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 마을의 클린하우스(쓰레기 처리장)에 감시원이 붙었다. 아마 주변 상가의 사람들이 고용한 듯싶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승용차에 앉아 있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우리 내외도 몇 번 제지당했다. 우선은 불편하고 성가셨다. 노인이 뭘 알지? 누가 그에게 저런 권한을 주었지? 불쾌하면서도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분리수거를 보다 철저히 하게 되고 폐휴지를 바르게 펴서 묶어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바쁜 날은 짜증이 나서 그와 다투게 되었다. 우리만 다투었겠는가. 그는 어느 날 슬그머니 사라졌다.작가 김광식은 《경비원 일기》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다툼과 갈등의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양상이 너무 복잡해서 누구도 쾌도난마 식의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는 단지 모든 문제에서 대립으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양자적 측면에서 균형을 취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주민과 경비원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입장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갑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서로 협조하는 공생의 관계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 위에서 유기적 관계로 얽혀 있는 공생의 존재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모든 것들이 리싸이클링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쓰레기도 가능하면 리싸이클링되어야 하듯이 인간 관계도 가능하면 선순환되어야한다. 나의 오늘의 선행이 곧 이웃의 내일의 선행이 되고 이웃의 오늘의 악행이 나의 내일의 악행이 될 수 있다. 선행과 악행은 순식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작가는 노년에 들어선 경비원이다. 작가는 오늘도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로 고심한다. 그가 고심한만큼 지구 환경은 좋아질 것이다. 나비효과가 왜 파괴적인 측면으로만 작용하겠는가?나는 작가의 이 작은 책자가 우리 사회에 희망의 불길을 당겨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인은 쓰레기장에 버려질 존재들이 아니다. 노인의 유머와 해학은 오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지혜의 빛이다. 몸은 비록 흙이 될지라도 지혜는 계속 선순환될 것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철로 위에서 외칩니다."나 돌아갈래!"그 외침이 어찌 설경구 한 사람만의 외침이겠습니까? 누구나 한 평생을 살다보면 가슴에 恨이 쌓입니다. 그 恨은 한편으론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가끔 뒷골방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울고 계셨습니다. 철없는 아들은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광만 부리다가 먼 길 떠나신 뒤에야 엄마 가슴 속에 품고 살아온 恨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을까요. 평생 소용돌이치는 여울목을 억척스레 건너온 엄마의 인생을 이제 望八의 나이가 되니 조금 알 것 같습니다. ㅡ 「엄나무 가시」에서엄나무 가시는 무척 억셉니다. 어린 새순을 지키기 위해서죠. 저는 이 작품을 읽고 엄나무가 왜 '엄'나무라 불리우는지, 망팔의 작가가 어머니를 왜 굳이 '엄'마라고 부르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가난에 찌들고 척박했던 고향이 왜 천국처럼 느껴질까요? 지금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 시절 그 사람들이 간절히 그리운 걸까요? 가슴에 간절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 그리움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 지금도 부모를 그리며 울고 있는 사람, 작가 안규수는 그래서 영원히 어린 영혼, 순수한 영혼입니다.그래서 그의 글은 항상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