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가 살아 있어.

쿨쿨쿨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4
다시마 세이조 글 그림 / 보림 / 2008년 7월

숨 쉬는 모두가 잠든 모습을 캘리그라피로 표현한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

 

어릴 적 그물 침대에서 자보는 게 소원이었다. 왠지 둥실 떠 있는 기분일 것 같기도 하고, 그네마냥 흔들 흔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한번도 그물침대에 누워본 적은 없지만, 아직도 그런 동경이 남아 있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그물 침대에 누워 낮잠 한번 자보면 재밌겠다, 고.

<쿨쿨쿨> 표지를 보면 아이가 그물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눈은 감고, 입은 벌리고 말이다. 열개의 발가락이 동글동글해서 무척 귀엽다. 그물 침대가 매어 있는 나무도 재미있다. 별로 잎사귀가 무성하지도 않은데 잎사귀가 두개씩, 열매도 두개씩 짝을 이뤄 나 있다. 모두 아이에게 향해 있어 조명을 비추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늘을 만들어줄 요량인 것 같기도 하다. 동글동글한 느낌이 편안함을 준다. 흰색 물감을 섞어 표현한 그림들은 '잠'이라는 소재와 잘 어울린다. 

뒷표지를 보면 더욱 재미있다. 옥수수 나무에 그물 침대를 걸어 놓고 거미 한마리가 누워 자고 있다. 8개의 다리 중 두개를 팔배게 삼아 누워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것은 글씨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림책에서 글이 가지는 의미가 아니라, 글씨 자체가 그림인 셈이다. 그래서 글씨를 통해 작가가 나타내려는 의도는 그림 못지 않다. 색깔과 모양, 배열로 잠을 자는 동물들의 특성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한발을 들고 서서 자는 홍학은 글씨 배열을 세로로 하고 분홍색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림과 비슷하게 윗부분은 크고, 가느다른 다리마냥 나머지 부분은 작게 표현했다.

거꾸로 매달려 자는 박쥐는 글씨도 아래에서부터 거꾸로 배열. 꼬불꼬불 양은 '쿨쿨쿨

이라는 글씨들을 한데 모아놨다. 양의 털과 '쿨'이라는 글씨는 고불거리는 것이 굉장히 비슷하다. 호박도 잠을 잔다. 울퉁불퉁 커다란 쿨쿨쿨이 옆에 보인다. 물밑 모래밭에서 잠을 자는 뱀장어는 글씨도 길게 늘어져 있다. 파란 색에 물감 방울 흔적이 남아 있어 방금 글씨를 손으로 쓴 것 같은 착각이 생길 정도다. 장난감통에 있는 장난감들도 잠을 잔다. 방 어딘가에 흩어져 있을 다른 장난감들인지 여기 저기 '쿨쿨쿨' 글자가 흩어져 있다.

그 다음은... 글자와 정체모를 어느 한부분이 나오므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데, 그건 바로 코끼리의 코였다. 거대한 코끼리답게 코를 앞 장에 내어놓고, 자고 있는 게 너무 재미있다. 글씨도 정말 크다.

마지막 도롱이벌레(인줄 몰랐다. 거미인 줄 알았넹...책 설명을 보고 알았다. 이름을 알고 나니 이름에 적합한 수면자세가 아닐 수 없다.)귀엽게 자고 있다. 글씨도 작고 귀엽다.

그림도 물론 재미있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만, 자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글씨를 보는 게 더 재미있다. 쿨쿨쿨이라는 글씨를 막 깨우친 연령대가 보면 정말 재미있겠다.

우리 딸이 만 두돌인데, 글밥이 제법되는 그림책도 잘 듣고 있지만, 이 그림책은 그런 의미를 잘 못느껴 처음에는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편안한 느낌과 글씨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더니 제법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다. 머나먼 이야기겠지만, '쿨쿨쿨'이란 글씨를 제일 먼저 깨우치지 않을까 싶다. 

 
속표지에 가득한 쿨쿨쿨이란 글씨. 책 설명을 보니까

쿨쿨쿨 vs ぐうぐうぐう
원래 이 책에는 ‘쿨쿨쿨’이라는 한글 대신 ‘ぐうぐうぐう(구우구우구우)’라는 히라가나가 담겨 있었습니다. 2006년 여름, 다시마 세이조는 한국 방문길에 이 책의 한국 출간을 직접 타진했고, 1년여에 걸쳐 캘리그라피 작업을 다시 진행했습니다. 한글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을 그에게 한글 캘리그라피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자음, 모음, 받침으로 이루어진 한글의 특징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고쳐 쓰는/그리는 작업을 되풀이해야 했습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그림책 속에는 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1년여에 걸친 불면의 시간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쿨쿨쿨 - <세계걸작그림책 지크> (보림 네이버 카페) |작성자 주주마미

라고 한다. 다시마 세이조의 글씨 연습장 같다. 자세히 보면 똑같은 글시가 하나도 없다. 저마다의 굵기와 색깔, 모양으로 글씨가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인쇄한 글씨와 다른 생명력있는 글씨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