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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MBC 라디오에서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을 진행하고 있는 신장식 변호사의 단평 '신장식의 오늘'을 모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그의 라디오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와 더불어서 인기가 많은 뉴스 프로그램 중 하나로, 사건 정리와 전문가, 사건 당사자 인터뷰를 같이 하기에 시사정보 습득에 좋은 프로그램이다.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ZpW05b_Ulyg?si=bEcpkzR7oxouCpXF
책의 제목[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2022년 3월 10일 당선돼 국정 운영을 시작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한다. 신장식 특유의 비유와 근거를 통해 정치 사건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불공정한 정치 구조, 대통령과 국민의 힘뿐만 아니라 미적거리는 민주당의 행태 또한 비판한다.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다 보니 책을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시사지식이 필요하다.
[단독] 윤석열 정부에 검찰 출신 136명 들어갔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53536.html
책은 1장 "검찰 공화국"으로 시작한다. 윤석열 정부는 수많은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을 앉혔다. 인재는 검찰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심지어 '검찰'의 업무와는 관계없는 금융감독원장까지 검찰 출신으로 채웠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정말로 파격적인 '상식'적 인사다. 윤석열 정부는 인사검증을 자신 있게 법무부에서 할 수 있다 말했지만 각종 인사들의 논란이 지속되자 한계가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전두환처럼 국정을 잘 몰라도 사람만 잘 쓰면 되지 않냐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능력주의 신봉자들은 어디 갔을까.
윤석열 정권은 취임 이전부터 용산 집무실 이전 예비비로 논란을 야기했고 취임 후 지지율 20퍼센트대를 기록할 만큼 계속되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논란을 논란으로 잊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 만큼 2년이 지나지도 않은 지금 책하나를 쓸 만큼의 수많은 논란과 문제들이 쌓여있다. 책을 읽으며 이런 사건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날리면'사태와 같이 잘못을 지적하면 사과를 하고 문제 해결을 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지적한 사람을 탓한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면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의무다. 그저 검찰총장이었으면 수사하고 때려잡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표로서 먼저 항의했어야 하고 같이 대책을 꾸리며 최대한 할 만큼 했다는 모습을 보인 후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설득의 능력 부족을 비과학적 신봉자라며 국민을 비난의 화살로 몰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타협을 봐야 한다.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며 지지자들에게만 호응 받을 수사로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시도도 안 해보고, 맘에 안 들면 다 적인 방식이다.
그렇게 좋아하고 강조했던 '자유'는 자유시장적 논리에만 적용될 뿐이지, 헌법에 기초한 개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해당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헌법에 기초한, 노조를 결성하고 활동할 수 있는 파업권까지 위협했다. 특정 세력을 적대적으로 만들어 때려잡는 일종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 지지자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남는 것은 없었다. 영웅놀이할 시기인가.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는 책임회피의 의미가 강하다. 자유주의의 첫 번째 의무, 자유의 핵심은 개인, 타인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이다.
무책임함의 극단을 보여준 것이 이태원 참사다. 누군가는 이태원 참사를 그저 '놀러 가서 죽은 사건'으로 치부해 왜 국가 탓을 하냐고 말한다. 사고는 언제나 날 수 있다. 하지만 1) 사전에 인파가 몰릴 것을 보고했는데도 무시한 점 2) 사건 발생 전 분명히 여러 명이 신고했음에도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분명한 국가의 책임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그런 사건이 벌어진 후 시장을 비롯한 정부 부처의 인물들은 즉각적인 사과문이나 입장문을 내지 않았다. 책임은 없다. 각자도생이다. 놀러 간 이들을 그저 비난하는 이들은 생사의 문제가 생겨도 경찰에 전화를 걸지 않으며 해결을 기대하지 않을 것인가.
단순한 남의 일일까? 모습은 다르더라도 나의 차례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1989년 4월,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94명이 압사한 사건을 언급한다. 경찰은 통제를 못했지만 참사는 만취자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몰아가기 위해 모든 사망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 검사를 실시했다. 진술의 대부분을 바꾸기도 했다. 2009년에서야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이었던 앤디 번햄이 독립조사위원회를 출범해 힐즈버러 사건을 조사한 이후 45만 쪽에 달하는 서류를 받아 공개하자 당시 경찰들이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고,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하원의원 앤디 번햄은 모든 형태의 공개 조사 및 범죄 수사 과정에서 공직자에게 '진실을 말할 의무'를 부과하고, 유족에게는 무제한의 공적 지원을 받는 법률 대리와 행정적 지원을 하며,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한 공익 대변인을 지원하는 힐즈버러법 입법에 지금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앤디 번햄은 있는가."(p.171)
권력의 행사와 특권의 향유만 있을 뿐 책임은 없다.
암울한 시대로 복귀하는 수단으로 '법치주의'를 악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치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위 노동자나 국민에 대한 규범이 아니라 역사 발전을 거스르는 '퇴행'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6월 12일 자 <대전일보>에 실린, 구창모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님의 오늘이었습니다. p.59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것은 공정과 상식이다. 기득권이 되면 마법처럼 사라지는 그 비판의식과 공정성. 적대적 비난을 위한 단순한 상징. 단어는 직관적 뜻과 이미지를 나타내지만 내부의 통찰과 철학을 담보하진 못한다. 역겹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 정권을 악마화할 정도라면 모범적이고 티끌 하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진리는 항상 같다. 권력은 짧고 정의는 승리한다. 정치적 권력 행사는 지지자들과의 파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달갑지 않은 존재도 국민이다. 권력의 원천은 권력자의 손이 아니라 그들을 뽑았고, 뽑지 않은 이들의 손에도 있다.
애초에 권력이란 무겁고 힘든 것이다. 권력이라는 있어 보이는 이미지만 누리려 하다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니 도어스태핑도, 야당과의 만남도 안한다. 협치고 합의고 허울 좋게 말했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말은 쉽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진정한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책임에서의 회피를 말할 뿐이다. 경제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사건 사고에서 그의 책임회피성 발언은 그 심리를 매우 잘 나타낸다.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해병대 참사까지, 자식 잃은 부모들과 싸워 이겨 보겠다는 정권의 셈속. 가당치 않다. 그리고 참으로 가소롭다."(p.183)
어느 정도까지 업보를 쌓는지 모르겠지만, 여느 일이 그렇듯 언젠간 대가가 따를 것이다.
늦었다면 늦었겠지만 이제라도 개선의 신호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 역량이라는 내력과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라'라거나 '울게 만들어라'라고 명하는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라는 외력이 충동하고 있습니다. 내력이 외력을 버텨 내지 못하면 공동체의 자부심, 국민들의 삶, 나아가 공동체 그 자체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력이 외력을 버텨 낸다면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다시 쓸고 닦고 수선하여 일상을 회복하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지금의 시간은 대한민국의 내력을 테스트하는 시간. 마침내 우리의 미래 세대와 함께할 더 튼튼하고 살 만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성찰과 실천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가장 기쁜 마음으로 이 고단한 시간을 함께 견디고, 함께 건너가는 동료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넵니다. 내일을 여는 정치는 바로 그 자리, 환대와 연대의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는 동료 시민들의 마음자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p.187
*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