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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평전
이광호 지음,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기획 / 사회평론 / 2023년 6월
평점 :
예전부터 노회찬과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20대인 나는 노회찬과의 접점은 적었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TV 토론에서 노회찬을 보고 난 후 관심을 갖기 시작해 애정 아닌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의 토론과 연설들을 있는 대로 찾아보며 대학 2학년 시절 ‘현대시창작’과제로 ‘6411버스’와 관련된 시를 쓸 정도였다. 마침 사회평론에서 정식 발매 이전에 <노회찬 평전>서평단을 모집해서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뽑아주셔서 표지와 띠지가 없는 가제본을 먼저 보내주셨다. 드디어 노회찬에 대해 무언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보 정당을 지지해 달라거나 노회찬을 긍정적으로 봐달란 말도 아니다. 그저 그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정치란 무엇인지,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마음이다. 나의 이야기가 불편하다면 넘어가도 무방하다.
나에겐 노회찬이란 인물은 정치인이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보게 만든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인물이다. 그에 대해 뭔가 씁쓸함이 남아있다. 일부러 힘든 길을 선택한 그에게 도움 하나 못 주고 응원만 한 아쉬움이랄까. 이번에 나온 <노회찬 평전은> 노회찬과 함께했던 동료 이광호가 쓴 노회찬 인생 이야기다. 세세하고도 감정이 어느 정도 절제되어 그의 인생이 더 잘 다가왔다. 500페이지가 조금 넘어 생각보다 두껍긴 하지만 간결한 문체와 정보 전달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정치인 노회찬. 길고 긴, 다사다난한 인생이다. 노회찬은 피난민 부모 아래서 모범생으로 자랐지만 반항정신이 강해 선생님에게 따져 묻기를 잘했으며, 그런 천성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한 전형적 운동권 국회의원으로, 진보 정당 역사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평전에는 그의 정계 입문부터 개혁신당, 국민승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을 거치고 거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정치 역사, 특히 진보 역사는 굉장히 정신없이 돌아갔음을 다시 느끼게 했다. 진보 정치에는 위기도 많았다. 보수는 부패하고 진보는 분열해 망한다고 그러지 않나. 특히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때는 분노와 분열의 최고조를 찍었다. 진보 유권자의 희망과 그의 노력을 배신하는 황당한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논란을 수습 짓고 총대를 매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해법은 동반 사퇴와 같은, 같은 당 의원도 말리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의 성격은 그랬다. 할 때는 해야 하고 손해 보더라도 하는 것. 그는 어려운 길을 일부러 걷는다고 말했다. 안기부 X파일과 검사들의 이름을 모두 공개한 그의 뚝심은 지금 봐도 놀랍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강한 힘을 주진 않았다. 그가 보루로 삼았던 면책특권은 지금처럼 가볍게 불리는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 아니라 노회찬같이 용기 있는 발언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 사회에서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의 모습과 행동이 세련되지는 못했다. 때론 투박했다. 하지만 매우 솔직했다. 또 풍자와 해학이 그의 특징이었다. 많은 국회의원들과도 원만한 사이로 지내면서도 할 말은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런 그는, 나에게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저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인간다운 사람이랄까. 사람 냄새가 풍겼다. 흔히 진보 정치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들이 내세울 만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노회찬은 2018년 7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당시 정치자금법을 위반해 논란이 일었는데, 그것은 정치인 신분이 아닐 때 받은 정치후원금이 문제가 된 것으로,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 위반은 위반이다. 어쩌겠는가. 그는 그 나름대로, 죽음으로 책임을 졌다. 나는 부고 소식을 듣고 굉장히 허무하고 뭔가 쿵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이 그 존재까지 부정할 문제였을까. 그러나 평소 그의 성격을 유추해 보고, 또 유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정도였다. 사실 그의 선택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진보 정당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래봤자 손에 꼽고 그래도 희망으로 남은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정치는 다툼이라지만, 그 끝엔 공공선으로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증발하는 혐오나 비아냥이 아니라 의견을 말하고, 상대를 납득시키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특정 집단이나 나의 의견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 진보 정치엔 일말의 희망이라도 심어줄 수 있는, 해결까진 바라지 않아도 적어도 말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노동자들의 마음을, 억울함을 사회에 인지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우린 그를 통해 6411버스를 타고 다니는 노동자들을 알게 된다.
나는 노회찬이 옳은 말만 했다거나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세련된 엘리트의 모습이나 권위적인 모습보단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고 보통 사람을 대변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나서서 개선하지 못하고 힘 하나 못 보탠 미안함이랄까. 많은 이들이 민주당에 투표를 던져도, 비례대표를 정의당에게 준 이유는 그에 대한 응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정치라는 영역에 대중의 시선을 끌게 만들고 직관적 이해를 도와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런 모습은 많은 이들을 정치혐오로 나아가지 않게 했다.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정치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장이다. 다양한 의견은 소음으로 취급받아 목소리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풍자조차, 웃음조차 사라져 대립과 혐오만이 남은 이 시대에 더더욱 그리움이 커져간다. 이제야 조악한 글이라도 쓴다. 잘 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