,000년 후를 기대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노스페이스 창업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본다. 톰킨스의 급진적인 사명감만이 지구와 인간을 다시 건강한 속도로 끌어내리는 대안이 될까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다시 품으며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인 부탄으로 떠난다.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민총행복론의 실제 삶을 들여다 보고 과감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대안으로 내 놓은 것이 조건없는 기본소득 즉, 빈부남녀를 가리지 않고 월 200만원의 기본금액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18세 미만의 아이는 절반의 금액을 국가에서 보조해 주어 삶의 가치를 높이자는 것인데 재원확보가 불가능하고 물가가 올라 소비와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며 필요에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이 돈을 받는다면 일을 하려 들지 않고 놀 것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확실히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유토피아적 생각이다.
문제는 인간이란 생물 자체가 스스로의 이익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바 의식이 성숙되고 인격이 높아져도 현실적인 내 문제로 다가오면 쉽게 동조하지 않거나 극렬하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일견 수정된 공산주의 체계라고 보여지는 - 비록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갖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행복을 구현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 이런 논지는 아무리 인식 능력이 뛰어나게 진화할지라도 인간 본연의 불완전체로 인하여 가능한 현실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내가 낸 세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 안하고 탱자탱자하면서 노는 멀쩡한 녀석들을 위해 (걔네 행복과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곰곰히 생각해 보자면 무척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행복의 기준이 모두 다른 시점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저자는 행복한 삶에 필요한 공식이나 가속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대안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해야 하며 주어진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가속화를 멈춘다는 것은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고 그것은 시간을 절약하거나 건강하게 주말을 보내는 습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생은 유한하다. 질병과 죽음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올 수 있다. 그때가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지칠때 까지 일하던 생활? 그럴 수는 없다. p 259
이 책에서는 어떠한 답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각기 다른 삶을 들여다 보면서 묻고 회의하고 스스로 깨닫고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가속화에 대한 논의가 너무 개인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인 흐름을 돌려 볼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거시적인 대안을 생각했다면 너무 큰 기대였을까.... 어쨌거나 [슬로우]는 그 시작점에 서는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고 시발점이 될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