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학을 나왔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내가 하는 것이 예술이 맞는지.
소설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영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묻는다. 소설이나 쓰다니, 대단한 일이라고, 자기는 상상도 못해 봤다고 한다. (요즘은 한강 같은 작가 되는 거냐고도 많이들 물으시던데...... 한강 선생님 같은 작가는 못될 것 같다) 가끔은 소설을 써 보는 게 일생의 꿈 중 하나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나는 아주 반가워한다. 이거 별거 아니라고, 한 번 써 보십사 한다. 가벼운 권유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소설 쓰기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만 관찰과 논리를 더 중요하게 여길 때가 많다. 본질적으로는 성실함을 요하는 육체 노동에 가깝고, 때문에 산문을 쓰는 사람은 숙련공 같은 면을 갖추게 된다.
이게 예술이 맞나? 누가 공인하는 것도, 인정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술은 계속해서 폭이 넓어지고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충분히 그래야한다. 분명히 그렇게 믿지만, 내 얘기로 돌아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쓰는 소설...... 예술이 맞나?
그래픽노블 『이것이 새입니까?』 는 브랑쿠시의 작품 <공간 속의 새Bird in Space>를 둘러싼 재판을 다룬다. 브랑쿠시의 조형 작품이 진정한 의미의 예술 작품이 맞는지, 실용품인지를 가르는 재판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이란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지를 따져 묻게 된다. 브랑쿠시의 작품은 특별히 조형 예술품이기에 이와 같은 질문들이 따라붙었다. 이 '새'는 유일한 버전인가? 이 '새'는 작가가 직접 제작했는가? 사실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지금 아는 예술에 비추어 보면 다소 낡은 질문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이라는 것의 폭이 그 사이 더욱 넓어졌다는 뜻일 테다.
아름다운 삽화로 채워진 고운 책을 덮은 뒤, 실제 브랑쿠시의 작품을 검색해 보았다. 성실하게 그려진 대로, 아주 미끈하고 아름다운 새 조형이었다. 사실 나는 사진을 보고 좀 당황했다. 너무 새 같아서. 이걸 어떻게 새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사람들 참 보수적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소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대항하고, 이것이 왜 예술인지를 일련의 논리를 설득시키는 작업은, (다소 빡칠 수도 있지만) 예술을 수행하는 작업자 본인에게도 중요한 의미라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예술적 행위를 이루는 중요한 근간이니까.
책에서 다루어진 에피소드는 브랑쿠시의 새를 예술적 새로 인정했지만, 내게는 이런 질문이 남았다. 숙련공으로 사는 삶과 예술가로 사는 삶이 그리 다를까? 소설가는 예술가가 맞는가? 잘 모르겠다. 이 까다로운 중노동을 나는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