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섹타겟돈 - 곤충이 사라진 세계, 지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올리버 밀먼 지음, 황선영 옮김 / 블랙피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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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람’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감사하게도 당첨되어서 책을 제공받았다 :)


2017년 10월 18일, 과학 학술지 <플로스 원>에 "27년 동안 동물 보호구역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의 총 생물량이 75% 감소하다"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다수의 언론과 미디어는 곤충의 최후를 의미하는, '곤충 아마겟돈'과 같은 이야기를 했고, 이 둘을 합친 "인섹타겟돈" 이라는 합성어가 탄생했다.

최근에 이례적 폭염과 적은 강수량으로 인해 모기의 수가 줄고, 11월에도 춥지 않아 모기가 겨울에도 자주 출몰한다는 기사를 접했었다. 한편 꿀벌 또한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는 뉴스를 들었었다. 이는 벌 사이에서 도는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모기의 감소에 대해서는 솔직히 기분 좋은 감이 있었지만, 벌의 감소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벌과 같은 곤충의 소멸은 더더욱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고, 직접 보이지 않기에 더욱 무섭기도 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에 인류가 종말 한다는 말도 흔히 들려오지 않았나. 결국 기후변화가 그 결과를 인간이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이든, 곤충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생산량을 최대로 늘리는, 효율적이라 불리는 자본주의는 기후 위기 시대에 실패를 나타냈고 이제 자연의 중요성을 외치는, 더욱 수정된 자본주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실패로 나타난 모습 중 하나가 '인섹타겟돈'일 것이며,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해결점을 모색해 본다.

저자는 먼저 우리의 상황이 어떤지를 과학자들의 연구 데이터로 보여준다. 곤충은 사라지고 있고, 그 상황을 인지한 후부터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찾아다녔다. 곤충 이 사라진 만큼 곤충을 먹는 새 또한 감소하고 있었다.

자연에서, 특히 인간의 농업 혹은 과수산업에서 수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하려면 수없는 시간이 걸리는,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다. 저자는 현재 곤충이 해내고 있는 매우 큰 역할을 데이터를 통해 제시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곤충들이 사라지고 있다.

살충제 이야기는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지겨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신 책에서는 기후 위기와 인간이 만든 영향들을 더욱 강조한다. 또 현대의 '인섹타겟돈' 현상은 복합적임을 설명하는데, 이는 단일경작으로 곤충이 살 환경이 부족해지는 것, 살충제, 기후변화, 광공해 등등의 수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는 것이었다.

곤충의 소멸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인간은 보이는 것만 본다. 작은 것들은 대게 보이지 않으며, 멸종을 생각해도 귀엽거나 크고 가까운 것들을 걱정한다. 죽은 곤충보다 산 곤충을 보게 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곤충의 귀여운 이미지나 자연친화적이라고 여겨지는 시골의 모습조차 사실상 꾸며지고 제거된 것이다.

인간은 살충제를 비롯해 각종 기술을 개발하며 자연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주로 생산량 확대나 환경개선을 위해 해충을 박멸하거나 단일경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부정할 수 없는 효과적인 것이었을까. 살충제는 뿌리면 바로 분해되지 않고 오래 남아있었다. 레이첼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에서도 언급했듯 모평범한 사람들의 몸에서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다. 또 해충이라 불리는 곤충을 없애려고 살충제를 뿌리지만, 해충의 천적까지 죽여버려 오히려 계속해서 약을 쓸 수밖에 없다. 한 종류의 살충제를 금지시켜도 다시 다른 과학자가 만들어서 제공한다. "전술이 똑같으면 무기를 몇 개 없앤다고 해도 전쟁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자원 소비를 하느냐가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

자연은 결국 얽혀있고,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영향을 받으면 그것은 도미노로 이어진다. 단일경작을 하면 곤충이 쉴 곳이 없어진다. 꿀벌만을 양봉하게 된 현실은 다른 종의 벌들을 없애며 다른 곤충의 먹을거리를 없앴다. 제왕나비가 사라진 것도 그 서식지인 오야멜 전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또 이 사태들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 각종 나무가 벌목되고, 꽃들이 사라져 일어난 것이기도 했다.

더욱 혼란스럽거나 무서운 것은, 원인이 정확히 규정되지 않은 곤충의 소멸이다. 이것이 레이첼 카슨을 포함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한, '인간의 무지함'일 것이다. 좋다. 무지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인간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곤충을 이용하고,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은 죽여왔다. 인간에게 한 종의 생존을 결정할 거대한 권한이 주어진 이후로, 무자비하게 또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또 무엇이 죽어가는지 이름도 모른 채로 살아왔다. 숲을 복구하는데 나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곤충이 필수적이다. 거기에 생물 다양성을 이루는 초석은 벌이다. 나뭇잎과 각종 자연물들을 분해시켜 자연을 순환시켜주는 작은 곤충들까지. 

인간들이 '필요에 의해' 꿀벌들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꿀벌에게만 신경 쓰는 동안 다른 종은 죽어가고 있다. 꿀벌이 모든 종류의 꽃들을 수분하지는 못하며, 다른 동물의 활동 역시 필수적이다. 우리는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곤충들을 바라보며 편애하지 않고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다뤄야 한다. 또 그를 위한 최고 목표엔 기후변화를 막거나 늦추는 것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어디서나 완전히 쓰지 말자는 식으로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적당히 써야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자 또한 레이첼 카슨처럼, 다양한 접근법을 사용한 후 살충제를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자고 말하고 있다.

상자형 벌집의 발명과 살충제, 단일 작물 기법은 농업의 혁명을 가져왔고, 우린 지금 그 부작용을 직시하고 있다. 또 우리는 수많은 종의 곤충, 동물들이 소멸하거나 되살아나는 거대한 변화에 서있다.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저자는 문제를 인식한 과학자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변화를 이끌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들로 보여준다. 로봇벌과 같은 공학적 시도도 하고 있으나 저자도 이런 기계적 시도는 너무 낙관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자연을 대체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자연뿐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교훈은 지금에도 유효하다. 아마 계속해서 유효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땅을 평평하고 유독하게 만들고, 대기의 화학 성분이 달라지게 하며, 진보와 심미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생물학적인 사막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위험 부담이 큰 실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곤충에게 우리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우리에게 곤충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곤충의 위기는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보면 결국 인간의 위기다."


+이 책을 통해 양봉산업의 유통구조와 그 현실, 새로 알게 되는 부분이 상당하다. 자칫 곤충에 대한 사례만 내놓는 지겨운 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곤충의 이야기는 이곳저곳 모두 얽혀있다. 또 그렇기에 더욱 중요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것들이 오히려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극화와 환경파괴는 결국 공멸로 이끄는 것이라는 생각에 더 확신이 든다. 

인간으로서 자연을 활용하고 이용하고, 어느 정도 우리의 이익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쳤을 때, 또 후손에게 물려줄 것까지 생각하지 않는 그 탐욕과 무책임함에는 언제나 저항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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