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안돼~~~~~!!!!”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서 초저녁인 것처럼 어둑어둑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였다. 뒷목이 약간 댕겨짐이 느껴졌다. 가씨는 오늘도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을 꾸기만 하면 후두부에서부터 뒷목 언저리까지가 댕겨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무슨 꿈이었지?’ 멍하니 누워 가씨는 생각해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6분 여를 골몰히 생각한 끝에 내용이 대략 생각이 났다. 예쁘지만 가냘 퍼 보이는 7살 정도의 여자애가 나왔던 것 같고 자신의 모습도 그 여자 애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나 유치원생정도로 보이는 어린 모습이었다. 꿈에서 가씨는 무서워서 가위에 눌린 것 마냥 두려움에 눌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 애는 어딘가의 낭떠러지에서 -산등성이의 낭떠러지인지 바다의 낭떠러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못하고 보고만 있다가 여자애가 떨어진 후에야 ‘안돼, 안돼!!!’라고 외치다가 잠이 깬다. 언제부터인가 계속 꾸게 되는 꿈이다. 어릴 때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듯한 꿈이었기 때문에 가씨는 그 꿈을 꿀 때마다 일어나면 뒷골이 땡겼고 기괴한 느낌이 들곤 한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의 모습은 어둑어둑한 하늘빛 아래에 그대로였다. 가씨의 방은 10여 평되는 원룸으로 침대와 행거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에 것들만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의 방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좀 많을 정도로 곳곳에 여자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가씨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 후 냉장고에서 식빵, 쨈, 우유를 꺼내고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었다. 그리고 여자사진들 속에 둘러 쌓여 토스트를 만들었다.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흘러 온다. 그 꿈을 꿀 때마다 듣곤 하는 음악이다.

「난 멍청이야. 난 낙오자이지.
어떻게 이렇게 지옥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난 여기에 속해있지 않아......」

방안을 흐르는 노래를 들으며 땡기는 뒷목을 간간이 주물러주며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토스트 빵이 마지막 한 입이 남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이’라는 말투로 시작되는 것을 보니 다니고 있는 회사 동료인 나씨였다.

“어이, 가씨 일어났어? 회사 몇 시까지 올 거야?”
“아아...아침부터 누구라구...나씨야? 한 11시쯤에는 갈 것 같아.”
“알았어, 오늘 일 마무리지어야 되니까 그쯤까지는 와야 돼.”
“응, 알았어. 조금 있다 봐.”
“그럼 괜히 사람 기다리게 하지말고 제시간에 나타나라구.”
“알았어. 끊을게.”

가씨는 외국계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녔다. 회사 일이 주로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로 이루어지고 외국계 기업이라서 출퇴근이 자유로운 편인 회사였다. 오늘은 몇 달 동안 지리하게 이어지던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고 몇 가지 사항만 검토하면 일이 완료되기 때문에 그동안 회사에서 날밤을 샌 일도 많았던 가씨는 여유롭게 출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씻을 생각을 하고 거울을 보았다. 며칠 간의 야근으로 면도도 제대로 못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푸석푸석했다. 욕실에 가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면도를 하고, 이빨을 닦았다. 그리고 샤워를 하는데 차가운 물이 몸에 닫자 땡기던 뒷목도 잠시 괜찮아졌고 기분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샤워 후 행거에서 입을 옷을 챙겼다. 옷을 입고 넥타이를 매려고 목에 걸었는데 뒷목이 댕겨왔다. 왠지 좋아졌던 기분이 약간은 상한 가씨는 넥타이는 하지 않기로 했다. 문단속을 하고 집을 나서며 사진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 이쁜이들~~다녀올게~”

가씨는 아파트를 나서서 지하철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위에는 아이들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서로 쫓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출근시간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아파트주위를 벗어나 길거리로 나서자 약간 제시간을 놓친 듯한 사람들로 붐볐다. 시계를 보니 9시였다. 가씨의 회사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30분 거리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분주해 보였지만 자신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지하철역이 있었고 회사는 역에서 10여 분의 거리였다. 바깥공기를 쐬자 기분이 약간은 상쾌해졌다. 거기다 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잔뜩 끼어있던 구름도 조금은 얇아져서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뒷목이 댕겼던 것도 잊고 기분이 좋아진 가씨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지하철역에 들어섰다.
지하철을 타고 네 정거장을 지났을 때 가씨는 졸고 있었다. 누군가가 옆에 앉아서 깨버렸다. 덜깬 얼굴로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앉았는지 맞은 편에 꽤 예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지난 역에서 탔나보다. 까만 정장 투피스를 입고 화장은 옅지만 틀어 올린 헤어스타일이 왠지 도발적인 느낌이 나는 여자였다. 가만히 여자를 보고있는데 여자의 표정이 옆에 있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싫다’라는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시선을 따라 여자 옆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검은 양복에 선그라스를 쓴 척 보기에도 좀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무슨 선그라스람...촌스럽게’ 라고 생각하며 가씨는 눈을 돌리고 여자를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몇 정거장이 지나자 듣기만 하던 여자가 선그라스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사나워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왠지 선그라스가 여자를 강제로 끌고 갈려는 분위기였다. ‘이년아 말 안 들어!’ ‘내가 당신 말을 왜들어, 그리고 왜 욕하고 지랄이야!’ 등의 험악한 대화가 오갔다. 시선을 집중한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짜증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누가 나서서 말릴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가씨는 나서야 되나 가만있어야 되나 갈등했지만 왠지 나서 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선그라스가 여자를 끌어서 일으켜 세우더니 지하철 문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가씨는 뒷목이 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멈추었고 문이 열리자 선그라스가 여자를 끌고 나갔다. 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뒷목을 왼손으로 잡으며 문을 빠져 나왔다.
아침 출근시간이 지난 거리는 한산했다. 구름이 다시 어둑하게 끼어 있었고 뒷목이 땡겼다. 사십여 미터 앞에서 선그라스는 여자를 끌고 가고 있었다. 여자는 지하철에서 반항을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을 보고 포기했는지 별다른 저항도 없이 그냥 선그라스의 손에 이끌려가고 있었다. 가씨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뒷목이 땡기는 것을 느끼며 약간의 불길함만을 안고 그냥 따라가고 있었다. 가다가 자기 딴에는 '이거 미행인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설픈 동작으로 봐서 미행이라고 할 만큼 잘하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선그라스는 주의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설마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가씨는 어설프게 뒤따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선그라스의 눈에 띄지 않고 미행을 할 수 있었다. 가씨는 자신이 왜 따라가고 있지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계속 뒷목이 땡기는 것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 분 선그라스를 미행하자, 건물 숲이 우거져 있는 동네에서 한 10여 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로 선그라스와 여자가 회전문을 통해 들어갔다. 건물 앞면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고 가씨는 맑은 날이었다면 햇빛이 들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그라스는 여자를 데리고 대리석 로비를 지나 건물 데스크를 지나서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수위아저씨가 데스크에 있을 만했는데 잠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가씨는 건물 위층에 볼 일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선그라스와 여자가 있는 엘리베이터 옆에 나란히 섰다. 선그라스와 여자가 서 있는 엘리베이터가 먼저 도착했고 선그라스와 여자가 타자 가씨도 같이 탔다. 선그라스는 6층을 눌렀다. 가씨는 7층을 누르려다 그냥 같은 층에 내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판단이 생겨 층수를 누르지는 않았다. 여자를 곁눈질로 보자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선그라스의 얼굴에는 뭔가 큰 일을 했다는 흐뭇함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6층을 알리고 선그라스와 여자가 먼저 왼쪽으로 갔다. 가씨는 오른쪽으로 일단 향했다. 그러면서 어디로 들어가는지 곁눈질로 보았다. 선그라스는 여자의 손을 끌고 ‘천지무역’이라고 되어있는 몇 년이 지난 듯하고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이는 명찰이 붙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가씨는 선그라스와 여자가 문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가던 길을 돌아서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잠겨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선그라스가 여자를 끌고 가느라 마음이 급했는지 주위상황을 별로 경계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문은 열렸다. 문이 열린 틈새로 사무실 오른편이 살짝 보였다. 생각했던 대로 낡은 책상만 몇 개 놓여져 있었고 일하고 있다는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유령회사의 사무실 같았다. 그리고 그 오른편 구석에 선그라스가 여자의 손목을 결박하고 의자에 앉혀놓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를 앉혀놓은 선그라스는 여자와 이야기인지 추궁인지를 모를 말을 시작했다. 선그라스와 여자의 얘기를 엿들어보니 여자는 선그라스에게 납치를 당한 듯 했다. 선그라스는 어느 조직 폭력배의 행동원이었고 여자는 다른 조직폭력배 보스의 정부였다. 선그라스의 조직과 여자의 남자가 보스인 조직간의 다툼이 있었는데 오랜 싸움 끝에 선그라스 쪽의 조직이 밀리게 되자 보스의 여자를 납치하여 전세를 역전시켜 보겠다는 생각이 깔린 납치였다. 가씨는 뒷목이 땡겨왔다. 그냥 화장실로 가서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조직폭력배의 이야기가 나오자 경찰에 신고할까하는 생각은 그만두었다. 여자가 경찰서에 들어가는 것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여자를 구해야 할까? 그러나 상대가 조폭이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고 여자도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니 자신이 꼭 상관할 필요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해야 할지 갈등이 일었다. 뒷목이 땡겨왔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뒷목을 주무르다 오늘 아침의 악몽이 생각이 났다. 불현듯 자신의 어릴 때의 일이 생각나는 가씨였다.

가씨가 7살 때의 일이었다. 가씨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소심했다.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주뼛거리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고 가씨의 소심함은 더해져 갔다. 가씨는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단독주택에서 살았는데 옆집에는 같은 또래의 예쁜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어린 가씨는 그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집도 바로 옆이었고 여자애가 착했기 때문에 소심했던 가씨를 잘 감싸주며 매일 같이 놀곤 했기 때문이었다. 둘은 매일 서로의 집에서나 집 근처의 여러 곳에서 같이 놀곤 했다. 그러던 하루는 가씨는 찻길 옆 인도에서 여자 애와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둘이서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찻길로 빠지자 여자 애는 공을 주우려고 찻길로 갔다. 그런데 그때 승용차가 여자 애 쪽으로 달려들 줄이야... 여자 애는 자신의 눈앞에서 공중에 떠올랐다가 땅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7살의 가씨가 뛰어들어 구해줄 수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뛰어들지는 못했더라도 소리라도 질러줄 수 있었지만 겁많고 소심했던 가씨는 벌벌 떨다가 몇 분 후 주변사람들이 목격하고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승용차가 사람을 발견하고 속도를 줄인 덕에 여자 애는 죽지는 않았지만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말았다. 휠체어의 여자아이를 한번 본 이후로 가씨는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극심한 자폐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이제 여자아이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고 더 잘 대해주리라고 생각했을 때 여자아이의 집은 어디론지 모를 다른 마을로 이사가버렸다고 했다. 그 이후 부정기적으로 가씨에게 악몽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악몽을 꾼 날이나 무슨 일인가로 고민이 심해지면 뒷목이 땡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여자를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가씨의 방은 사진 속의 여자들로 도배되어 갔다.

다시 옛날 일이 생각나자 뒷목이 더 아파왔다. 목을 주무르며 문 앞에서 계속 고민했다. 선그라스는 여자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순간 여자의 얼굴과 어릴 적 여자아이와의 얼굴이 겹쳐짐이 느껴졌다. 어릴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여자아이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여자아이는 하반신 마비가 되어 버렸으니. 뒷목이 땡긴다. 뒷목을 주무르며 가씨는 어릴 때의 기억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이 그 기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갈등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 자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왠지 이 여자를 구한다면 어렸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못해서 다친 여자아이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뒷목의 땡김이 약간이나마 진정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 생각할 것 없이 보스의 정부를 구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는 가씨였다.
주변에 무기가 될만한 것이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빌딩 복도는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빗자루 몽둥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로 가서 무기를 찾아볼까? 그러나 선그라스와 여자의 얘기하는 걸로 봐서 곧 선그라스의 조직 보스에게로 여자를 데려 가려고 출발을 할 듯 했다.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뒷목을 주물렀다. 심호흡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조금 열려있던 사무실 문을 활짝 열며 무작정 선그라스를 향해 돌진했다. 여자의 놀란 얼굴과 돌아보는 선그라스의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어깨를 숙여서 선그라스의 등에 태클을 하고 사무실의 오른편 구석으로 같이 쓰러졌다. 뒤를 당한 선그라스는 욕을 하며 허우적거렸다. 선그라스의 양팔을 붙잡고 몸으로 선그라스의 몸을 고정한 채 가씨는 여자에게 말했다.

“빨리 도망가요!! 빨리!!”
“어.....예, 예??”
“빨리 도망가라니까요!!”
“아....예!!”

여자는 2초간 멍해하다가 정신차리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을 결박당한 채 밖으로 도망쳤다.

“이건 뭐하는 새끼야!!”

선그라스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고있던 가씨에게 선그라스는 욕과 함께 팔꿈치로 명치를 때렸다. 두세 번은 견뎠지만 네 번이 넘어가자 선그라스의 손을 잡고 있던 가씨의 손이 풀렸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선그라스는 가씨의 목을 잡으며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 가씨가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온갖 상스런 욕들과 함께 선그라스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머리, 배 등을 집중적으로 맞으니 정신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죽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5분 여간 가씨를 차던 선그라스는 여자를 잡으러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사무실 밖으로 황급히 달려나갔다.
선그라스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가씨를 가격하던 발길질도 없어졌다. 발길질이 없어졌지만 가씨는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긴장이 풀렸고 그러자 온몸에 힘도 빠졌다. 옷은 발자국으로 더러워져 있었고 더러 찢어져 있었다. 더러 핏자국도 보였다. 발길질을 손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도 얼굴은 구석구석 뻘겋게 달아올라 곧 멍들 것 같았다. 그러나 뒷목의 땡김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씨는 힘을 짜내 기어가다 시피해서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들어섰다. 빌딩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날씨는 개어서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유리문을 향해 터벅터벅 힘없이 걷던 가씨는 걸어가는 중간에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졌다. 넘어져서 자세를 바꿔 대(大)자로 뻗어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귀찮았지만 전화를 받았다. 동료 나씨였다.

"어이, 10시에 온다는 사람이 12시가 넘었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
"음...나씨...? 나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묻는 말에는 대답 안하고 무슨 헛소리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눈부신 햇빛사이로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수위를 보며 가씨는 눈을 감았다.
.
.
.
그 후로 5일이 지났다. 가씨의 얼굴은 반창고 투성이었고 오른팔은 팔꿈치아래의 뼈가 부러져서 깁스를 한 채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나갔지? 그 날 하늘이 개인 오후, 가씨는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동료들과 상사들은 행려 꼴을 나타난 가씨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다들 물어봤지만 가씨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냥 퇴근하라고 했지만 일은 끝내야 겠다는 생각에 가씨는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 자판을 치려고 양손을 들려고 했을 때 오른쪽 팔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았다. 신음소리를 내는 가씨 옆에서 나씨는 빨리 병원이나 가라고 잔소리를 했다. 가씨의 몫이었던 몇 가지 검토를 끝내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다음날에 깁스를 하였다. 회사에서 원래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이틀동안의 휴가가 있었지만 가씨는 행려차림으로 나타나 버린 사건도 있고 해서 요양 차 3일 간의 휴가가 더 주어졌다. 병원 가는 것 이외에는 집에서 계속 빈둥거렸다. 휴가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가씨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고 뒷목의 땡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안에서 텔레비전은 혼자 떠들고 있었고 가씨는 멍하니 문 쪽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도망간 여자의 생각이 났다. 걱정이 되었다.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잘 도망쳤을까? 선그라스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여자는 선그라스에게 잡혀버렸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서 이어졌지만, 그냥 눈을 감았고 생각을 멈추었다. 팔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날이후로 악몽을 꾸는 일이 없었고 뒷목이 땡기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타자 마자 졸던 가씨는 네 정거정째 도착하자 흔들림 때문에 잠을 깨버렸다. 깨고 눈을 부비며 고개를 들고 정면을 멍하니 보았다. 그러다 잠이 확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반대편에 보스의 정부인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순간 얼굴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려는 걸 고개를 숙여 가까스로 수습하고 다시 얼굴을 들었다. 흰 투피스 정장 차림의 여자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씨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을 보니 선그라스에게 잡히지는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가씨가 팔에 깁스를 하고 얼굴 곳곳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어서 그런지 여자는 가씨를 못 알아보는 듯 한번 흘끗하더니 가씨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가씨는 약간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여자가 무사하니 그걸로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있는 정거장에 도착해서 여자의 옆을 지나쳐 지하철을 내리며 가씨는 생각했다.

‘난 구원받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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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Q84>에 대한 당신의 첫 인상은 무엇인가요?  

후배녀석이 두달 전쯤에 원서로 보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면서

<어둠의 저편> 이후로 오랜만에 신작이 나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번역본이 나온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2. 신작 <1Q84>에 대한 당신의 기대도는? 

가장 재밌게 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비슷한 구성이고 어느정도의 작품성은 보장되므로 꽤나 기대가 된다.  


3. 당신이 읽은 첫 하루키 소설은 무엇인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걸작선>이라는 이상한 작품집을 통해서. 장편은 집에 누나가 사놨던 <댄스댄스댄스> 


4. 첫 만남의 감상은 어땠습니까?  

참 독특한 비유를 쓰고 위트가 있고 자아를 중심에 두고 멋있어 보이는 가치관을 보여주는 남성 인물이 주로 나와서 멋지게 보이는 작품.  


5. ‘하루키’하면 떠오르는 등장인물은?  

여러 단편소설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연대기에 나오는 '나'  


6. 하루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설정이나 가장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두 세계와 그 세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설정.  


7. 장편 / 단편 / 에세이를 막론하고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작품을 꼽아주세요.  

<댄스댄스댄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8. 하루키 소설에서 만난 매혹적인 책, 음악, 영화는?  

레이먼드 커버의 단편집.  


9. <1Q84>를 추천해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친한 후배 K, 하루키의 최신작을 공유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10. 하루키에게 묻고 싶은 것(들), 혹은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당신이 답하고 싶은 것(들).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주제의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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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을의 끝자락인 날의 오후 11시 56분.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의 안에서 한 소녀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아사이 마리. 똘똘한 19살의 소녀이다. 주의깊게 책을 읽고 있는데 2년전에 언니인 에리와 더블데이트 상대였던 다카하시가 나타나서 아는 척을 한다. 그는 트롬본을 부는듯하다. 그는 트롬본연습 가기전에 마리와 약간 이야기 후 사라진다.

오후 11시 57분 아름다운 마리의 언니, 아사히 에리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2달째 조용히 자고 있는 그녀의 방에 있는 TV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

오전 0시 25분 책을 읽고 있는 마리에게 카오루라는 건장한 여자가 나타난다. 다카하시의 이야기를 듣고 왔대며 중국어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모텔로 따라간다.

마리는 이일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카하시와 친밀감을 더해가며, 에리는 자신의 방에서 사라졌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되돌아 온다.

 

우리말로 '어둠의 저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After Dark"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소설이다. 작년 9월인가 11월에 일본에서는 출판 됐고 우리나라에는 6월에 나왔다. 책이 뻔히 나온 것은 아는데 원서를 읽기는 무리인데 방희준씨 같은 사람이 원서 읽는 것을 부러워 하며 소개정도의 이야기나 듣고 있다가 번역본이 나와서 출판된지 한달만에 바로 샀다. 데뷔 25주년 기념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가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와 [해변의 카프카]에서 구체화 되었던 스타일, 그중에서도 시점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역자인 임홍빈씨의 지적대로 도스도예쁘스끼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과 비슷한 성격의 이른바 "총합소설"(하루끼자신이 명명한듯하다)을 쓰기위한 교두보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왜 [애프터 다크]일까? 제목의 실마리를 알 수 있는 부분은 다카하시가 트롬본을 불게 된 계기가 된 커티스풀러의 트롬본 연주곡 "파이브 스팟 애프터 다크"(Curtis Fuller - Five Spot After Dark)이다. 그리고 마리도 요즘 여자애 답지않게 그 오래된 곡을 알고 있다. 둘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소소한 계기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트롬본 특유의 푸근한 소리로 악상을 전개하는 재즈곡을 들어서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는 좀 어려운 것같다.

 

구성의 측면에서 봤을때 하루끼의 여타 소설보다 스케일이 많이 작아졌으며 밤 11시56분에서 시작하여 오전 6시 52분으로 끝나는 시간대별로 나눠놓은 구성이 이채롭다.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대신 등장인물간의 대화와 도시가 지니는 밤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이러한 성격은 소설의 참여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시점의 측면에서 보면 [스푸트니크의 연인]까지의 그의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성향이 강했다. 물론 개인의 심리라는 것도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영향을 받는 것이며 하루끼의 경우는 6,70년대 전공투 세대의 자기장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참여하려는 소설을 쓰지는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그런 사건에 자기장에 놓여있는 인물들의 자의식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탈사회적이면서 자의식강한 쿨한 개인이나 미지의 외부적인 힘에 의해 휘둘리는 개인의 이야기, 내지는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을 주는 개그물(단편의 경우-"패밀리어페어"나 "빵가게 습격" 등..)을 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대작 [태엽감는 새]에서 사회참여적인 면모가 약간 보이다가 지하철 독가스테러에 대한 르뽀집인 [언더그라운드]를 기점으로 현실참여에 대한 본격적인 모색을 한다.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서는 그동안의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내용 역시 참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오이디푸스 컴플랙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랄까?라는 정도의 내용을 당대 일본의 모습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도 어려졌다. 물론 영감님도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인 카프카는 15살.)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이 [애프터 다크]이다. 시점의 특징상 1인칭 시점은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한정된 시점이다.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3인칭 시점이 적합하다. 그 전까지 1인칭 시점의 사소설적인 측면의 스타일을 선호했던 하루끼는 지하철 독가스 사건이후로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점을 비롯한 기법에 대한 모색을 해왔다. 그리고 [애프터 다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애프터 다크]는 다소 유치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카메라 워킹의 기법을 빌린(하루끼에게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묘사기법이 좀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다.)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다. 서술자의 도시에 대한 묘사와 등장인물간의 사건 및 대화를 통해 도시의 이면, 즉 밤의 모습을 해설없이 보여주기만 하면서 독자들에게 의미를 찾기를 권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을 볼때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타 작가들은 다루지 않았던 도시의 밤의 특성을 살피고 그것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중국인 접대부를 난폭하게 폭행하는 번듯한 회사원, 알 수 없는 존재에 쫓겨서 이름도 감추고 도망치며 살아가는 고오로기, 미디어에 노출된 관음증의 대상이라는 상징으로 등장하는 에리, 여자프로레슬링 스타였다가 세상살이 요령이 없어 빈털털이가 됐다가 러브호텔 경호원을 하는 카오루, 어떻게 샐아야 할지 자신의 삶을 혼란스러워하는 다카하시와 마리 등의 인물들이 겪는 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 내지는 병리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 해결책은? 번역본에 실린 권택영선생의 감상노트에 실린 의견대로 그 해결책을 원형적인 측면에서 찾는 듯 하다. 원시시대에 외부의 무서움을 함께 꼭껴안는 것으로 이겨냈듯이 점점 원자화 되어가고 비인간화되어가면서 잠재적인 위험이 많아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리와 에리를 통해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오로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 삶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애프터 다크]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좀더 스케일이 큰 애프터 다크를 쓸 것이라 생각한다. 시공간적 배경을 좀더 크게 잡으면서 여러 인물들의 다층적인 이야기가 얽히는([애프터 다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히는 측면은 약하다) 소설을 발표하리라 예상한다. 시점은 당연히 3인칭을 고수할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작품세계의 변모를 봤을때 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끼의 간만의 신작 장편소설 [애프터 다크]는 그의 현실참여적인 성격으로 작품세계가 변화해 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며 그에 따른 기법 상의 변화를 도시의 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실험하는 작품이라 정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간의 연대나 기억을 힘으로 살아가자는 정도의 주제의식은 여타 만화나 애니메이션, 소설에서 많이 봐온 것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는 주제이지만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상징적으로 제시를 하는 서술 방식과 같은 변화를 꾀하면서 여전히 하루끼 소설 본연의 읽는 맛을 살리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대는데(놀랍게도 하루끼는 읽을 수록 재밌는 글은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댄다. 어떻게!?) 그건 다시 읽고 생각해 봐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아쉬운 점은 권택영 선생의 감상노트를 읽어버려서 스스로 의미를 찾기전에 남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 버렸다는 점이다. 역시 글쓰기 전에 그런 감상글이나 분석글은 피해야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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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예술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곽재구 글, 정정엽 그림 / 열림원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곽재구 시인이 예술의 향취를 찾아서 발걸음을 옮긴 기록들의 모음이다. 주로 문학작품과 관련된 것이고, 화가와 음악가에 대한 내용, 진도 소리에 대한 내용 등으로 채워져 있다.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란 초월적, 탈현실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과 지난함 사이에서도 오는 것이며,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욕구가 가득찰 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시인은 이야기하며 그 발자취를 따라 간다.

 

예술 기행이다 보니 자신이 시를 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듯한 젊을 때의 여행기나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흥미로웠으며 글부분, 부분에서 위 문단에서 제시한 시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특히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과 자신의 기행을 바탕으로 정립된 예술관이라는 것은 그의 관점에 신뢰성을 높여준다.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달까?

 

풀밭에 누워 자잘한 야생화와 풀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하늘의 별에서, 나이든 소리꾼의 얼굴에서, 동료 소설가의 치열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시인의 시선이 부럽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문학적 열정으로 문인들의 발자취나 우리 땅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거리낌 없이 떠나며 느끼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 부럽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을까? 난 그 가능성을 믿는다. 귀가 얇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을 접하면서 나부터도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현실적인 감각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여러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름답지 않을까?

 

혼자 가지 않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시인이 이야기한다.(진정한 여행은 배낭여행이고 솔로일 때 가는 것이 진짜고 그 이후는 관광이라고 이야기한 친우 박지환군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앞으로 우리 고장의,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찾아 생각날 때 목표정하고 혼자 발걸음을 옮겨봐야지라는 다짐을 한다.

 

 

제목 : 곽재구의 예술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 지은이 : 곽재구 / - 출판사 : 열림원 / - 출판년도 : 2003
- 분류 : 산문/에세이/논픽션 → 기행/답사
- 차례
작가의 말
미조 포구에서의 짧은 하룻밤의 기록
 - 이성복의 남해 금산을 찾아서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의 끝 
 - 섬진강 화개 장터에서 김동리의 '역마'를 회상하며
선운사 골짜기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 서정주의 질마재 마을을 찾아서
다시,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과 금강을 찾아서
변혁기 지식인의 두 초상 
 - 공재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을 찾아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의 고향을 찾아서
소리가 밥이고 소리가 사랑인 사람들
 ― 진도 소리를 찾아서 1
그리운 통영 바다
 ― 윤이상의 고향 충무를 찾아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박인환의 시를 위한 몇 개의 회상
운두령에 핀 노란 들꽃
 ―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봉평에서 운두령까지
열애처럼 쏟아지는 끈적한 소설의 비
 ―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장흥을 찾아서
극락이 으디 별거드냐 우리들 마음 속이 극락이제
 ― 진도 소리를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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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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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는 마콘도라는 마을에 정착한다. 그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2세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를 낳고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아우렐리아노가 머리가 커질 무렵 나라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고 아우렐리아노가 자유파의 편을 서며 내전의 선봉을 서면서 역사적인 격랑으로 빠져들어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라고 할 수 있다. 아우렐리아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인물이면서 내전의 소용돌이에 17명의 엄마가 각기 다른 자식들을 남기며 자유파 내전 진영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 하지만 죽기전에나 자신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죽어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그 자리를 이어간다.

 

이 작품은 부엔디아 가문을 둘러싼 100여년 간의 흥망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며 보여준다. 제목과 같이 서술의 중심에 놓이는 여러 인물들은 젊을 때에는 어떻게 지냈든 노년에는 삶의 부질없음을 꺠달으며 고독 속에서 늙어간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덜 된 상태의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어떤 정치적인 혼란을 겪었을지 마콘도의 흥망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하는 자유파와 사회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을 의미하는 공화파는 대립하며 자유파는 전쟁을 선언하여 공화파와 투쟁을 벌인다. 내전은 번번히 자유파의 패배로 끝나지만 나라에서 그 세력은 커져가고, 거듭되는 혼란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화파 인사들은 자유파 인사들을 영입해가며 내전을 마무리해간다. 그 이후에 미국에서 바나나 농장이 들어오고 그들이 마콘도의 노동력을 착취하자 마콘도에서는 쟁이가 일어난다. 하지만 오랜 투쟁 끝에 설립된 정부는 쟁이를 반란으로 간주하고 기관총 난사로 응대한 뒤 그 일은 사실이 아니라는 여론조작을 통해 수습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로 믿는 덜 의식화된 시민들의 모습까지!) 4년간 지속된 장마로 바나나 농장의 사업주들이 철수하자 흉흉한 마을로 변해버리는 마콘도. 그리고 거대한 회오리에 모든 것이 날아가버린다. 이러한 마콘도의 역사가 마콘도 마을이 생겨날 당시에 멜뀌아데스라는 집시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1세의 집에 남겨놓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문헌에 그대로 적혀 있는 내용이라는 점은 암시적이다. 즉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기 때에 겪었을 혼란과 제국주의의 침략, 그 후의 피폐함을 소설 중의 마콘도라는 마을에 한정짓지 않고 남미 여러 나라들로 확대시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소설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남미의 소설을 잘 접해보지 않았고 그 쪽 문화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작품을 읽으며 여러가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남미쪽 사람들은 부모들의 이름을 좀 심하게 이어받는다는 점이라든가 그들의 의식주, 종교적인 의식, 도덕관 등 총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고 할까. 물론 이 작품 하나 읽고 남미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지만 내가 그런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이 대하 역사소설로 그들 자신을 잘 알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밌으면서도 약 100여명의 이름이 비슷한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중 1/3이상은 그들에 대해 상세히 저술되기 때문에 좀 버거우면서 정신없는 측면도 좀 있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면, 소설의 초반에는 현실과 환상이 섞인 초현실적인 면-날아다니는 양탄자, 죽은 자가 다시 나타난다든지 하는 설정-을 보여주다가 아우렐리아노가 서술의 중심에 왔을 때는  사실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고, 후반부에는 다시 조금은 환상적이면서 퇴폐적이랄까, 묵시록적이랄까 그런 분위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자가 남미의 설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과거를 환상적으로 제시하고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침략이 시작되는 근대를 사실주의의 수법으로 제시하여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볼륨이 빽빽한 글씨에 500장이나 되서 읽기에 만만하지는 않지만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재밌게 읽힌다. 서사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복잡한 플롯을 가지지만 그것을 버릴 내용없이 꼼꼼하게 엮어나가고 그것에 더해 자신의 민족에 대한 역사적인 통찰과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 본연의 고독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만드는 작가의 뛰어난 역량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방학 때 엄마 가게일 도와드리는 와중에 내 심심함을 타파해준 작품이다. 여러모로 읽어서 득이 되는 작품이니 독서를 권장하며 책을 선물해준 선영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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