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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ㅣ 크로스로드 SF컬렉션 4
이영수(듀나) 외 지음 / 사이언티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크로스로드 SF컬렉션 네번째 창작집이 나왔다. 2007년 황금가지에서 "얼터너티브 드림 - 한국 SF 대표 작가 단편 10선"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래로 일년마다 한권씩 출판해 왔으니 상대적으로 척박한 한국 SF문학에 단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과학 웹 저널 <크로스로드>에서 기획한 "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 과학으로 세상 읽기·세상에서 과학 읽기"를 읽다보면 일반 대중들이 과학이란 것에 얼마나 무지한지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절감하게 되는데 대다수는 고등학교때 지구 물리의 아주 얄팍한 지식을 시험용으로 익히고는 곧바로 필요없는 망각의 늪속으로 밀어버리는 현실에서 판타지나 무협지를 깔깔대고 읽어대지만 과학전 사실에 기초한 SF소설은 어렵다는 이유로(그리하여 지루하다는 이유로) 독자들 한켠에 밀려 있다. 인간세계를 발전시키는,획기적인 패러다임은 순수한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늘 출발하였다는 점을 감안할때 자라나는 아해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무한한 꿈을 키웠으면 싶다.
박상준 교수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새롭고도 익숙한 이야기는 기존 판타지의 천편 일률적인 상상력에서 벗어나 과학이 살아 숨쉬는 미래로의 도약점을 위해 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현실속 상상의 이야기들이다. 서구 SF 소설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이는 이미 세대가 한참 지난 - 검증되고 휴고나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품이나 작가의 전성기적인 7~80년대의..- 것이 대다수이다. 물론 그런 소설은 재미있고 아직까지도 유효가치가 상존하며 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품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그 이후에 외국에서 주요 작가가 발표한 SF소설은 아예 번역조차 되지 않으며 실제 근래의 엔솔로지 형식의 외국 단편 SF소설 하나도 구경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 이리하여 원서 읽어내는 능력자를 부러워 하는 것이다 - 시대를 읽어내는 최신의 작품들을 목말라 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매년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크로스로드의 단편집은 정말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비록 세계 유수한 작가가 써 내놓은 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은 수준이 기대이하니 바라던 바에 미치치 못했다 말을 하지만 한국 비주류 문학에서도 변방에 밀린 우리 작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겠다.
"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는 모두 11편의 창작 SF단편 소설을 싣고 있는데 그 면면을 보아하자면 오랫동안 활동해 왔고 꾸준히 작품집을 내고 있는 듀나님을 비롯하여 SF번역가로도 이름이 높으신 김창규님, 박성환님 - 죄송스럽게도 그 외의 작가분들은 잘 모르겠다 - 등 잘 단련되어진 글들로 무장되어 있다. 한국형 SF소설답게 그 배경은 우리가 친숙한 동네 - 예를 들자면 듀나의 '수련의 아이들'에서 그녀가 도망가는 곳은 부평에서 인천이고 표제작인 '목격담...' 은 서울 시청 숭례문 광장이며 '달에는 의지가 없다'에서 K의 집은 영등포구 신길동이다 - 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고< 인구 감소와 빈민층의 월면 이주로 지구의 주택란이 해소되자 아파트나 오피스텔같은 다가구 주택은 값이 폭락했고 중심가 인근의 낡은 오피스텔에는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P.262> 처럼 근 미래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듯한 여러 한국적 상황이 세세한 상상력으로 서술되어 진다. 또한 단편소설마다 각기 다양한 주제가 유기적으로 엮어져 독특한 스토리를 이끌어 내는데 비록 젤라즈니의 유려한 문체나 필립 딕의 매끈한 결말같이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잔잔하고 공감할만한 생활밀착형 SF소설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다만 아쉬웠던 사실은 처음 대하는 독자가 무섭게 모일 생경한 언어를 늘어놓아 꽤 부담스러는 것들이 가혹 눈에 띄였는데 예를 들자면 <시간관광이란 결국 텔레포트와 마찬가지로 플랑크 시간 1단위동안 스캔한 플랑크 단위의 정보 집합에 대한 전송과 복구이다. 대상 존재의 낱낱에 대한 총체적 확장성 스캔은 대상 존재를 해체- 무화하여, 물질은 정보로 다시 전화(轉化)되고, 전송된 정보는 스캔의 역과정을 거쳐 다시 물질로 복원된다. P.325> 일반 하드SF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형식의 문장은 좀 난감하다. 물론 작가가 달리 표현할 적당한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썼다 하더라도 사실 [총체적 확장성]을 해석하기란 무리일 것 같다. SF개념을 어느정도 잡고 있는 독자들이야 그런대로 넘어간다 하지만 역시 이런식으로라면 이 책은 대중들에게 선뜻 다가서기엔 어려우리라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단편소설은 흔한 주제지만 가볍게 넘기기엔 어려운, 근미래에 반드시 도래할 김창규님의 "백중(百中)" 이었는데 인공지능과 짝인 된 형사의 이야기는 아시모프의 로봇에서 차용한 듯한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그것 보다는 정교하고 재미가 있으며 무엇보다 어렵지 않고 대중적인(?)- 일반적으로 쓰이는 서술이라고 해두자.. - 문장으로 입문서로는 제격이(이 정도는 마눌께 권해도 되겠더라는...) 아닌가 싶다. 여하튼 다양한 시도와 여러 주제들이 얽혀 읽는내내 재미가 있었다. 독창적이기도 하고 한없이 우울하기도 한 소설도 있었으며( 달에게는 의지가 없다.. 참 암울하게 결론을 내는 작가에게 경의를... ) 추리소설을 가장하기도 했고(전화살인... 중간에 범인을 짐작해서 약간 김이 샜고 결론은 좀 의아했는데 거의 추리소설이라고 봐야겠다.) 따뜻한 사랑이야기, 섬뜩하고 이기적인 사랑이야기도 있다.
모든 이야기는 신화적 원형이고 신화는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전해진다는 그 누구의 말처럼 현세계의 무한한 상상력은 어떤 것이든 모티프의 확장형이다. 인간 그 어느 누구에게도 깊숙히 이것이 내재되어 있는 한, 풍요로운 이야기의 세계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발전은 계속되어 지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좋은 한국형 SF소설이 많이 나오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