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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하릴없이 노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도덕경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산 책은 해석이 없이 도덕경 원전만 있는 작은 책이었는데, 책을 읽고 난 뒤에 내게 남은 것은 당혹감뿐이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는 한국어이되 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무식함을 탓하며 이번에는 해석서를 사 보게 되었다. 해석서를 사 본 뒤에도 당혹감은 여전했다. 해석본마다 해석이 틀린 데다 원문의 번역마저 완전히 다른 경우도 허다했다. 노자의 도덕경이 워낙에 애매한데다 워낙에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르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여러 권을 사서 비교하며 보게 되었는데, 무엇하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이 책 바로 이전에 읽은 책은 외국에 사시는 분이 해석한 것으로, 꽤 유명한 출판사의 꽤 유명한 분이 쓰신 책인데도 불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동양사상을 서양사상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으니, 그나마 동양인인 내 입장에서도 이게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그분은 은연중에 ‘노자의 사상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뻔한 사실을 알고 싶어 도덕경을 읽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나는, 도덕경을 제대로 보려면 노자의 가르침을 진실로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산 사람의 해석본을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어하며 거의 기대 없이 서점을 돌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장일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강원도로 이사 와서 살게 된 뒤에야 들은 이름이다. TV에서도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름이건만 원주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 그게 부처의 삶이다’라는 신념으로 일생 원주를 떠나지 않은 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원주 사람들이 원주의 예수님이라고 불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처음에는 웃었다. 어디 살아있는 사람에게 감히 예수님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그런 가당찮은 경우가 있나.
하지만 그 뒤로 듣게 된 그 분의 일화들은 모두 평범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원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든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류가 이분에게서 비롯되었다든가, 하지만 한번도 이름을 내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든가. 무슨 일이든 이분에게 가면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해결이 되더라든가. 한번은 역에서 돈을 잃은 아주머니가 이분을 찾아와 울며 돈을 찾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이없는 일인데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장일순씨는 역에 나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역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근방의 소매치기들의 행동반경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람을 찾아내어 돈을 돌려주게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가끔 그를 찾아가 ‘내가 자네 밥벌이를 방해해서 미안하네.’하고 술을 사곤 했다고 한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화다.
장일순이라는 이름에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이 아무개’라는 저자 이름에는 또 의아해했다. 대체 누가 필명을 이따구로 짓는단 말인가.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누가 기억할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몇 장 넘기다가 ‘이 아무개’가 이현주씨라는 것을 또 놀라고 말았다. 왜 이 유명하신 분이 이런 필명을 쓰시나 싶었다. 이런 이름이면 사람들이 책을 들었다가도 ‘뭐야, 이름도 없는 사람 꺼잖아.’하고 도로 내려놓아버리지 않겠는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이것이 참으로 도덕경에 어울리는 필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장일순씨다. 이렇게 도덕경을 아무 어려움 없이 앉은 자리에서 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해주실 줄 아는 분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상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것은 하나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처럼.
이 책은 장일순씨과 이현주 목사님, 두 분이 노자의 도덕경을 두고 나눈 대담을 이현주씨가 기록한 책이다. 두 분이 노자를 두고 몇 달인지 몇 년인지 알 수 없는 시간동안 나누는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술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 분은 개신교인이고 한 분은 천주교인이라 간간히 성서 해석도 등장하는데, 그 역시 놀랍기 그지없다. 만약 모든 크리스챤이 이런 종교관을 갖고 살아간다면 종교분쟁 따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일순씨가 책이 완성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후반부는 이현주 목사님이 ‘자신의 안에 있는 장일순씨와’ 대담하여 썼다. 장일순씨는 ‘네가 쓰는 것이 내가 쓰는 것이다’라며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라고 하셨다고 한다. 피아의 구분이 없으신 분들, 참으로 노자스러운 두 분이 아닌가.
노자를 공부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공연히 저 멀리 중국 분이나 저 옛날에 살던 분들의 해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셨던, 그리고 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책이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감히 뭐라 토를 달기도 부끄러운 책이다.
잊혀지지 않는 장일순씨의 말씀 한 토막 올려놓겠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라는 건 말야, 뭐냐 하면, 그게 전 우주적인 사건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