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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
완벽한 서사, 정갈한 문체, 강렬한 주제의식, 스토리의 힘, 그리고 여운을,감동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결말. 이런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사람들은 재미있다, 읽을만 하다. 하고 인색한 평가를 내리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이런 완벽한 구성을 지니지 않는 태생적 반항기가 있다. 소위 미니멀리즘 소설이라 하는 - 단편소설과는 조금 다른 -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연작집과 같은 것은 논외로 치자고 하자면 생태주의 소설의 원조 격인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 혹은 존 바스나 토머스 핀천의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같은 장편 소설인 경우에도 저 위에서 나열한 어떠한 것 하나 정도만 겨우 보일 뿐이지 도무지 소설로 보기엔(전통적인, 우리가 늘상 알고 있는) 일반 독자들로서는 영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소위 고급독자께서 주제 넘게 주위에 권유를 잘못했다가 " 그래 너 잘났다 새꺄." 하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중엔 사실 상당한 지적 능력이 동반되지 않는 상태에서에서는 도무지 읽혀지지 않는 것들이 꽤 많은데 대표격인 것이 바로 고전 소설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는 즐길 수 없는 이런 것들은 굳이 소설 따위를 읽는 데 그 배경지식을 미리 보시기엔 시간이 너무나 길고 아까워( 그 시간엔 보통 딴 짓을 하기 일쑤이지만 ) 그리하여 외피만 두른 줄거리에 탐닉하게 되고 그 이유 하나로 재미 있다 없다를 판단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 마냥 - 물론 자신에겐 주관적이고도 절대적인 진실이겠지 - 주위 사람들에게 떠들어 댄다. 대부분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너도 그러할테고. (그냥 개인적으로 주절거린 것이니 오해 말길. 요건 이책과 다른 책을 같이읽어 나가다 든 생각이다.)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단순한 재미, 흥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 말초적인 주제(대부분..), 그리고 뜻밖의 반전으로 머리를 아득하게 만들어 주는 결말. 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우리들은 좋았다. 강렬했다. 하고 겨우 만족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한치의 오차라도 생기게 된다면 비참하게 버림받고야 만다. 장르란 그렇다. 자체로 소설은 태생적으로 완벽해야 한다. 여기에 소설가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현역 최고의 추리소설가. 작품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미야베 미유키(발이 어디까지 뻗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이 필요없는 일본 대표추리 작가 아닌가)와는 달리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작품에 별로 실패하지 않음에도 꽤 다작인 것은 의외이다. 그만큼 그의 소설을 추리소설에 관한 한 완벽하다는 칭송으르 듣는다. 1985년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 1999년 [비밀]로 제5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걸 보니 말이다. 우리 나라에선 [백야행]이 영화화 되기도 했다 - 결과적으로 망하긴 했지만 소설이 망한 것은 아니였다. - 어쨌거나 올해 벽두부터 꽤 쌈박한 이야기 꺼리로 우릴 또 찾아왔다. 이름하여 [플래티나 데이터]는 영화 <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아이덴티티>의 부분 데자뷰를 보는 듯 살짝 클리셰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스토리 셀링으로 극복해 내어 가다가 마침내 그것을 뛰어 넘는데 (소재 고갈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필립 딕에 대한 오마쥬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얼추 어찌하다 보니 비슷해져 버린건지 알 수는 없지만) 동 서양 사람들의 마인드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근래에 읽었던 정유정님의 "내 신장을 쏴라" 와 이 책의 결말(내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운명론적 사고 방식에 아직도 꽤 얽매어져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트라우마에 의한 다중 인격은 추리 소설이나 범죄소설에서 제법 흔하게 되어 버린 소재다. 또한 DNA를 이용하여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무단으로 - 합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이거나 상관없이 - 사용하여 범죄자를 잡아 내는 행위 또한(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범죄 예방을 위해 예비 살인자를 미리 찾아내는 것이라면 플래티나 데이터는 이미 벌어진 범죄에 대해 범죄자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체포하여 누구든지 범인은 잡히니 저지르지 말아라 식의 예방활동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즐겨 사용하던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것을 교묘하게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엮어 훌륭한 스토리셀링을 만들어낸다.
추리소설 특성상 줄거리든가 결말을 얘기해 버리면 김이 쑥 빠져 버리듯 - 단물 다 빠져버린, 그런 얘기 혹시 소개하자면, 누군가 모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쳇!! - 어느 아해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영화를 예매하고 극장에 들어가려는 순간 영화를 이미 본 또 다른 녀석이(욕을 반드시 해줘야 하는데 쩝...)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라고 소리치는 통에 영화 보는 내내 맥이 쭉 빠졌다는 말처럼 소설에 관한 줄거리는 내버려두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과연 재미로만 요런 추리소설을 썼는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보듯 문명의 발달과 감성의 쇠퇴가 낳는 비극을 통해 전체주의 속에서 소수 가진자만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특기할만 한데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때 프랑스 만화인 어둠의 도시들 연작 중 <우르비캉드의 광기>에서 도시를 완벽한 대칭으로 설계하고 싶은 도시 설계가이자 건축가인 주인공 유겐 로빅이 위원회로 부터 새로운 통로애 관한 허가를 얻기 위해 설득을 하다 위원회의 수장이 로빅에게 한 말이 기억에 선명한데 다음과 같다 " 새로운 통로는 항상 새로운 틈새를 만들어 내고 그러면 다시 새로운 통치 체제가 필요하게 되는 법이오. 우리는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싶지 않소. " 권력의 속성상 플래티나 데이터 처럼 새로운 정보의 독점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거나 위의 경우처럼 아예 정보 자체의 통제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자는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민주주의(정확하게 말하자면 천박한 공리주의 겠지만) 권력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지배의 모습이고 후자는 북한의 김정일 체계에서처럼 정체되고 부패된 오래된 권력에서 보여진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관계가 먼 경우이니 제외하고 전자의 경우 정보의 독점은 부의 마찬가지로 있는 자들에게로 계승되어지고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문제는 단순히 소설을 떠나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끊김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민주시민의 허울 속에 전체주의라는 수렁에 빠져 나도 모르게 기계의 부속처럼 쓰이다 용도가 다해 폐기되는 것은 아닌가 -이 부분은 소설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 하지만 본질적인 면을 벗어날 수 없다 - 그 부속이 갖는 정보란 얼마나 얕고 쓸모가 없는가. 주인공인 가구라는 뒤늦게 나마 겨우 이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영웅이 세계를 구하거나 정의를 바로 세우거나 하는 따위의 결론은 없다. 이건 일본인 특유의 숙명론 기질을 살짝 엿보는 듯해 착잡한 기분이기도 하지만 (아... 결국 같은 얘기의 반복이다.) 작금의 돌아가는 소설이 아닌 현실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어쩌라고 수긍하면서 살아야지 가 결론인가 ? - 라고 제발 시비걸지 마시길. 이건 시크한 것도 체념 어린 것도 아니다. 성찰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현실 따위. 어쩌라고!!! 해봐야 그건 각자가 찾아야 할 답은 아닌지 싶다.
결론은 그렇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개운치 않는 듯 묘한, 500페이지를 훌렁 훌렁 읽으며 스토리 놀이에 흠뻑 빠져 시간으을 보냈지만 다른 책처럼 후딱 덮어버리고 바로 아.. 이제 다른 책이나 읽어 볼까나 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자꾸 되뇌이고 생각하게 끔 한다. <소문, 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을 사실 같이 읽어나가면서 참말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 살지 않으면 무지몽매한 수메르의 노예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함이 온 몸을 휘감아 돌아나갔다.
사실 이런 생각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재미있게 읽으면 장땡이다 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면 참 책 읽는 보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어떤 것을 취함이냐에 따라 남는 것이 있고 건질 것이 있는 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