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만 까딱하면 무엇이든 알아볼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어쩌면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은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글로도 모자라 생생한 사진, 동영상으로 모든 것을 실제로 보고 듣는 것처럼 접할 수 있다. 그러니 머릿속으로 무엇을 떠올리고 그려보는 일은 낯선 일이 되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만 있어도 전세계 방방곡곡 가보지 못할 곳이 없다. 신이 부럽지 않은 능력이다. 아는 것은 많아졌을지언정, 그러한 앎이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킬지는 모르겠다. 잠깐의 경탄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신기하네!’ 그러나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특히 우리나라를 벗어나 멀리 다른 나라로 갈 때는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떠나 다니는 일이 때로는 설레고 엄청난 짜릿함을 주지만, 때로는 진빠지고 힘든 경험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물며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여러 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말을 번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이 없었을 때는 과연 어떻게 여행을 했을지 도무지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베네치아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폴로가 고작 열다섯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여행길에 나섰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해본다.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본다.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신을 믿으며 다른 풍습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가끔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쿠빌라이 칸의 일화는 특히 흥미롭다.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의 삶이 더할나위 없이 호화스러웠다고 하는 것과 별개로 대칸의 나라에서 어떻게 화폐가 만들어지는지도 꽤나 상세히 나와있어서 아이들과도 함께 읽은 뒤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마르코 폴로의 24년에 걸친 여정을 따라가는데 유용한 길잡이는 지도이다. 지금과는 달리 지명이 다르지만 친절한 주석과 책 뒤편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마르코 폴로가 그린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삽화도 인상적이다. 그 시대의 요새, 궁전의 모습을 엿볼수도 있고 마르코 폴로의 양이라고 일컬어지는 동물이나 타타르인의 집과 마차 등 그림으로 보면 더 좋을 것들이 글과 함께 잘 배치되어 있어서 좋다. 이 책은 빈곤한 상상력의 시대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을 자극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를 골라 마르코 폴로가 묘사한 내용 중에 가장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골라 근거를 들어가며 토론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청년을 홀려 천국이라고 믿게 만든 뒤 조종하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나 사마르칸트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나만의 이야기를 창작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아이들과 읽기에는 약간의 장벽이 있다. 역주가 익숙하지 않거나 어휘 수준이 낮은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초반의 난관(?)을 잘 넘긴다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엄청난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