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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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노피(canopy)는 지붕, 덮개, 차양 같은 것을 의미한다. 톨게이트 캐노피, 톨게이트 지붕에 올라간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왜 캐노피에 올라갔을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07631.html

 대법원 “톨게이트 징수 노동자는 한국도로공사 직원” 판결

비정규직 760여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도급 아닌 불법파견” 도로공사 “판결결과 존중한다” 9월 초 후속조처 발표키로


'한국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업무를 외주화로 맡겨 수십 년간 운영했다. 도로공사 근무복을 입은 영업소 직원들은 계속해서 같은 일을 했지만, 지속적으로 해고되고 고용되기를 반복하면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으며 멀리 있는 영업소로 일을 하러 가기도 했다. 심지어 월급과 복지혜택으로 주어진 돈도 받지 못했다. 직원들은 도로공사와 영업소의 행태를 참지 못하고 시위를 하고 소송을 했다.


법원은 도로공사의 직접 고용 의무를 인정해 도로공사는 해고된 직원들을 정직원으로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음에도 직원들을 책임이 적고 다른 집단에 팔 수 있는 자회사로 편입시키려 했다. 심지어 관계자들을 보내 주요 인물이라 생각한 사람들의 자회사 편입을 유도하고 노조 내 편가르기를 했다. 몇몇은 자회사로 들어갔지만, 몇몇은 자회사 편입에 반대하며 직고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부당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가 시위를 했다. 그래야 언론에서 관심이라도 주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 정부를 향해 시위를 벌였고, 본 책임자인 도로공사의 김천 본사를 점거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시사직격은 이들을 다룬 '겁 없는 여자들'편을 찍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위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대중의 인식은 그저 '정규직 해달라고 떼쓰는 아줌마들'이다. 과연 그리 쉽게 말하며 까내릴 수 있는 문제일까?


톨게이트에는 간혹 젊은 직원과 남성 직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직원은 아이의 엄마였다. 3교대에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톨게이트 업무는 경단녀들에게 괜찮은 직업이었다. 아이들이 자라 어느 정도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경단녀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대부분 비정규직 업무였고,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쉬운 대로 일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해고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진상 손님들도 사장이 지시하는 매뉴얼에 따라 무조건 친절히 응대해야 했다. 거기에 영업소 사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김장이나 잡다한 일까지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


몇몇 영업소 사장은 이들의 월급까지 횡령했다. 톨게이트에는 정부의 지원 사업 때문에 장애인 직원이 많이 고용됐는데, 사장이 그저 보조금을 타기 위해 고용한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을 고용하고도 그들의 특성에 맞는 근무 편성이나 통행로를 개선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복리후생비 명목으로 예산이 나와도 직원에게 사용하지 않았고, 영수증 조작까지 했다. 직원들이 한 인격이 아니라 사물 취급, 돈을 위한 도구가 된 것이다.


"그래서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임금차액소송'을 병행했다. 대구지방법원은 2019년 12월 6일, 요금수납원 4116명이 도공(도로공사)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정년이 지난 247명을 제외한 3,869명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도공 정규직'으로서 받지 못한 임금 차액과 손해배상금 등으로 도공이 수납 노동자들에게 1,44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 (66p)

1,441 억원. 대단하지 않은가.


이런 부조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영업소로 내려오는 비용들을 조사하고 지급된 돈을 대조해야 했으며 사장에게 따져 물어야 했었다. 상하 구조가 나뉘어 있는 직장에서, 정보도 주어지기 힘든 상황에서 그러기가 쉬었을까? 그럼에도 인터뷰를 한 직원은 스스로를 따져 물으며 성장한 당찬 여자라고 소개한다.


톨게이트 직원들은 부조리에 항의를 한 것인데, 한국 특성상 시위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정서에서는 그들의 요구가 그저 떼쓰기 따위로 비쳤다. 이 문제에는 도로공사의 불법적 고용 구조와 영업소의 불법적인 행태와 더불어 직원을 하루아침에 해고해도 되는가에 대한 직원의 인권적 문제까지 얽혀있다. 그냥 '정규직 하려고 때쓰는 아줌마들'따위로 말할 수 없는 문제란 것이다. 법원이 판결한 것은 '불법파견'이다. 직원이 아니라 도로공사가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그동안 도로공사가 이들에게 해왔던 행위는 괜찮고, 본사를 점검해 시위를 벌이는 이들의 모습은 불편한 것일까?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려는 도로공사였다.


현행법상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계약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이라고 불리는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한다. 영업소는 지원금에 충족하는 계약시간이나 정규직 전환으로의 계약 시간이 지나면 해고하고 다시 다른 영업소로 돌려서 고용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해왔다. 도로공사는 이를 알고도 묵인했고, 법적인 책임을 회피해갔다.


몇몇 언론은 '자동화되는 톨게이트 업무를 두려워하며 직고용 하라 떼쓰는 직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지만, 본질은 오랫동안 불법고용을 해놓고 책임을 지지 않는 도로공사라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정당한 복리후생과 휴가 같은 기본적 권리를 보장했으면 벌어질 일도 아니었다.


애들한테 얘기했어요. "이건 엄마 일이야. 너도 나중에 직장을 갖게 되면 네 직장을, 소중한 직장을 생각하며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미련 없이 떠나버리게 되면 던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직장이야. 근데 엄마는 이 직장을 붙들고 싶기 때문에 싸우고 있어. 물론 엄마가 이 직장을 그만둬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엄마는 그게 아니야. 엄마 나를 위해서 이 직장이 필요한 거지, 먹고살기 위해서 악착같이 붙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야. 살아가면서 눈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과 눈 떠도 갈 데가 없는 사람의 차이가 뭔지 아니? 행복과 만족도가 달라지는 거야. 엄마는 이 직장에서 더 행복해. 그러니까 엄마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그랬어요.

105p


시위를 벌인 주인공들은 연대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캐노피와 도로공사 본사에서 시위하면서 배변과 의식주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함께 노래 부르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서로가 주면서 의지했다. 시위를 그만둬야 한다는 내부의 말과 갈등도 있었고, 그 가족들 또한 힘들었다.서로를 연결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설득해야 했다. 확실히 보장받거나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도 의심했다. 스스로 배우고 언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애써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후세대를 위해서 더 이상 이런 부조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잘못한 것이 절대 아니었으니 말이다. 시위를 하며 보이는 불편한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방식에 불편함을 표할 것이라면, 정말 적어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정직원으로 채용된 이후에는 졸음쉼터나 도로 근처 청소 및 정리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사무실 정직원들의 차가운 시선은 그럴 수 있다 해도, 도로공사 측에서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많은 돈을 받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업무를 하고 싶었다. 인간으로서, 하나의 직원으로서 보람차게 일하고 싶었다.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래왔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스스로 사회의 한 개인으로 일어서기 위해서.


공기업은 단순하고 가벼운 기업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사회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경영하는 기업"이다. 기업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곳이다. 건전한 경영도 중요하지만 그저 이익만을 향해 질주할 뿐이 아닌 기업이다. 공공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보여야 하는 모습은 무엇일까. 적어도 불법은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고려하면 톨게이트 노동자의 투쟁을 단순히 댓글들처럼 감성팔이라니, 떼쓰기 따위로 말할 수 있을까. 정직원으로 고용됐다 한들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며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는 배부른 삶을 결코 살고 있지 않다. 지금은 어떠냐는 질문에 돈은 이전보다 덜 받아도, 정시 출근에 정시 퇴근하며 그래도 직원 대우를 받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그런다. 몇 년간 추쟁하고 욕 들으며 얻어낸 삶이다.


정의를 달성할 정당한 수단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는 폭력을 유발한다. 그 폭력을 유도하는 사회와 부정의를 그저 방관하는 이들은 무엇인가. 항상 같은 말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사람을 그저 사물처럼 가져다 쓰고 쉽게 버리며 도달하려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잘못된 구조적 원인은 궁금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공정 담론만 외치는 이들의 사고는 얼마나 편리하고 얼마나 편안하며 얼마나 가벼운가.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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