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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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붙은 액자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빛에서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둠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빠지는 사람. 액자 앞에서 한참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난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일까?’

『아직도 가야할 길』로 유명한 M. 스캇 펙의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거짓의 사람들』은 가장 특별한 저술이다. 소설가 김형경이 중앙일보 책 리뷰에서 스캇 펙의 시리즈를 다루며, 이 책에 대해 ‘천재의 비애’라고 표현하며 ‘너무 천재여서 미쳤나보다’ 식의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만큼 이 시대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미지의 영역을 서술하고 있고, 대단히 위험하며, 그 이상으로 절실히 요구되어온 진리를 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캇 펙이 이 책을 펴내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했을지 짐작하노라면, 아무리 찬사를 퍼부어도 부족할 것이다.

스캇 펙은 이 저술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잠재된 악(惡)을 드러내고, 그 실체에 직면하고자 한다. 악이 얼마나 자주 일상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 집단의 광기를 불러오는지, 그것이 우리의 삶과 사랑을 어떻게 시험하는지, 흥미롭고 풍부한 임상 사례들을 통해 기술한다. 환자를 대하는 그이의 사랑과 인내와 비상한 공감 능력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데 성공한 ‘조지’와, 악한 부모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로저’의 사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연민은 기꺼이 ‘악’한 사람들에게까지 이른다. 악을 질병으로 규정함으로써, 악을 단순한 규탄의 대상에서 치유의 대상으로 전치한 것이다.

진리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거대한 신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과 같다. 어떤 위대한 힘(power) 앞에서도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기를 거부하는 ‘악’한 이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스캇 펙은 어둠에서 더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 ‘찰린’을 구해주지 못했지만, 또 다른 찰린들을 돕기 위해, 편견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귀신들림과 악이라는 현상을 연구했고, 악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찰린이 이 책을 읽었다면, 그녀는 알 수 있었을까. 치유자와 더 큰 존재(신이라 해도 좋고 진리라 해도 좋은)의 사랑을.

베트남전과 징병제에 대한 저자의 시각도 흥미롭다. 모병제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해온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놀랍게도 여자를 포함하는 징병제에 찬성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에 어떻게 마녀사냥이, 나치즘이, 베트남전이, 이 모든 끔찍한 학살들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인간 악을 이해하길 원하는가? 나아가 이 치유 작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기존 지식과 가치관을 모두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간절히? 그렇다면 주저 말고 이 책을 읽어라! 우리 모두가 나르시시즘과 게으름을 극복하고 자유의지로 사랑을 선택하게 될 그날까지. 이 책은 그 모든 걸음 중 하나이고, 나와 당신 역시 그 책임을 함께 지기로 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사랑을 향한 우리의 여행은 결코 끝이 없다.

- 책 속 문장

깊은 치유가 진행될 수 있으려면 환자는 일정 단계부터는 어느 정도 퇴행을 해야만 한다. 적어도 정신 분석적 치료 장면에서는 그렇다. 그것은 어렵고도 두려운 작업이다. 심리적인 성숙과 독립의 부속물들에 익숙해 있던 성인이 다시 스스로를 의존적이고 유약한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장애가 심할수록 즉 환자의 어린 시절이 배고프고 고통스럽고 상처받았을수록 치료 관계 속에서 그 시절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그것은 죽는 것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일이다. 일단 그것이 되면 치료는 따라나오게 된다. 그것이 안 되면 기초는 건설되지 않는다. 퇴행 없이는 치료 또한 없다. 아주 간단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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