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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라이프·디자인
기디언 슈워츠 지음, 이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평점 :
독립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LP를 몇 장 선물받았다. 주로 아낀다고 오래 말해왔던 음악가들의 앨범이었다.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어 본 적 없던 내게 LP 선물은 꽤 낯선 것이었는데, 큼직한 아트워크와 흠이 잘게 나 있는 동그란 판의 존재, 이것이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니 재생할 수 있다니, 그 신묘한 사실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었던 것 같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과 스포티파이만 있다면 못 들을 노래가 없는 2024년에, 이런 아날로그라니.
아마 그들이 내게 LP를 선물했던 건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였겠으나, 내게 LP를 가진다는 건, 내가 이제 독립된 공간을 정말로 가졌다는 뜻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LP를 모으고, 턴테이블을 들이고,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처럼. 진정 음악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내게 생긴 것이다.
내게 LP와 턴테이블은 오디오 시스템과 더불어 가장 사치스러운 취미 중 하나고, 그건 공간의 문제와 너무도 직결된다. 나는 아름다운 공간을 방문하거나 소비하고, 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떤 공간을 구경할 수는 있지만, 내가 발견한 모든 아름다운 공간를 소유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방법을 취해 볼 수는 있다. 어떤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다. 그것을 들으며, 이곳이 이곳이 아니고 그곳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음악에게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음악은 알 수 없어 이상한 것, 전환하는 아름다운 것이니까.
<턴테이블, 라이프, 디자인>은 에디슨의 축음기에서부터 탄생한 턴테이블의 변모와 역사를 차근히 조명하지만, 거기에서만 그치지는 않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에 음악이 녹아든 방식, 그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디자인까지를 다룬다. 이 책이 단순히 기술의 발전과 역사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할 뿐더러 아름다운 점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여느 예술이 그러하듯 음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겠지만,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알았다. 그리고 이 가치가 더 많은 사람에게 향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여러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발명과 발전을 거듭하게 했다.
디자인과 기술이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방법은 어떤 가치를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것에 가깝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내게 음악을 듣는 것은 단순한 감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과 원치 않는 사람들의 존재감으로부터 연약한 스스로를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스포티파이로 전세계의 플레이리스트를 자유롭게 건너뛰고 가로지르며, 이곳이 이곳이 아니고 그곳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애써 발휘했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음악으로 인해 보호받고 있다 느꼈다. 어떤 음악은 그 시기의 피폐까지 함께 재생시킨다. 그 시기에 좋아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뼈가 욱신대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 시기를 음악으로부터 보호받았다. 당신의 힘든 시기도 그러하기를. 무엇으로부터든 당신이 위로 혹은 보호를 받기를, 열망하는 타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디언 슈워츠의 『턴테이블, 라이프, 디자인』, 이 아름다운 책은 출판사 을유문화사 에서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