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 강의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읽은, 인상 깊의 푸코의 일화 한토막이 어렴풋이 기억이나 나서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2012년 2월 경향신문에 한 기자가 문화란에 쓴 글이 검색이 되어 나오네요. 뭐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푸코에게 ‘너 어디 가니?’ 하고 묻자 그는 ‘목을 맬 줄을 사러 베아슈베(염가상품 백화점)에 간다’고 대답해 놀라게 했다.” 고등사범학교 시절 20대 초반의 미셸 푸코는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고 정신치료기관을 찾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고 혼란을 겪었던 탓이 컸다. 푸코가 ‘광인’과 ‘정상인’을 가르는 불확실한 선을 처음 접한 순간이다. - 아마 그린비에서 출간한 인물 시리즈 중 <미셸 푸코, 1926~1984> 의 내용 일부를 가져온 듯 싶습니다.

 

 

미셸 푸코는 사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푸코를 격렬히 비판한 위르겐 하버마스조차도 “우리 세대의 철학자 집단 가운데 시대정신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니 말입니다. 하지만 푸코의 책은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 합니다. 그의 책은 우리나라 말로 옮기기에 알맞은 단어를 찾기가 어렵고 문장 자체도 그러하여 많은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을 하여도 늘 오역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도 합니다. 사실 푸코의 책은 원서 읽기도 만만찮은 품이 들어가는 고생스러운(?) 시간의 품 안에 놓여 있지요.

 

 

난장이라는 꽤 괜찮은 출판사가 푸코 사후 1997년부터 계속 발간되고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1970~1984)를 2011년부터 꾸준히 번역 내놓고 있습니다. 푸코는 1976년 <성의 역사> 1권을 내놓고도 8년이나 지난 1984년에야 2·3권을 출판하였는데 1권과 사뭇 다른 주제와 문제의식으로, 그 사이 푸코가 어떤 사유의 변화를 보였는지 추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강의로 전체 13강의 강의록을 계속 발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등 현대 정치철학을 주도하는 사상가들이 공공연하고도 은밀하게 이 강의록을 참조해 왔다고 합니다. 어쨌든 국내에 푸코의 책은 꽤 꾸준히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데요 2013년 프랑스에서 푸코의 또 다른 강연의 수고(手稿)들과 녹음테이프의 전사본들 중 몇 몇을 모아 만든 책이 바로 [문학의 고고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푸코 사유의 '잃어버린 고리'를 드러내어 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하는데요. 김현선생은 문학에 관한 푸코의 논문들을 묶어 옮긴 자신의 연구서에 푸코의 1960년대를 푸코의 사유에 있어서의 '문학 시기'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1969년~70년경 이루어진 이중적 사유의 퇴조 이후 푸코는 이전처럼 문학과 미술을 그 자체로 다루지 않았는데 출판 자체로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이 책들은 대부분 그의 사후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취합하여 나왔는데 문학과 미술에 관한 그의 사유는 수많은 잡지와 논문에 파편적으로 뿌려져 있어 극소수의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문학의 고고학]이라는 책에는 바로 푸코가 '문학'에 대한 관념을 단 한번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문학에 대한 '전복적, 위반적' 정의를 제출하고 있는 2부의 '문학에 대한 강의'가 들어 있는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편인 '광기의 언어'는 1963년 프랑스 방송에서 강연한 5회 방송분 중 '광인들의 침묵'과 '광기의 언어' 두 편을 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꽤 괴로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휴가지에서 읽은 터라 아무래도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기도 했었던 이유도 있고 사실 저는 빨리 책장을 넘기고 3편인 '사드에 대한 강의'를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사드의 작품은 범인의 눈으로 보이는대로만 해석하기에는 꽤 높은 담벼락이 존재하고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에 수록된, 푸코가 1970년 버팔로 뉴욕주립대학에서 강의한 것을 읽고 나니 어렴풋이 그가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 특히나 사드의 글쓰기에 대한 해석은 이전에 제가 읽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안이하게 접근했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사드에 있어서의 진실과 욕망의 관계라는 문제를 다룬 첫번째 강연을 읽고 난 뒤 사드의 책을 푸코의 관점으로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주 정도에는 <미덕의 불운>을 재독할 예정입니다. 두번째 강연에서는 사드의 텍스트에서 '장면'과 '담론' 사이의 교차작용에 대하여 나긋하게 설명해주는데 역시 강의라는 구술언어의 특성상 꽤 편안하게 들립니다.

 

 

" 처음으로 떠오르는 생각 혹은 설명은 물론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결국, 에로틱한 장면과 교차하는 이 담론은 이 에로틱한 장면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그곳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장면은 사태. 행위를 재현할 것이고, 연기는 희곡(dramaturgie)과 연극 안에 나타나는 섹슈얼리티를 재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담론은, 결국에는 혹은 이미 사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기 위해, 이전 혹은 다음의 문장에서 장면으로 연출된 것을 보여주고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p242"

 

 

기존에 읽었던 푸코의 다른 책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마 대중들을 위해 좀 더 자연스럽고 쉽게 풀어 설명한 구술어라 그런듯 싶습니다. 2편은 <말과 사물>을 읽어본 분들 이라면 편안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강의여서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텀을 두고 1편을 다시 재독하였는데 한번 훑은(?) 내용이어서 그런지 눈에 들어와서 모처럼 휴가기간에 즐겁게 푸코의 책을 즐긴 것 같습니다.

 

 

[문학의 고고학]인 푸코의 강의록을 읽다 보면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적절하게 섞어 이해도를 높여 주는데요. 라캉의 욕망이론을 접해보신 분이라면 더욱 더 재미있게(?) 읽어보실만 할 듯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