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나무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주 보며 자라나던 두 나무가 있었는데, 한 나무가 인간에 의해 잘려나간다. 다른 나무는 잘린 나무가 다시 자랄 수 있도록 햇빛을 가리는 자신의 부분을 죽여나갔고, 결국 그루터기에서 움튼 싹은 작은 나무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이 그 큰 나무마저 베어버렸다. 자라난 작은 나무는 잘려나간 나무를 살리려고 했지만 힘이 없었고, 잘린 나무는 썩어 흙으로 돌아갔다.

 

"되살아난 그는 되살리는 존재, 그는 그 자리에서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p.21)

이어지는 것은 장미수와 신복일, 그리고 그들의 5명의 자식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가족의 이야기다.

 

5남매는 어릴 적부터 누가 누구 편인지 나누며 '우리'란 무엇인가를 배워갔다. 월화는 백일장에서 1등을 할 만큼 글을 잘 썼고 음악과 노래를 좋아했고 인기가 많았다. 일화는 운명을 노력으로 이기고 싶어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금화는 이런 잘난 가족들을 닮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라고 말했다. 그 사이에서 금화는 외로움을 탔다. 다른 가족과 달리 홀로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금화와 쌍둥이 동생인 목수와 목화가 산을 올랐는데, 나무가 기울어 금화가 깔려버렸다. 놀란 쌍둥이 동생들은 어른을 찾아서 도와달라고 요청하지만 어른과 함께 돌아오니 금화가 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쌍둥이의 증언을 비현실적이라 생각해 믿지 않았고, 이후에 온 가족은 금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쌍둥이가 말한 사실은 "나무가 쓰러졌고 금화가 깔렸고 다시 나무가 쓰러졌고 목수가 깔렸고 그사이 금화는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목화는 꿈이면서도 현실 같은 일을 계속해서 경험한다. 사람들이 투신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그들을 구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에 있었다. 목화는 그들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었다. 그 공간은 "어떤 틈과 같은 것. 꿈과 현실의 균열, 어긋나는 지점 또는 미세하게 맞닿은 선,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세계, 가능성으로 남아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사건"같은 것이었다. 목화는 계속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금화를 찾아내서 금화를 구하고 싶었다. 금화는 죽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하며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목수를 그 사건 당시에 누군가 자신처럼 살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목화가 이 꿈같은 상황에서 울면서 깨어났다. 그 모습을 본 엄마 장미수가 다가왔다. 목화는 엄마에게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냐 물었고 엄마는 그 능력이 무엇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미수는 15살부터 사람을 구했고 목화와 같은 일을 계속해서 겪었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 그중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일. 그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명령을 무시하고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매우 큰 두통이 일어났다. 그녀는 계속해서 소환당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해 간호사가 되었고 남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그 소환이 멈췄다. 그렇게 다산은 오히려 고통을 멈추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 되었다. 하지만 출산 후에 다시 소환이 이어졌다.

 

그녀 또한 엄마인 임천자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말했다. 다른 자식들은 이 일을 겪지 않았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이 일을 겪는 것이었다. "왜 나인가" "어째서 나인가" 미수도 계속해서 소환되고 있었다. "미수는 소환될 때마다 절절매며 신에게 빌었다. 내 딸을 찾아달라고,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신은 부당했다."

 

"이제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임천자의 기적장미수의 악마신목화의 목표인 신은 무엇인가."

미수는 금화의 실종에 신이 관여했다고 믿었다. "목화는 첫 소환부터 목소리와 동시에 나무를 느꼈다" 미수는 이 셋의 경험이 전부 다르며 명령하는 존재가 하나가 아닐 수 있음을 말한다.목화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고 한다. 첫째, 알아내는 것, 둘째 통과하는 것, 셋째 증명하는 것이다.

 

소환하는 존재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사람을 살리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왜 자신이 선택된 것인지를 알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분명 생과 사의 경계다. 이것이 신적인 존재란 무엇이며 살린다는 능력이란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다양한 주제가 엮인다.

 

누군가는 살려진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 존재는 다시 누군가를 살리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만약 목화가 살려진 존재라면 그는 누군가를 또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자신을 소환하는 대상을 나무로 느낀 것이다. 그것이 금화를 덮쳤던 나무일지도,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향해 바치는 인생이 그런 모양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됐든 생명은 선택받은 것의 결과다.

 

인간이 나무를 잘라냈고, 나무는 그 인간에게 저주를 내린 것일 수 있다. 앗아가는 만큼 살릴 수 있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배우게 하는 것. 모든 생명체에겐 자라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가져갈 때 생각 없이 앗아가려는 그 사고를 비판하는 것일까. 고유한 인생은 인간에 의해 하나하나 베이는 숲속의 나무의 모습과도 겹친다. 다른 나무를 키워내는 것도 또 다른 나무의 의지이듯, 이 소설에서는 연결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는 살아 있음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분명 선택받은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이 죽음에서 구해졌다는 것으로 대표되지만, 그 상황은 다른 곳에도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구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 앞에서 특정 인물을 골라야 하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것의 무게는 어떻게 짐작하며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저자가 어떤 의미의 생과 사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 곱씹어 본다.

 

나무의 이야기와 그 나무를 인간들이 베어가며 숲이 사라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단순히 인간의 탐욕이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생각하게 했지만, 그 이후의 내용을 읽으면서 고유한 생명과 죽음, 또 한 생명을 위한 사랑과 보살핌, 인간의 관계란 무엇인가 묻게 되며 다양한 상상을 하게 했다.


* 서포터즈 활동으로,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서 쓴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