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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자연스럽게 - 좋아서 찍는 내 사진의 즐거움과 불안, 욕망
황의진 지음 / 반비 / 2024년 4월
평점 :
찍을-찍힐 자유, 내 사진을 '고르는' 자유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나는 줄곧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풍경과 분위기와 낯선 질감들을 담고 싶어 내내 마음이 바빴다. 한참 사진을 찍다가 집중해 동행인들을 놓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내 사진을 찍을 여유는 별로 없었는데,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는 그들을 뒤따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내가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해졌구나, 하는.
그럼에도 여행이 아닌 현실의 어떤 때에는 셀카... 를 찍는다. 꽤 자주 찍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많이 찍는 걸까? 오늘은 별로 예쁘진 않은데? 설마 내가 나르시스트? 같은 생각이 여전히 든다만은.... 그래도 뭐, 좀 찍는다고 닳는 얼굴도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이기는 요즈음이다. 이 책을 읽던 기간 내내, 내가 생각보다 더 자주 카메라 앱을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잠금화면을 오른쪽으로 가볍게 스와이프하는 동작은, 무의식 중에 숨쉬듯 일어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건, 솔직히 표현하자면, 좀 짜치는 일이다. 나의 외모가 어떻게 보이고 평가되는지를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각종 외모 강박과 식이 장애, 운동 중독, 알코올 중독을 두루 경험했고, 이제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만은 성불할 때 됐다 싶은데도,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한다니. 가끔은 나 스스로가 구질구질해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내게 셀카 찍기란.... 산뜻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쉬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진은 타인에게 공유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그럴 수 없고, 내가 좀 좋아 보였으면 좋겠고, 여전히 나는...... 이 말이 진짜 짜치는데, 예쁘고 싶다.
이 책과 함께하는 기간 동안 내 사진을 찍는 일은 조금 다르게 인식되었다. 이 복잡한 마음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 볼 가치가 있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기뻤다. 특히, 책에서 작가가 언급한 ‘내 사진’의 정의는 꽤나 흥미로웠다. 내가 찍건, 내가 찍지 않건 상관없이 ‘내 사진’이 될 수 있다는 명명. 그것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선언처럼 여겨졌다. 나만이 내 사진이 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을 허용하고 선택할 수 있다. 오로지 나만이 그것을.
사진의 폭력성과 자유로움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내게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사진이라는 것이, 나는 아직도 재미있다. 아직도 재미가... 있다. 이 여러 생각들이 나쁘기만 한 생각은 아니고, 오히려 이 일이 아주 즐겁고, 나는 여전히 그것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싶다.
황의진의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이 아름다운 책은 출판사 반비에서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