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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진보’는 나아졌다는 가치판단이 들어간 단어다. 우리의 마음은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의 진보>는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마음, 정확히 말하면 신앙의 변화에 대해 쓴 책이다. 17살에 수도원으로 들어가 7년 동안 수녀로 살았던 소녀는 수도원을 뛰쳐나와 세계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학자가 되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17살의 카렌은 신을 찾고 싶었다. 어딘가에 속해서 진리를 찾는 것은 설레고 의욕 넘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한 인격의 억제 혹은 말살을 겪었다. 개인을 규율에 맞춰야 했으며, 그의 천성인 의심과 질문을 억압했다.
카렌은 응답받지 못했다. 밤새 기도하며 수녀원의 엄격한 규율을 따라도 실질적으로, 영적으로 무엇인가 얻어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신은 그녀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카렌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어 일반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수도원 생활에 대한 회의를 갖게되었고 환속을 신청하여 세상으로 나온다. 그녀는 이제 열정적인 기독교 비판론자가 된다.
카렌은 잠시 정신을 잃거나 기억을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 밖에서는 치료의 대상이었던 질병이 수도원에서는 나약함의 상징이었다. 카렌이 찾아갔던 의사들은 무의식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프로이트식의 진단을 하며 엉뚱한 이야기만 반복했다. 나중에 다른 의사를 찾아가서야 간질이라는 제대로 된 진단을 받는다.
무엇인가 정확히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 달성 가능한 것을 원하는 과정이 그의 삶 속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대충 그려진 것이 아니라, 정확한 실체를 알고 싶어 했다. 그것이 마음이 편한 것이었다. 세상엔 엉터리가 많았다.
카렌은 방송국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종교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면서 종교에 대해 더욱 자세히 공부하며 흥미로운 자료들을 접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와 일맥상통하며, 진실된 믿음을 요구하고 절대적 진리를 가지고 행동을 규율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유대교는 바른 행동을 중시했다. 십자군 연구를 통해 악마화된 이슬람교보다 더욱 악한 행위를 했던 것이 십자군이었음을 알게된다.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우리’만이 진리와 정의를 독점한 것처럼 구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p.439) 확신은 독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연구와 인생을 통해 깨달았다.
인기가 없었던 종교 프로그램 제작은 예산부족으로 중단되었지만 그동안 얻은 깨달음으로 아브라함을 인정하는 이 세 종교가 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정리하는 <신의 역사>저술을 계획한다.
그녀는 유대교 이야기에서 신앙은 실천이고 믿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종교는 인생을 알차게 살기 위해 존재함을, 진리와 믿음을 위해 생을 죽여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
이슬람은 복잡한 교리를 받아들이기보다 의식을 실천하는 편이었다. 또한 마호메트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아낌없이 주려는 마음과 행동을 강조하며 사회를 바꿔나갔다. 핵심은 믿음의 체계가 아니라 실천 과정이었다.
답답한 사람들이 그래서 무슨말이냐, 진리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냐! 라고 묻겠지만 카렌은 이런 질문들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몇몇 신학자나 종교인들도 신은 객관적 사실이나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이며 무(無)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 서양은 합리주의라는 사고를 가지고 오류 없는 교리, 완벽한 진리라는 허상에 빠지게 됐다. 신은 논증 가능한 대상으로 여겨졌고 직관은 적이 되었다. 저자는 이런 태도가 종교적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신앙이라는 것은 저 멀리 하나의 진리를 두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할까? 거대한 인류사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발전한 종교의 공통점이야말로 진리를 의미하며 그것이 신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 세 종교 모두 자신을 내려놓는 비슷한 가치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에 다시 하나로 수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세한 연구 내용은 <축의 시대>, <신의 역사>와 같은 책에 나와있다. 이 책은 그녀의 마음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단순히 개성을 내세우는 자서전이 아니라 인생을 통해 인간의 믿음과 신앙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믿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인가? 이는 살면서 한번쯤 생각해볼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