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책 1 판타 빌리지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변용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소녀와 비빌의 책
 

옛날 옛적에 왕자가 살았드랬습니다.
왕자는 당연하게도 모험을 떠나지요.
모험을 떠나는 목적은 또 당연하게도 공주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주는 늘 꼭대기 탑에 갖혀 있습니다.
그리고 공주를 구하려면 용 따위나 숲속의 괴물을 물리쳐야 하구요.
당연하게도 도움을 어렵지 않게 받아 구해내고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렸을 적 서양 동화에서 늘 정형화된 줄거리는 이러했던 것 같았다. 좀 크면서 이런 류의 환상동화를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가령 ' 쟤네들은 도대체 뭔 그리 왕자 공주가 많은 거야 ? 툭하면 옆 동네도 뒷동네도 앞동네 까지도 전부 다른 왕들이 다스린다니 원.." 이라던가, "어떻게 성만 벗어나면 바로 숲이고 도둑들과 괴물들이 설치는 거지 ?" - 이건 물론 고딩 교과서에서 배운 서양사로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였는데 머리가 크고 나서 미시역사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영토와 왕의 개념이 동양과는 전혀 달랐던 것을 말이다. 

   어쨌거나 대강 열 댓살이 지나고 난 뒤 동화책을 읽는다는 건 어쩐지 좀 수치스럽고(?) 어른 답지 않는 행동이라 여기어지면서 줄거리만 언뜻 남게되어 추억의 부스러기 정도로만 머리속 어딘가에 처박혀 버리기 마련이다. 어쩌다가 원전 무삭제, 알려지지 않는 요런 문구에 홀라당 속아 읽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원래 구전 이야기는 꽤나 실망스럽기 마련이었다. 현실에서의 글읽기에 환타지 동화는 좀 거북스러운게 아닌가. (환타지 소설과 구분이 되는 경계점을 확인하자면 말이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도 층이 갈리는데 SF팬들은 대부분(?) 환타지-환상소설 포함-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대충 눈치채실듯 하다.  환상소설을 주력으로 내고 있는 노블마인에서 "소녀와 비밀의 책"을 보았는데 정말 오랫만에 읽는 환타지 소설이다. 북스피어에서 펴낸 '퍼언 연대기'를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간만에 읽으려니 옷이 몸에 맞지 않는 것 처럼 거북스러웠으나 중반에 들어서자 꽤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소녀와 비밀의 책"은 꽤 복잡한 다중액자의 서술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복층에 이중구조까지 얽혀있어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간혹 도대체 이게 뭔 내용인지조차 감 잡을 수 없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읽어나가다 보면 적응이 되고 오히려 즐기게 되지만 초반에는 좀 당황스럽다. 이야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듯 싶다 돌아오고 다시 곁가지 이야기를 끊임없이 치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반에 걸쳐 이야기의 큰 얼개가 그려지는 말쯤에는 무릎을 탁 치면서 이 작가 천재 아닌감 !  어찌 이렇게 엮었을꼬 하는 탄식이 흘러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1권과 2권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 싶지만 1권에서의 뜻 모를 이야기가 2권에서 풀리는 꽤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3권과 4권이 나올 테세로 끝을 맺지만 충분히 그 두 권으로 큰 재미를 맡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다.



  이 환상소설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면  이렇다.
한 소녀가 왕궁에 살았는데 소녀의 눈꺼풀엔 검은 반점이 있어 사람들이 악마라 칭하여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지만 술탄의 아들인 용감한 소년이 소녀를 만나게 되고 검은 반점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마법주문을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장대한 서술 구조로 들어가게 된다.  자! 앞에서 왕자가 모험을 떠나 공주를 구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기존 동화의 원형을 꽤 장난스럽게 틀어버리는 첫 이야기는 꽤 신선하면서도 이런 류의 글을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평소 상상력 훈련이 좀 덜 되어 있는) 당혹럽기만 하다.
왕자가 빈 몸으로 모험을 떠나지만 곧 배가 고파지고 어린 놈에게 밥 한숫갈 줄 이 없는 현실에 기러기라도 잡아먹으려고 죽이자 갑자기 미친 마녀가 나타나셔서 딸을 죽였네 난리를 치시고 모함이 시작되자 마자 노예가 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뿐 만이 아니다.  마녀는 주절주절 자기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토해 낸다.  꽤 재미있지만 이런 식의 반복은 살짝 짜증이 날법하다. 요걸 잘 넘기고 나면 도대체 망할 마녀가 왕자에게 왜 이리 시끄럽게 이야기 하는지 왜 왕자는 죽은 기러기를 되살리기 위해 류크로타의 가죽을 찾으로 가야 했는지 뚱단지 같이 들른 선술집에서 밑도 끝도 없이 곰이 왜 사람으로 변신을 하고 술을 파는지 다시 곰으로 돌아가기 위해  '처녀가 순결을 잃고 바다가 황금빛으로 변하며 암컷의 몸에서 나지 않는 알의 날개를 타고 성자들이 서쪽으로 이동할때가 와야' - 도대체가 이게 뭔 소리랴... - 다 읽으면 고개가 끄덕거린다. 이게 그렇게 된 거구나. 굳이 신화에서의 원형의 해석 따위는 필요없다. 이건 꽤나 직설적인 이야기다.  그외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책을 읽을 분들께 누가 됨으로 그러하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1권 말미에 꽤 흥미로운 귀절 하나만 소개하고자 한다. " 역시 너는 내 아들이로구나. 나는 어떻게 왕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 나 역시 잠든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았느니라."
2권의 이야기 역시 아까 말했다시피 1권의 또다른 이야기이다.  배와 성자 처녀와 야수 꿈꾸는 도시의 이야기는 장황하지만 민첩하고 필수요소로 가득하다. 키노케팔로스(개의 머리를 한 인간)를 따라 나선 시그리드의 이야기를 축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이' 종족의 이야기(나의 몸을 보관하고 남의 몸으로 들어가다)와  라그닐드의 분노, 유방이 셋이 달린 괴물인 성 시그리드는 멈칫 멈칫하면서도 빨리 뒷장을 넘기지 않고서는 못 견디데 만드는 매력덩어리 들이다. 아리마스포이와 피닉스의 오래된 결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결말에 이르러 슬프고 아팠던 사랑의 좌절과 새로운 시작의 암시는 큭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런 환상소설이라면 얼마든지 읽어주리라!! 내 아무리 SF만 죽어라 좋아한다 손 치더라도 말이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와 샤라자드가 천일간 들려준 "아라비안 나이트"는 어릴적 나의 꿈이자 동반자였다. 그 순수한 모험을 꿈꾸며 상상만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던 매혹적인 그때 그 소년처럼 오래간만에 네버엔딩의 모험이야기는 꽤 설레이고 즐거웠다. 상상력이 꽤 말라가 고민하던 차에 신선한 자양분이 되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사족하나 붙이자면 상상력 없는 글읽기란 꽤나 고역스러운 법인데 요즘 기계적으로 읽어나가는데 내 스스로 질려버려 꽤 힘들었는데 이 책으로 어느정도 치유는 된 것 같다. 이건 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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