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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베테랑: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사전적 정의다. 우리가 장인, 전문가라 부르는,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이들이다. 베테랑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노동을 거듭한 몸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또 어떤 이야기를 닮아 변해있을까. 작가 희정은 그들을 인터뷰한다. 베테랑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대화한 기록을 남겼다.
세공사 김세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릴 적 지인 소개로 작업장에 들어간 김세모는 작은 통나무 위에서 노래를 불러야했다. 그렇게 신고식을 치렀다. 배우는 것은 알아서, 눈치껏 배워야 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버티며 결국 기회를 얻어 일을 시작했다. 하루 15시간 일을 했다.
귀금속에 광을 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업계에서는 누가 한 지 알 정도다. 날카롭게 돌아가는 휠에 금속을 갖다 댄다.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인 광 작업에서 불량이 나면 앞선 모든 작업들도 날아가는 거다.
기계의 발전으로 이제는 더욱 복잡하고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손가락 서너 개로 휠의 회전력을 감당하는 손목은 휘고 어깨는 말려있다. 허리 디스크가 있지만 그러려니 한다. 세공작업에는 유해 물질이 가득하지만 건강을 생각할 틈이 없다.
"열심히 하면 되니까요. 열심히 하는 걸 못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가 하는 말이다. 열심히, 꾸준히. 그게 쌓여 몇년, 십수년이 넘는다. 열심히 하는 것, 쉽게할 수 있는 것일까? 베테랑들에게는 나름의 자부심과 즐거움이 있었다. 다들 어쩌다 보니 오래 일하고, 베테랑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순간을 그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조리사 하영숙은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했다. 2000명이 넘는 사람의 밥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옛날에는 기계도 없었다. 당연히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 음식 하나하나에는 고려할 것이 많고 계산해야 할 것이 많다. 먹는 사람의 취향, 특성까지 고려한다.
하영숙은 살아남기 위해 노조도 가입하며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육아를 하며 자격증을 땄다. 이는 그 시절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베테랑이라는 단어로 삶을 단순히 짐작할 수 있을까. 그녀는 회계 일이 하고 싶었지만 타인을 위해 고생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잘 살았다" 말한다. 자신만의 가치를 쫓는 의지가 보인다.
로프공 김영탁은 대학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청소 업체를 차렸다. 젊으니 줄을 타보라는 권유에 연고 없는 대전에서 먹고 자며 3개월을 배웠다. 지금은 실리콘 보수 작업을 한다. 로프공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추락을 생각하지만 떨어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로프공들의 추락사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을 듣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심지어 주민이 방해된다고 줄을 잘라버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놀이 기구도 무서워 못 타는 그는 어쩌다 보니 로프공이 되어있었다. 어쩌다 보니, 먹고살기 위해. 그것이 베테랑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세신사 조윤주는 월 300이라는 당시로선 큰 금액을 준다는 말에 시작했다. 물에 불은 손이 때수건과 계속해서 비벼졌다. 목욕탕에 자릿세를 내고 사람들의 때를 벗긴다. 안마사의 역할도 한다. '시원하게'밀어줘야 한다. 손맛에 따라서 인기가 판가름 난다. 처음이라면 눈물을 머금고 배워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어부 염순애와 박명순, 조산사 김수진, 마필관리사 성상현, 수어통역사 장진석,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전시기획자인 전포롱, 연극 배우 황은후, 식자공 권용국은 몸을 던진다. 노동에 의해 몸이 변화한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아름답게 보이는 세상을 만든다. 참 모순적이다.
베테랑의 삶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삶이었다. 어쩌다 보니 일했고, 살아야 하니 계속했고, 그저 재밌어서 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삶과 기술을 만들어갔다. 기술자의 세계에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들의 직업은 안전뿐 아니라 안정을 보장하지 않았다. 우리가 베테랑을 바라볼 때 노동의 위대함을 보지만 그 뒤에는 그들이 버텨왔던 시간과 고통, 또 변화하는 몸이 있었다.
세공, 급식, 외벽청소 전문교육과 법의 보호가 없는 일들. 위험과 함께한 세월을 느낀다. 세상은 좋아졌을까? 1년동안 2천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한다. 베테랑들은 오히려 위험을 감내하고 피곤을 참아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어찌보면 운이 따랐던 삶을 살았다 말할 수 있다.
베테랑이 되어가면서 같이 사는 방법을 배운다. 세신사들은 인기에 따라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도록 돈을 똑같이 나눴고, 경마장에서는 성과금의 일부를 모아 서로의 월급에 보탰다. 어촌에서는 서로 돌아가며 그물을 던졌다. 결국 ‘같이 사는’ 일이다. 이것이 베테랑들의 삶이 전해주는 또다른 지혜가 아닐까.
"늘 인터뷰 마지막엔 베테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각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계, 성실, 연대, 인간다움, 가능성. 그걸 듣는 순간이 좋았다." (P.330)
가치를 잃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이 베테랑이 되는 자리까지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선 땀 냄새보다는 몽글몽글 피어나는 희망과 세월과 함께 굳어진, 단단한 의지가 느껴진다.
사진과 함께 그들의 삶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우리 주변이 다르게 보인다. 나는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일하고 또 살아갈까. 베테랑이 된다는 것은 사전의 정의처럼 그저 오래일하고, 잘하기만 해서 되는게 아닐 것이다.
*한겨레 출판에게 책을 제공받았고 솔직하게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