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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로크 13 - 크로노스의 덫 편
히지리 유키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공중파에서 단 한 번, 한편만 방영해 줬을 뿐인데, 지금 20대후반 정도 된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니매이션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하나는 '지옥의 외인부대(에어리어 88)'였고, 하나는 이 '초인로크'였다. 요즘처럼 보고싶은 애니메이션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아이들이 볼 만화가 많은 때도 아니었다. '메칸더V'나 '그렌다이저'정도가 '수준높은 액션씬'이었던 시대에 '초인로크'의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씬, 피가 난무하는(!) 영상,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승리하고 나서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결말 등등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숟가락 구부리는 정도나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초록색 삐죽머리 소년 하나가 백대 1(;)의 전투를 벌인 뒤 피 철철 흘리면서 우주기지 전체에 바리어를 치고 가스행성으로 돌진한다는 전개는 참으로 상상초월의 스케일이었다.
아무튼 로크는 말도 안 되는 초능력자다. 늙지도 죽지도 않고, 마음만 먹으면 별도 파괴시키고, 우주공간을 숨도 쉬지 않고 날라다니고, 어느 공간이든 텔레포트해서 나타나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적의 기술은 흡수해버리고, 나이도 제멋대로고, 변신도 하고 성별까지 바꾼다. '설마, 당신이 그... 초인로크?'하는 한 마디로 사건 종결되어버리는 에피소드도 많다. (이 대사는 사실, 에피소드마다 한번씩은 등장한다)
하지만 로크는 자신의 힘에 도취되는 일도 없고, 원해서 싸우는 일도 없다. 초능력자를 두려워하는 인류에 의해 핍박받지만 원망하는 일도 없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투가 끝나면 다시 어느 행성엔가 쳐박혀 조용히 밭을 갈고 있거나, 예쁜 여자가 있는(...) 집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들어가 앉아 평범하게 살아간다.
'넌 누구지?'
'...인간이야.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까지 많은 곳으로 가서 많은 일들을 해 왔다.
올바른 일을 한 적도 있지만, 잘못을 저지른 적도 있었지.
가볍게 시작한 일이나 무책임한 일... 감정에 못 이긴 적도 있어.
가령 천년을 산다고 해도 인간은 인간... 이다. 그 이상의 것은 될 수 없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들 뿐이야.'
'초인로크'시리즈는 저자가 고등학교 때 그리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리고 있는 초장편서사시다. 원래 동인지에 연재된 것이었는데, 워낙에 다음 편을 그려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뜨거워 계속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편리한 설정을 따라 수백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가 장대하게 펼쳐진다. 과학은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벌어지고, 한 시대의 주인공들은 죽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태어난다. 초능력자, 클론, 사이보그, 우주전쟁, SF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설정은 골고루 등장한다.
옛날 그림체를 용서해 줄만 하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1편에서 4편까지 추천한다. 스토리도 훌륭한데다, 작화퀄리티도 훌륭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