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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좋으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 향과 사랑에 빠진 조향사가 들려주는 향의 세계
정명찬 지음 / 크루 / 2024년 4월
평점 :
이토록 향기로운 이야기
향기로운 것을 찾아 헤매이던 어린 때엔 문구점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거기서 나는 이것저것, 예쁜 것이라면 주저 않고 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향기나는 미피 형광펜이나 고체 향수처럼 향기가 나는 것들을 제법 모았다. 지금도 기억날 만큼 아꼈던 것은 프리지아향의 고체향수다. 그건 피부에 바르는 작고 납작한 향수였는데, 초록색 플라스틱 병 위에 하얀 프리지아 다발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은 나머지 아끼고 아끼느라 실제로 바른 적은 별로 없었고, 그냥 주머니에 그걸 넣고 다니면서, 언제고 체온으로 뜨듯해진 그것을 꺼내어 만져 보곤 했다. 가끔은 뚜껑을 열어 내 코에만 맡아질 만큼 슬쩍 향을 맡고는,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걸 맡는 순간만큼은 꼭 다른 곳에 가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어른 비스무레한 것이 되었고, 예전에 비하면 더 비싼 향수를 살 수 있는 나이다. 이십 대 초반에는 향수를 꽤나 모았다. 여행 다닐 때마다 한 병씩 사 모으며, 이건 그때 그곳에서 샀던 것, 이건 어떤 사람과 맡았던 것, 하며 기억했던 것이 떠오른다. 지금은 새 향수를 많이 모으지는 않지만 여러 병 썼을 만큼 아끼는 향수가 생겼고, 계절이나 기분에 따라 다른 향수를 찾고, 사람들이 ‘네 향’이라고 불러 주는 어떤 향을 갖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맡아 본 적 없는 향수를 만나면 발걸음이 멈춘다. 여전히 어떤 향을 찾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를 다른 곳에 다다르게 해 줄 것만 같은 매혹적인 향을.
이 책은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여러 향조들의 이름과 실제 유명 향수 브랜드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작가가 향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는 태가 역력히 나는 글이어서 그렇다. 이 작가는 엄청나게 감각적인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꺼내온다. 감각에 의존해야 말할 수 있다고 알았던 것들이 작가의 입에서 술술 흘러 나온다. 어떤 느낌이냐 하면, 향은 만질 수도 움킬 수도 없는 것인데, 나는 그전까지 꼭 그런 줄 알았는데, 작가가 그 실체가 없어 보이는 ‘향’이라는 것을 내 앞에 데리고 와 앉혀 놓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다. 이 향이 그래서, 어떤 향이냐면요...... 하면서.
작가가 이렇게 쓸 수 있는 이유는 글솜씨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가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과의 독서는 친절하고 달콤한 시간이었다.
이 책의 챕터 중에는 <아는 만큼 맡는다> 라는 부분이 있다. 매일 후각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향기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무언가를 알아가고 익히는 일이 내가 아는 세계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면, 향기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우리가 감각에 대해 더욱 잘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정명찬의 『향기가 좋으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 아름다운 책과 퍼퓸 스프레이는 출판사 크루 @ksibooks와 이토록 @yitorok_fragrance 에서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