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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하신 분들 usb되나요? 불량이어서 교환을 했는데 역시 안되네요. 왕짜증. 지우지 마세요 저번글 지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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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11-12-0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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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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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의 일대기를 소설로 썼다.
김정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위당 신헌, 혜당 최한기, 오주 이규경, 묘허 최성환, 난고 김병연 등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글에 나타난 김정호의 행적을 중심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살렸다.

아버지 김해준, 딸 김순실, 아내 혜련스님,
토산 사또, 김성일 등은 가상 인물인지 역사 인물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김정호에 대해서 386 세대는 초등학교 교과서와 드라마 등을 통해 익숙하다.
백두산을 몇 번 오르고 전국을 몇 번 돈 김정호가 실측을 해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조정에 바쳤는데,
첩자 혐의로 옥사를 당하고 대동여지도는 소각되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젊은 지리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당시 김정화와 교류가 있었고, 후원까지 했던 양반들이
그대로 권세를 누르고 살았던 점,
그리고 대동여지도의 목판 일부와 인쇄를 한 목판본 여러 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위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일제가 식민사관의 일부로 만들어 낸 이야기로 본다.

뛰어난 지도쟁이가 있었는데
무능한 정부가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였다.
조선왕조는 무능하니까 합리적인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것이 났다.
뭐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일제 당시 교과서였던 '조선어 교본'에 실었고
해방 이후 이 이야기가 다시 국어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저자도 이런 이야기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나라의 압력보다는 개인적인 원한관계와 천주교 이야기로 변명을 하는데
옥고를 치뤘다는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무척 궁금하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김정호의 후원자들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과
청구도 - 동여도지/ 동여도 - 여도비지/ 대동여지도 - 대동지지 등
김정호가 만든 지도를 보완하기 위해 직접 저술한 지지 책들의 실체를 알게된 것이
재미를 떠나서 책을 읽으면 얻게된 지식이다.
이 책들이 다른 문헌에서 많이 인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만든 지도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글 중에 和光同塵 이라는 사자성어(191쪽) 나온다.
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준다.

뜻이 마음에 들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이란다.
저자는 [논어]에 나오는 글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대동여지도에 대마도와 독도를 나타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부분이 나온다.
독도를 동해와 울릉도 사이에 그려 넣은 지도에 대한 비판 이야기도 나오는데
주강현의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1481년의 [동국여지승람] 편찬 당시에 실린 지도를 그대로 [신증동국여지승함]에 게재한
[팔도총도]에 따르면, 울릉도가 바깥에, 우산도로 표기된 독도는 안쪽에 그려져 있다.

중략

우산국와 울릉도가 뒤바뀐 지도는 정상기 시대에 이르면 완벽하게 수정된다.
이는 정기적인 수토정책에 의한 실질적인 탐사결과에서 이루어진 성과였다(129~130쪽)

예전엔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채 지도를 잘못그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에 '호야지리 박물관'의 고지도전에 가서 들은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지도를 그릴 때 벗어나는 부분은 접었을 경우 오게 되는
그 위치에 그렸다는 주장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주장에 더 공감이 간다.

책의 말미에 우리나라 고지도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
양보경 교수의 해제가 달려 있다.

기왕 해제가 있다면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좀 밝혀주면 좋겠다.
마이클 클라이튼의 소설은 소설이지만
주석을 통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려준다.

특히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연속극을 통해 역사를 배운다.
연속극은 할 수 없지만 소설은 방법이 있다.

고산자에 대한 보다 많은 학문적이 연구가 이루어져
누가 속 시원하게 진실을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뭉그니

p.s. 수원 갈 일 있으면 국토지리 정보원 '지도 박물관'에 한 번 들려봐야겠다.
http://www.ngi.go.k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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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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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를 읽은 후 
밤마다 자전거 타는 꿈을 자주 꾼다.

어젯밤에는 자전거 샵에 가서 자전거를 골랐고
신나게 자전거를 탔다.
추워서 일어나니 새벽 4시.
이불을 저 만치 도망가 있고, 나는 침대 위에서 떨고 있었다.

나도 한 때는 나름 라이더였다.
합정도 집에서 출발하여 양화대교를 건너
강남 둔치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끝나는 워커힐 건너편까지
일요일 아침마다 2시간 반씩 약 50킬로미터를 왕복하였다.

그 이후 기력이 떨어졌는지, 일단은 동호대교, 잠수교로 거리가 짧아지더니
어느날 이후는 겨우 한강대교까지만 가게 되었다.
그나마 서울을 떠나면서 자전거도 자주 타지 않게 되었다. 

제목을 안내서이지만
사실상 글은 자전거 타는 이야기보다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닌
386 세대 중년이 추억 속에서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나름대로 해석하는 그런 과정이 글 속에 녹아 있다.

비슷한 세대라 그런지
그이 서울에 대한 해석에 공감이 간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탈 땐 주로 자전거 전용도로로만 다녔지
도로로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도로로 다닌 적이 있었다.

처음엔 대학 3학년 땐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자전거를 사서 전국 일주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어머님에게는 말씀 드리지 못하고 일단 새 자전거부터 한 대 사서
봉천동에서 안암동까지 왕복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일단은 자전거는 가게에 맡겨 놓고 왔는데
결국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그 다음날 한 번 탄 자전거를 가게에 다시 되팔았다.
기억으론 7만원에 사서 5만원에 판 것 같다. 당시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은 60만원이었다. 

두 번째는 방위 근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신동아 배달 업무를 했다.
종로 2가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짐 자전거에 신동아를 잔뜩 싣고
여의도나 고속버스터미널 근처를 자전거로 다녀왔다.

나의 기억은 파편적인 것이지만
홍은택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면서
그리고 주말에 취미 생활로 자전거를 타면서
한 번 가고 마는 길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같은 길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에 정리했다.

한국처럼 인구가 조밀한 나라에서 아직 많은 땅이 비도시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다름 아닌 도시 때문이다. 특히 부자들이 타워팰리스처럼 63빌딩보다 더 높은
아파트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게 고맙다. 그석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끼리끼리 모여사니 더욱 감사하다. 안 그랬으면 넓은 땅을 사들여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을테니까    중략
신대방동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동네의 맹주 역할을 하던 부잣집들은 소개령을
내린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강남의 초고층 아파트에 부자들이 집결했다.
나는 이걸 공간 아껴쓰기 사례로 본다(48~49쪽
). 

 

2호선은 군사정권 반대 시위를 주동하던 학생들이 시위의 전초기지였던 대학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던 이동 경로이기도 했다.  건국대, 한양대, 연세대 등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대학을 보면 모두 2호선에 면해있다.
갑자기 수천 명의 학생들을 한곳에 결집시킬 수 있는 교통수단은 지하철 2호선 이상 가는 게 없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전경들의 기동력에 못지않았다.
이 점에서 2호선은 민주화 유공자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60쪽
)  

 

보이는 라이더로 전환한 초반에는 출근길이 여전히 어두웠다.
그래도 차도로 갔는데 가가보면 동이 터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위대한 사람들은
바로 이런 역사적 전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67쪽
)  

 

건축가 김진애 씨는 '진짜 도시인'의 조건을 네 가지로 표현했다.
첫째, 도시의 익명성을 사랑하는 사람
둘째, 도시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
셋째, 도시의 무질서를 견딜 줄 아는 사람
넷째, 도시의 무질서 속에서도 자신의 질서를 찾을 줄 아는 사람
나는 라이더들이 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익명성과 자유를 사랑하면서 자동차 위주의 무질서 속에서도
자신의 질서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125쪽

[아파트 공화국]을 쓴 발레리 줄레조는  중략
그의 분석에 따르면, 강남에 처음에 아파트가 개발될 때 대학을 나온 중산층 며느리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면서 아파트가 주거양식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며느리들은 시부모와 같이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파트를 선호했다. - 중략
서울에서 현대화 초기에 아파트가 봉건적 가족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는 그의 분석에 동의한다.
1990년대 이후에도 아파트가 들불처럼 번져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동차가 대표하는 개인공간의 확장이다.
예전에는 만원버스의 불편도 참을 줄 알았지만 자동차가 보급된 이후에는
개인 공간의 안락함을 찾게 된다 - 중략
주택보급을 위해 분당과 일상, 중동, 평촌 4대 신도시를 개발했다고 하지만
분당만 해도 입주 당시 입주자의 70퍼센트가 이미 강남에 집을 갖고 있었다
(240~241쪽)


특히 책에서 몇 권의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내가 읽은 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도 있었다.
읽어보지 못한 책들은 막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자전거 먼지를 털고
원주천부터 다시 달려봐야겠다.

뭉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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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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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책 소개만 읽었을 때는 걷기 여행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더군다나 내가 근래에 걷기에 조금 빠져 있기 때문에 책이 눈에 쉽게 들어온 것 같다.
런던에 여러 번 갔어도 왜 그리니치 천문대에 가 볼 생각만 했을까?
분명히 런던 시내에도 경도 0도가 통과하는데....
저자는 경도 0도가 통과하는 영국의 동부 320킬로미터를 도보로 종단하였다.
남에서 북으로...

그런데 이 책은 걷기 여행에 관한 책이 아니다.
과학의 역사에를 다루는 책이며
경도 0도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걸으며
신기하게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자취를 순서대로 만나게 된다.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정한 것은 1884년이다. 
하지만 경위선을 지도에 가장 먼저 그린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에라토스테네스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고대에 지도를 그린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로부터 시작한다.

에라토스테네스(276~196 BC)/ 히파르코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2C) 등 익숙한 학자도 있고 
아리스타르코스(310~230 BC) 같은 생소한 이름도 있다.
그는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이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태양과 달이 비슷한 크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밝혀진 바는
태양은 달보다 400배 먼 곳에 있고 크기도 400배 크다고 한다(66쪽) 

아무튼 시간의 표준화에 가장 기여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샌드포드 플레밍이었다고 한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적 자존심에 무관한 그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게 시간을 내준 프랑스는 미터법을 국제 표준으로 정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다.
미터법은 들랑브르와 메솅의 노력으로 1808년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에서 채택되어었다.
1미터는 적도에서 극까지 거리의 1000만분의 1이다. 즉 지구 둘레의 4천만 분의 1인 셈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중세 후반의 천문학자에게로 넘어간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당시 절대 진리에 의심을 품었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조르다노 브루나(1600년 화형)/ 갈릴레오 갈릴레이(1633.6.22-천체 망원경)/ 튀코 브라헤(1546~1601)/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갈릴레이가 하늘에 천체 망원경을 들이대기 전까지는 다른 행성에 달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91쪽)  

다음에 이야기는 지질학으로 넘어간다.
당시 성경학자들은 세상은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보다 세상이 더 오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화석 수집가도 있었고 학자들도 있었다.
맨텔/ 메리 애닝/ 조르주 퀴비에(1769~1832)/ 제임스 허턴(1726~1797)/ 찰스라이엘(1797~1875) 

메리 애닝이 수집한 화석들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한 방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런던에 가서 자연사 박물관엔 들리지 않았는데, 다음엔 가면 꼭 들려야겠다.
아무튼 제임스허턴에 의해 1785년에서야 지질학적 시간이 탄생한다. 즉 지구의 역사가
성경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는 1830년 찰스 다윈이 비글호에 타고 5년 간 항해를 떠날 때
가지고 갔던 책이다.
지질학 분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윌리엄 스미스(1769~1839)이다. 그는
영국의 지질도를 만들었는데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아무튼 그가 지질도를 만들게 된 과정은 책 뒤 참고 문헌에 있는 [세계를 바꾼지도](번역)에 
잘 나와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생물학으로 넘어간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1675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경도 0도는 캠브릿지를 지나는데
1665~1666년 사이에 뉴턴은 캠브릿지의 학생이었다.

중세와 근대를 차별하는 인간의 재능이 극대화 된 단일저서를 한 권 고른다면
그것은 단연코 [프린키피아](뉴턴 작)다. 

뉴턴과 그에 대적하고자 했던 당시에는 명성이 있었으나
이후에는 그저그런 학자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등장한 후
다시 이야기는 그리니치 천문대로 넘어가면서
경도를 잴 수 있는 정확한 시계를 만든 존 해리슨으로 이어진다.
그의 시계는 정확성뿐만 아니라 부품을 교체할 수 있는 대량생산 물품으로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즉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존 해리슨이 시계를 만들게 된 과정은 [경도](번역)를 통해 알 수 있다. 

단순한 과학사 책인 것 같지만
과학과 철학의 관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과 용기 등도 언급하고 있다.

15p - 과학이 가능해지려면 우리는 두 가지 가설을 전제로 세워야 한다.
첫째는 세계가 우리의 인식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점점 더 진실에 가깝게 그 세계를 알아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에필로그(227쪽) - 우주 공간과 시간을 향한 인간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사적인 불신이론(내가 믿을 수 없다면 틀린 것이다.)"이라고
뷰른 인간의 사고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아리스타르코스를 비롯해 코페르니쿠스, 브루노, 갈릴레이, 다윈은 하나같이 동시대인들의
맹렬한 불신에 직면했다.
우주는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졌고 나이도 많아졌다.
광년과 이언 단위는 우리 상상력의 한계에 대한 꾸짖음이었고,
"상식"을 뛰어넘은 가장 과감하고 대담한 사색사들의 힘에 대한 상찬이었다
.
 

옮긴의 글에 동의한다.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아날로그 그 형태의 감수성을
무엇보다 잘 느끼게 해 주는 종이책의 소중함과 가치가 가능한 한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책에 대한 독서욕을 일으키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239쪽).


아쉬운 것은 참고문헌으로 저자가 안내한 책 중 번역이 되어 있는 책은
따로 번역번을 소개해 줬으면 더 좋을 뻔 했다.


그리니치 천문대 방문기
http://welovetravel.net/a/2008/europe/p/t-greenwich.htm 

뭉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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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 딸과 떠나는 여행시리즈 2
이용재 글.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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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뒹굴뒹굴 하면서 '어디 갈 곳 없나?'라고 
고민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그리고 필 꽂히는 곳으로 떠나시라!

국가지정 국보건축 21곳과
저자가 정한 내마음의 국보건축 9 곳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국보건축에서는 12곳
저자가 정한 곳은 5곳을 가보았다.
5할은 넘는군!

안 가본 곳 중에 가보고 싶은 곳도 생겼고,
간 곳 중에 제대로 보지 못해 다시 가보고 싶은 곳도 있다.

소개된 30곳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라면
병산서원이다.
국보건축 중에 진남관과 세병관이 마음에 든다.
그러고 보니 세 곳 모두 확 트인 곳이다.
내 취향이 그런가 보다.

30곳 이외에 멋진 건축물을 들라면 개인적으론
수원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
여기도 탁 트인 곳이네...
더운 여름철 누워 있으면 따봉...  



"아빠, 제색도가 뭐야?
"비가 갤 때의 절경을 그린 그림."
"아빠, 그럼 만대루는 왜 7칸이야?"
"건너편 병산이 7폭짜리 병풍이라."

이런 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질문만 잘 유도하면

자식에 충분히 폼 잡을 수 있다.

저자는 직업을 '글쟁이'로 하고 싶은 분이므로
책을 꼭 사서 읽자. 그래야 더 멋진 후속 글들을 계속 읽을 수 있다.
두고두고 그곳에 갈 때마다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leeco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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