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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두 쪽을 쓰고 이야기를 완성하기까지 7년 여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작가님의 말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사람도 금방 읽어낼 수 없는 책이었다.
바람, 눈, 추위, 어둠, 빛, 나무, 피, 바다, 산.
제주의 풍경이 스산하다고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하겠지만, 이 소설 속의 눈으로 뒤덮인 제주는 어딘가 한맺힌 슬픔으로 가득 차 차디찬 얼음 같이 단단한 느낌이다.
무자비하고 참혹한 4.3 사건은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함구되었고 피해를 겪은 사람들도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다. ‘경하’와 ‘인선’이 살아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뚜렷이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분명하게 남은 그때의 그 비참한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여름의 제주를 떠올리면 김금희 작가의 ‘복자에게’가 생각날 것 같고, 겨울의 제주를 떠올리면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거기 있었어, 그 아이는처음에 엄마는 빨간 헝겊 더미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 피에젖은 윗옷 속을 이모가 더듬어 배에 난 총알구멍을 찾아냈다. 빳빳하게 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엄마가 떼어내보니 턱 아래쪽에도 구멍이 있었대. 총알이 턱뼈의 일부를 깨고날아간 거야. 뭉쳐진 머리카락이 지혈을 하고 있었는지 새로 선혈이 쏟아졌대. 윗옷을 벗은 이모가 양쪽 소매를 이빨로 찢어서 두 군데 상처를지혈했어. 의식 없는 동생을 두 언니가 교대로 업고 당숙네까지걸어갔어. 팥죽에 담근 것같이 피에 젖은 한덩어리가 되어서 세자매가 집에 들어서니까 놀란 어른들이 입을 열지 못했대. 통금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의원을 부르지도 못하고 캄캄한 문간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대.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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