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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
권석만 지음 / 학지사 / 2019년 10월
평점 :
몇 달동안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비상 상황에 처했다. 치료제도 없고 원인조차 불분명한 이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생활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뒤흔들리게 된 이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바이러스의 감염이 심해져 폐렴이나 합병증이 유발되어 죽음에 까지 이를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죽음이 갑작스럽게 삶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 인간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나도 병에 걸릴 수 있고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자각은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낸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요즘같은 때에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해서 담아낸 책이다. 총 7부 24장에 이르는 이 책은 죽음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한 거의 모든 해답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단 심리학 뿐만 아니라 의학과 생물학, 사회학, 종교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학문적 관점에서 죽음을 조망하여 여러 시각에서 죽음을 분석하고자 하는 저자의 면밀함이 엿보인다. 저자의 노력 덕분에 독자는 죽음에 대해서 폭넓은 이해와 심도있는 탐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누구나 겪게 되지만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
경험론의 관점에서 죽음이란 해석하기 어려운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는 너무도 자명하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경험으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죽음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도 인간으로서 죽음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자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며 살아가다가 노화나 질병을 겪게되면서 심리적 변화도 자연스럽게 수반된다. 이러한 자기 개념이나 인식이 무너지는 것이 죽음이다 보니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는 것이다. 최근 죽음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장기가 기능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심리학적 관점에서 자신에 대한 의식이 기능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사회적 법적 관점에서 기능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가 중요하게 다뤄지며 여러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누구도 죽음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점점 고령화되는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문제 인식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기간이 길어지며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한 채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죽음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문제에 대한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여러 원인에 대한 분석과 죽음의 과정을 들여다 보고, 죽음 후의 장례 절차와 내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처럼 두려움은 인간을 지배하는 감정 중 하나로, 죽음에 대한 불안은 어떤 불안보다 강력하다. 이러한 죽음불안은 보편적인 동시에 모든 불안의 근원인 되며 역설적으로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3부의 8장에서는 죽음불안의 유형과 이를 측정하기 위한 여러 도구들도 제시되어 있다. 단순히 도구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항 내용과 요인분석 결과 등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고 있어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모습이 각기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듯이 죽음불안 또한 연령과 성별, 종교와 성격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다른 특성이 나타나는 점도 흥미롭다. 9장에서는 죽음불안의 심리적 근원을 탐색하며 자기의식, 자기개념의 정의와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이러한 ‘나’의 소멸이 죽음불안을 불러 일으킴을 설명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는 인식이 죽음불안을 가져오기도 하며, 이를 애착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10장에서는 죽음불안이 야기하는 정신병리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라 심리학적 배경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심리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11장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불안의 극복과 치료 부분은 특히 상담자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존적 심리치료나 죽음불안의 인지행동치료, 존엄치료 등 다양한 심리치료 모델을 다루어 죽음불안을 극복해가는데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한 점이 좋다.
4부에서는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태도를 부정, 수용, 초월로 나누어 들여다보고 있다. 공포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에 근거하여 죽음을 부정하고 회피하거나 방어하며 불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어떻게 새로운 치료적 세계관을 가져오며 단계적으로 치료적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 안내한다. 인간의 기본적 인지 과정을 바탕으로 죽음 역시 심리적 변화를 거쳐 나타나며, 이에 대한 퀴블러로스(Kübler-Ross)의 이론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죽음의 수용에 있어 중요한 의미관리 이론(Meaning Management Theory)을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다. 자기 초월, 영적 초월성, 자기확장 이론(thory of self-expansiveness), 자기초월 심리학에 바탕을 둔 죽음 초월에 대한 내용도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떠난 이를 그리워 하며 남은 사람들의 치유
고통감이나 상실감의 크기를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죽음을 직접 맞는 사람 못지 않게 죽음을 목도하는 이들의 고통 역시 크고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별경험이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만들어내고 심한 경우 또 다른 죽음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16장에서는 이러한 사별경험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17장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애도과정을, 18장에서는 사별상담과 사별치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사별경험을 심리적 성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죽음을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이를 더 나은 삶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이 어느 정도 충분하다면,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질문이 바로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좋은 죽음에 대해 다루기 앞서 다룬 이 내용에 누구든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삶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웰리빙(well-living)과 웰다잉(well-dying)은 별개의 과정이 아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잘 죽어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웰리빙은 웰다잉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며, 웰다잉은 웰리빙의 마지막 과정이다. 젊은 시절에 아무리 멋진 삶을 살았더라도, 인생의 마지막에 죽어 가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비참하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관점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충분한 시간동안 삶을 누리고 준비되어 있으며, 자신과 타인에게 수용될 수 있고 신체의 고통을 크게 겪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면 이를 위한 노력도 다방면으로 필요할 것이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이 힘들지 않게 돕는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삶, 노인 돌봄 등 노인과 관련된 주제는 갈수록 더욱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24장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교육도 폭넓게 널리 다뤄져야 할 주제일 것이다. 좋은 죽음을 평가한다는 것은 낯설지만 ’죽어감과 죽음의 질 척도(Quality of Dying and Death)’라는 도구로 죽음을 따져볼 수 있으며 임종기의 삶의 질 역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간은 주어지고, 흐르는 시간은 정확하게 죽음을 향해 간다. 거스를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대부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은 우리의 의식 너머 어딘가에서 늘 작동하는 무한동력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을 통해 인생의 그림자같은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어 기쁘다. 그림자가 짙은 어두움만 지니고 있지 않듯이 죽음도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을, 빛이 있는 곳에 항상 함께하는 그림자처럼 죽음도 삶의 뒤켠에서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