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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기 ㅣ 세창명저산책 100
박찬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사랑을 하는데도 기술이 필요할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기>는 에리히 프롬 전문가 박찬국 교수가 <사랑의 기술>을 해설하는 책이다. 한국에 변역된 <사랑의 기술>은 번역본 초판이 1972년에 나와 비교적 딱딱한 표현이 아쉽고, 판권이 독점되어 있어 새 번역을 할 수 없었는데, 세창미디어의 제안으로 풀어 읽기를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랑은 인간만의 것이라 볼 순 없지만, 인간이 유일하게 이성으로 논할 수 있는 주제이며 그 형태를 다양화 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성욕과 같은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롬은 동물보다 인간이 완전히 우월하거나 행복하다 보진 않는다. 우월은 관점에 따른 것이고, 인간은 이성을 가진 이유로 수많은 부정적 고독감, 불안함, 우울함 들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프롬이 많은 저작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유에 수반되는 불안'이다. 자유를 얻은 인간은 불안을 느끼고 또 단체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느낀다. 인간은 '획일성'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특히 현대사회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 프롬은 분리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모든 인류 그리고 자연과의 결합을 경험하는 것이다." (p.57)
프롬은 병적인 사랑을 비판하면서 사디즘적인 사랑과 마조히즘적인 사랑을 구분한다. 마조히즘적 희생은 자아를 절멸하는 데서, 사디즘적 지배는 타인을 파괴하며 만족을 얻는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정반대의 형태를 보이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근본적인 상태, 즉 자신에 대한 불안감과 무력감이 나타나는 두 가지 방식에 불과하다." (p.65)
또한 프롬은 사랑의 한 유형으로 모성애와 부성애를 언급한다. 그는 프로이트를 비판하면서 남성중심적인 심리발달이론을 비판한다.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신에게 사랑받는 가부장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모성과 부성, 둘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소유적 심리로 자식을 통해 목적을 이루려거나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모성애의 참된 본질은 아이가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p.82) 갑자기 오은영 박사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우상숭배적 사랑과 감상적인 사랑을 한다. 프롬은 이 둘 모두 비판한다. 사랑은 현실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과 전혀 갈등을 빚지 않을 상대를 발견하고 싶어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갈등은 항상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그러한 갈등을 서로에 대한 신뢰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p.94)
프롬은 남성적인 특징과 여성적인 특성을 가진 둘이 서로를 존중하며 합일을 이뤄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프롬의 다른 저서에도 강조되지만, 나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곧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랑은 성적인 의미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강렬한 감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감정으로 표현되지만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수반하는 것들이 많으며 우리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
프롬은 이기주의와 자기애를 구별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소유로 채우는 것이 아닌 사랑을 실현함으로써 풍족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기심은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배척한다. 증오의 감정은 타인을 향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할 여유가 없다. 그 반대도 똑같다.
자본주의적 사고가 발달하면서 사랑 자체에 대한 근본적 사고가 변화했다. 많은 것들이 자본화, 조건화가 되었다. 사랑도 '따져가면서'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우정도, 연인 간의 사랑도 하나의 교환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주는 정도만큼 자신도 주겠다는 것이다." (127p)
그는 계속해서 프로이트의 사랑이론을 비판한다. 프롬의 시각에서 인간의 삶은 실존적 욕망과 사회적 성격이 중요한데,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는 성적욕망을 결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프롬의 날카로운 통찰은 신에 대한 사랑의 설명에서 한 번 더 발휘된다. 사람들은 교회를 찾지만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평소에는 신을 찾지 않다가 위기에만 신을 찾고, 물질적인 필요가 생길 때 신을 찾는다. 현대의 신은 우상숭배적인 모습이 되었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도 습득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신 집중과 깨어 있기의 훈련을 권한다. 불교적 수행법과 거의 동일하다. 우리는 관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억압된 것 또한 자각해야 한다.
사랑은 "자기도취의 극복,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또한 소유 지향적인 이기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스스로를 소유를 통해 나를 채우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유를 통해 나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위를 통해 나의 가치를 느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인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
"프롬은 인간은 부나 명성이나 권력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적인 능력을 온전히 전개할 경우에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롬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이 자신의 이성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행동과 그것에 수반되는 만족감'만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쾌락은 일시적으로는 좋은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인간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p.184)
내가 프롬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희망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사람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나의 것을 꺼내서 활용하면서 살아갈 때 사람으로 존재하며 행복할 수 있다. 인간은 현실을 살지만 이상을 꿈꾸는 존재다. 프롬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세창미디어의 세창명저산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시리즈다. 100번째 명저산책을 출간한 것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