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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리부트 - 열광과 환멸의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 12
신진욱.이세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한국 정치사에서 현재만큼 적대적으로 갈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최근 사용되는 정치용어들을 보면 ‘갈라치기’, ‘포퓰리즘’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넘쳐나며 20대 대선은 0.73% p 차이의 초박빙으로 결정 났을 만큼 누가 더 뽑히면 안 됐는지를 외치는, 양쪽으로 나뉜 정치의 상황을 나타냈다.
우리 정치사는 세계적 관점에서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정권의 몰락과 노태우의 당선, 노무현의 극적 당선과 탄핵 시도된 노무현을 위한 촛불, 또 이명박 당선,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집권, 그리고 또다시 윤석열로의 정권 이양…
이처럼 한국 정치사는 정치에 대한 ‘열광’과 ‘환멸’이 반복되는 흐름을 보였다. 변화에 대한 열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금방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한국 정치 리부트>는 기자와 교수라는 이력을 가진 저자 둘이서 열광과 환멸을 반복하는 정치의 모습을 ‘민주주의와 자유’, ‘보수와 진보’, ‘포퓰리즘’과 같은 12개의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저자는 더 이상 과거의 문법만으로 현실 문제와 사회 구조를 설명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현대 정치에서 일상 정치 운동의 모습과 공적 의제 자체가 사회와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했고 통일성 있는 요구가 아닌, 교차하는 국민 각각의 요구가 나타난다.
5년마다 반복되는 열광과 환멸의 한 원인으로 과거에 정해진 보수적인 정치구조가 반영하지 못하는 억눌린 대중의 요구가 분출하는 것을 꼽았다.
대표적인 표출이었던 2017년 탄핵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5년 동안 국민 대다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변화와 정의를 기대했던 윤석열 정권은 대통령실 이전부터 각종 망언, 이태원 참사, 정부 관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불안한 모습으로 지속되고있다.
지금의 정치는 숙의는 사라지고 증오와 경멸만이 남았다.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절대 선으로 여기며 민주주의 정신을 잃고 폭주하는 모습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직접 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정권교체로, 또 윤석열 정부 지지도의 바닥으로 드러났다.
“궁극적으로 문제의 핵심은, 주요 정치집단들이 양극화된 증오와 대결을 반복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의 복잡한 갈등과 구조적 문제를 풀어갈 정치의 공간이 소멸한다는 데 있다.”(p.204)
민주당은 리버럴과 호남세력을 묶어 분열의 위험성을 떠안았지만 국민의힘은 극우세력을 떨쳐내지 못해 우경화 되고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기회를 이용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비판으로 나아갔느냐? 오히려 분열의 조짐을 보이며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그놈이 그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대중은 대안세력을 원하면서도 양당제의 관성을 뿌리치지 못하며, 자신 있게 나서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다. 우리 정치에는 희망이 있을까?
합의의 정치의 가능성을 보았던, 이념 지형과 느슨하게 결합한 지역정당체제로 존재했던 1980년대 후반의 모습은 양당제의 경로의존성이 강해지고 난 이후 볼 수 없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다. 2016년의 안철수 중심의 국민의당 등장으로 3자의 긴장을 이끌고 타협이 이루어졌던 시대도 있었다.
또한 시민들은 언제나 분출되지 못한 앙금을 풀 기회와 자신을 대표하여 나올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역동적 정치사를 보았을 때 또 한 번의 열광을 기대해 볼 수 있기에 비관적으로만 보진 말자고 말한다.
저자들은 진보적 정치를 희망하나 단순히 보수정당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합리적인 보수로 돌아서길 희망하고 있다. 보수의 개선과 진보의 발전을 위한 조언 또한 담고 있기에 모두가 참고할만하다. 정치적 이론으로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기에 유익하다. 최근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엉터리 통계나 빈약한 근거의 정치서적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은 그와 달리 질 좋은 정치서라 부를 수 있겠다.
사고하지 않으면 자극적 단어와 수사에 넘어가 감정 풀이만이 남는다. 이것은 밈화된 최근 정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결과로 멍청한 이들에 지배를 받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멍청해진다는 것 또한 문제다.
“이쯤에서 우린 물어야 한다. 매일의 삶이 파국이고 비상사태인 이들에게 5년짜리 청와대 권력의 향배는 얼마큼의 실존적 무게를 지니는지.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종말론의 시간이 도래하는 건, 권력에 따라 오가는 이익에 삶의 모든 것을 걸어버린 이들의 뒤틀리고 마비된 감각 체계 탓은 아닌지.”(p.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