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 자폐인의 내면 세계에 관한 모든 것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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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는 ‘어둠의 속도’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갑작스럽게 무엇인가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20세가 몇 해 지난 그제야 비로소 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유치원에 다닐 때 나는 학급 친구들이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그들에게 맞지 않아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밤 처음으로 나는 내가 진정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폐인이다. 나는 특수한 사람이다! 170p
- ‘어느 자폐인 이야기’, 템플 그란든 저 중에서 -

자폐인에 관한 책을 하나씩 찾아보게 된 것은 ‘어둠의 속도’ 덕분이었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거쳐 여기까지 와서, ‘템플 그란든’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인 ‘루’와 템플은 여러가지 면에서 닮았다. 그 둘은 자폐인이며, 자폐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고, 둘 다 아주 똑똑하며, 자신과 남들이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어리석은' 일반인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다.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괴로워하는 대신 자신이 특별하고 하나뿐인 존재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루는 가상의 인물이고, 템플은 실재하는 사람이며, 루는 소설적 상상력에 의해 치료를 받았다면, 템플은 자신의 의지와 부모와 선생님,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노력으로 치료받았다(굳이 표현하자면, 사실은 일반인의 생활방식을 학습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는 사실일 것이다. 특히, ‘어둠의 속도’를 읽으면서 의심스러워하며, ‘정말로 자폐인이 이럴 리가 없어. 이건 소설이잖아. 픽션이라고. 작가가 멋대로 상상한 거겠지.’하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다면 또 반드시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감동받으신 분이 있다면 또한 ‘어둠의 속도’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만약 내가 이 책(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을 먼저 보았다면, 마찬가지의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자폐라는 증상이 알려진 뒤로, 자폐에 관한 전문서적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세계 최고의 학자들이 수많은 자폐인을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도 많다. 하지만 그 어떤 책도, 이 책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는 바이다. 생각해보시라. 아무리 많은 한국인을 만난 외국인이 쓴 책이라고 해도, 한국인 자신이 쓴 책에 미칠 것인가. 아무리 많은 애완동물을 길러 본 사람이 쓴 책라고 해도, 동물 본인이 키보드를 두드려 쓴 책에 미칠 것인가. 자폐인과 일반인의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 더욱 더 동물과 인간의 관계와도 같을 것이다. 얼마 전에 동물에게 마음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온갖 과학논리를 끌어대어 주장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단언컨대 자폐인에게도 똑같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자폐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장애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그 증상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엇에 고통받고 무엇에 안정감을 얻는지 알아내기 어렵다. 오랫동안 전문가들이 자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도 용서해 줘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통역서다. 언어로 치면 2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두 언어를 비교해 놓은 책이라고나 할까. 자폐인에 관한 가장 상세하고 전문적인 책이며, 또한 그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쓰여진 책이다. 동정도 편견도 없이,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회적 상호 작용이 자폐인에게는 엄청나게 힘든 일일 수 있다. 어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끌어 줄 본능을 타고 나지 못한 동물과 같았다. 시행 착오를 통해 배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좋은지 파악하고 그렇게 행동하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항상 어딘가 어색했다. 어떤 사회적 행동이든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납득이 가지 않았다. 164p

자폐인에게 현실이란 사건, 사람, 장소, 소리와 형체가 서로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거대한 덩어리 같은 것이다. 뚜렷한 경계나 질서, 의미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어떤 패턴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데 보냈다. 정해진 일과나 시간, 특정한 양식이나 형식 같은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삶에 어느 정도 질서를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92p


혹시나, 템플은 정말 특수한 경우고, 그는 정말 비상한 천재였고 자폐 증상은 아주 미약해서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다. 하지만 템플의 다른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보면, 템플의 자폐증상 역시 심각했으며, 때로는 정신지체로 분류되기도 했고, 다른 자폐인처럼 보호시설에서 살 가능성까지 충분히 있었다. 그가 유명한 동물학자가 된 것은 좋은 부모와 좋은 선생님이 있었던 탓이다. 설사 템플과 비교할 수 없이 아주 상태가 나쁜 자폐인이라 할지라도, 아주 약간의 이해만 주어진다면 최소한 그전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해는 자폐인이 아니라 일반인이 가져야 하는 것이고, 이 책은 그런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와주는 책이다. 그리고 사실 내 생각에, 가장 방치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약한 자폐를 갖고 있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을 위한 사회적인 장치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자폐인에 관한 깊은 애정과 사랑으로 쓰여진 책이다. 템플은 동정심을 원하지도 않고 불행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자폐인의 특성 탓에, 자신이 오늘날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자폐가 없으면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고. 그는 일에 몰두하는 자기 자신을, 남들과 다르게 사고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손가락을 튀기면 자폐가 치료된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지금의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템플 그란든의 이전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와 같이 읽으시기를 권한다. 그 책은 이 책을 먼저 읽은 다음에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이 자폐인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면, ‘어느 자폐인 이야기’는 템플 그란든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좋은 책이지만, 저자의 자폐증상이 그리 호전되지 않았을 당시에 쓴 글인 관계로,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점이 더욱 감동이다. 두 책을 같이 읽는다면, 저자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책에 감동하셨다면 세 번째 책인 ‘동물과의 대화’까지 이어서 봐 주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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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 갈매기의 꿈 - [초특가판]
리차드 크레나 외 출연 / 월드디지털엔터테인먼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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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샀다가 아주 당황하고 말았다. 맙소사,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전문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이 뜻이 그 뜻이었구나! ... 어린왕자는 백 번쯤은 읽었겠지만 갈매기의 꿈은 한 번 읽고 제쳐 두었었다. 안그래도 무한 경쟁에 찌들어 사는 불쌍한 어린이에게 이게 또 무슨 망발이람 싶었다. 날긴 뭘 날아.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리고 '갈매기의 꿈'이 추천도서에 오를 때마다 삐죽거렸다. 뭔가 저항하는 독후감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거로군. 내게 추천해준 어른들 역시 전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이고. 나는 지금까지 이 이야기가 쓰레기장에서 고기 남들보다 좀 더 많이 먹으라고 가르치는 것인줄 알았다.

어째서 읽고도 몰랐단 말인가!
무슨 갈매기가 빨리 날다 못해...
... 빛의 속도를 초월하여 날아 시공간을 넘고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날며 우주를 비행하다가 삶과 죽음마저 뛰어넘는단 말이냐! .... 전혀 몰랐다. 갈매기가 은하계를 날고 있는 장면에선 아주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가 '로봇'이나 '해피피트'로 이어지는, 남들과 다른 존재가 동족에게 추방당하여 고난당하다가 결국 선지자가 된다는 이쪽 애니메이션 구조의 원형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 장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비롯하여 닐 다이아몬드의 음악도 멋드러진다. 내내 노래가 흐르는 관계로 뮤지컬스럽기도 하다.

단지, 주인공이 계속 다른 놈이 된다 ^^;;  몸 색이 계속 미묘하게 변한다. ... 옛날 영화라 요즘 같은 애니메이션 효과나 특수촬영을 기대할 수도 없고, 살아있는 갈매기의 연기력을 기대하기도 힘들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눈부신 비행의 풍경만으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3000원도 안 하는 가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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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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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 읽은 기분은, 앞부분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고, 내내 굉장한 감명이 몰아쳤다. 

책은 '나'(루)가 누구인지 제시하지 않은 채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서술은 기괴하다. 그는 사람의 표정과 언어를 하나하나 해석하고, 외국어 번역하듯이 번역하고, '예.','아니오'따위의 답변을 수업받은 것을 떠올리며 내놓고, 주차장의 차가 무슨 색이 몇 대인지 세고 복도 타일의 패턴과 잘못 놓여진 타일의 숫자에 집착한다.

이 세계는 자폐증 치료제가 획기적으로 개발되어 자폐증이 뿌리뽑혀진 시대로, 주인공 루는 치료제가 발전하고 있던 중간 정도의 세대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아예 치료를 받지 못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세대와도 다르고, 유아기에 치료받아 거의 정상인처럼 살 수 있는 세대와도 다르다. 그는 학습에 의해 일상생활을 영유하지만, 여전히 정상인의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에 혼란스러워하는, '자폐인의 시선으로' 정상인의 세계를 보는 사람이다.

이 책은, '만약 자폐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또 글로 쓸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전문적인 책들보다 진지하게, 심도있게, 또 깊은 애정을 갖고 자폐인의 정신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루의 눈에 보이는 '정상인'의  세상은, 원주민들이 문명인을 보는 시선만큼이나 혼란스럽고,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고, 어리석고, 한편으로 자폐인보다 더 병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다.

 

저자는 책 뒷편에 자폐증을 설명하는 데에 몇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가 서술했다시피, 이십세기 말 ^^까지만 해도 자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완전히 잘못 이해되고 있었다. '말아톤'에서 선언문처럼 등장하는 "자폐는 병이 아니라 장애예요."라는 관념은 최근에나 확립된 것이다. 이전에는 정신분열증 비슷한 것으로 생각되었다(지금도 네이버 지식인을 찾으면 이 관념이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정신지체와도 다르다. 자폐의 3분의 1은 정상인과 같거나 그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다. 자폐와 우리의 차이는 근원적으로 타인과의 관계형성과 소통방식의 차이다. 자폐의 정도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는 그런 세간의 몰이해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어떤 사람은 이들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바보로 생각한다. 그저 '정상인이 아닌' 정도로만 인식하고 단순히 배척한다.

루의 눈으로 본 정상인의 세상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자폐인들에게는 이러저러하게 관습적인 규칙을 지키라고 하면서, 사실 자기들은 그러지도 않는다. '정상인'들은 루를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들도 그런다. 자기들은 합리적으로 사고한다고 누누히 말하면서, 또 그러지도 않는다. 자폐인 루는 '정상인'들의 그런점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말할 때 주의를 기울이고 들여야 하고, 대체로 그렇게 하게 훈련했다. 식료품점에서 사람들은 때로 답을 기대하지 않고, 답을 들으면 화를 낸다.(113p)
정상인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는 가끔은 명백하고, 가끔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196p)
나는 정상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조리 있는 패턴에 언제나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255p)
나는 느끼지 않을 때에도 관습적인 말을 하도록 배워야 했다. 그것이 적응하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크렌쇼 씨에게 적응하라고, 함께 어울리라고 말한 적이 없을까?(182p)

이야기는 새로운 약이 개발되고, 이 신약의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루의 직장 상사가 강제로 자폐인 직원들에게 이 신약을 시험시키려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체실험대상'은 되지 않겠다는 이유로 저항하던 루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에 빠진다. '나는 낫고 싶어하는 것인가?'

만약 치료를 받으면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나를 버려야 할까? 무엇때문에 정상인이 되어야 할까?'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자기 혼자서 살아갈 수 도 있다. 그런 그에게 계속 '너는 비정상이므로 우리와 같아져야 한다. 치료받아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정상인들이다. 자신이 낫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낫기를 바라는 것이다.

치료를 받을 것인가, 받지 않을 것인가. 현재의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타인과 같아져야 하는가 고뇌하는 책의 뒷부분은, 장애인에 대한 안일한 시각을 갖고 있던 소위 '정상인'의 두뇌에 연이어 충격을 준다.

어쩌면 정상과 비정상이란 단지 다수와 소수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실상 우리들은, '본능'을 두고 '정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모습이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불규칙하고 제멋대로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정상'이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정확한 규칙과 논리에 따라 살고 있는 자폐인의 눈으로 보는 그런 인간세상의 모습은 괴상한 문화를 가진 외계행성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정상이 어떤 느낌일지 알지 못해. 정상인들이라고 모두 행복해보이지는 않아. 어쩌면 정상인으로 살기란, 자폐인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쾌할지도 몰라."(427p)


SF적인 설정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사실 '루'는 미약한 자폐를 겪고 있는 사람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사람들은 충분히 세상과 섞여 살아갈 수 있다. 방해가 되는 것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상인의 편견과 몰이해다.

노력과 행동은 다르다. '돕고 싶다'는 것은 '돕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만이 의미가 있다.


루는 자신을 '돕고 싶다'고 말하는 상사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 상사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안다. 그가 '돕겠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SF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심리, 특수교육, 사회복지 기타 등등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그 중 두 가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더욱 필독. 다 관심없어도 필독(...) 혹시 발달장애나 자폐를 가족이나 주변인으로 두고 계신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애쓰시는 분들께 더욱 추천합니다. 설령 일생 같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익숙해지는 것과 정말 이해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일생보다 이 책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는 사실에 창피해하고, 또 감사하며.

(살짝 창피하지만 ^^ 이 좋은 책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리뷰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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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범우 사르비아 총서 638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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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작처럼 번역서가 수십권은 되는 책은 늘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난감해지게 됩니다. 번역은 표지나 책 소개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 서점에서 직접 뒤적거려 보는 수밖에...

'데미안'에 관해서는 저는 이 책을 사랑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80년대쯤) 이분의 번역으로 처음 데미안을 접했기 때문에, 다른 책을 보기 어렵네요. 최근에 다시 사려고 온갖 '데미안'을 뒤적거렸는데, 결국 이 책을 다시 사게 되었습니다.

주관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제 인생에 함께 해 주신 번역서에 감사하며 리뷰 하나 남겨 놓습니다. 데미안은 문장이 많이 어려운 편이라, 번역서를 신중하게 고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취향에 맞는 번역서도 또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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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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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하릴없이 노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도덕경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산 책은 해석이 없이 도덕경 원전만 있는 작은 책이었는데, 책을 읽고 난 뒤에 내게 남은 것은 당혹감뿐이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는 한국어이되 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무식함을 탓하며 이번에는 해석서를 사 보게 되었다. 해석서를 사 본 뒤에도 당혹감은 여전했다. 해석본마다 해석이 틀린 데다 원문의 번역마저 완전히 다른 경우도 허다했다. 노자의 도덕경이 워낙에 애매한데다 워낙에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르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여러 권을 사서 비교하며 보게 되었는데, 무엇하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이 책 바로 이전에 읽은 책은 외국에 사시는 분이 해석한 것으로, 꽤 유명한 출판사의 꽤 유명한 분이 쓰신 책인데도 불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동양사상을 서양사상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으니, 그나마 동양인인 내 입장에서도 이게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그분은 은연중에 ‘노자의 사상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뻔한 사실을 알고 싶어 도덕경을 읽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나는, 도덕경을 제대로 보려면 노자의 가르침을 진실로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산 사람의 해석본을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어하며 거의 기대 없이 서점을 돌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장일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강원도로 이사 와서 살게 된 뒤에야 들은 이름이다. TV에서도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름이건만 원주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 그게 부처의 삶이다’라는 신념으로 일생 원주를 떠나지 않은 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원주 사람들이 원주의 예수님이라고 불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처음에는 웃었다. 어디 살아있는 사람에게 감히 예수님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그런 가당찮은 경우가 있나.

 하지만 그 뒤로 듣게 된 그 분의 일화들은 모두 평범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원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든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류가 이분에게서 비롯되었다든가, 하지만 한번도 이름을 내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든가. 무슨 일이든 이분에게 가면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해결이 되더라든가. 한번은 역에서 돈을 잃은 아주머니가 이분을 찾아와 울며 돈을 찾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이없는 일인데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장일순씨는 역에 나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역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근방의 소매치기들의 행동반경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람을 찾아내어 돈을 돌려주게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가끔 그를 찾아가 ‘내가 자네 밥벌이를 방해해서 미안하네.’하고  술을 사곤 했다고 한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화다. 

 장일순이라는 이름에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이 아무개’라는 저자 이름에는 또 의아해했다. 대체 누가 필명을 이따구로 짓는단 말인가.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누가 기억할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몇 장 넘기다가 ‘이 아무개’가 이현주씨라는 것을 또 놀라고 말았다. 왜 이 유명하신 분이 이런 필명을 쓰시나 싶었다. 이런 이름이면 사람들이 책을 들었다가도 ‘뭐야, 이름도 없는 사람 꺼잖아.’하고 도로 내려놓아버리지 않겠는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이것이 참으로 도덕경에 어울리는 필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장일순씨다. 이렇게 도덕경을 아무 어려움 없이 앉은 자리에서 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해주실 줄 아는 분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상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것은 하나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처럼.

 이 책은 장일순씨과 이현주 목사님, 두 분이 노자의 도덕경을 두고 나눈 대담을 이현주씨가 기록한 책이다. 두 분이 노자를 두고 몇 달인지 몇 년인지 알 수 없는 시간동안 나누는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술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 분은 개신교인이고 한 분은 천주교인이라 간간히 성서 해석도 등장하는데, 그 역시 놀랍기 그지없다. 만약 모든 크리스챤이 이런 종교관을 갖고 살아간다면 종교분쟁 따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일순씨가 책이 완성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후반부는 이현주 목사님이 ‘자신의 안에 있는 장일순씨와’ 대담하여 썼다. 장일순씨는 ‘네가 쓰는 것이 내가 쓰는 것이다’라며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라고 하셨다고 한다. 피아의 구분이 없으신 분들, 참으로 노자스러운 두 분이 아닌가.

 노자를 공부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공연히 저 멀리 중국 분이나 저 옛날에 살던 분들의 해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셨던, 그리고 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책이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감히 뭐라 토를 달기도 부끄러운 책이다.

잊혀지지 않는 장일순씨의 말씀 한 토막 올려놓겠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라는 건 말야, 뭐냐 하면, 그게 전 우주적인 사건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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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6-01-2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저도 무위당이 누굴까 궁금증만 가지고 있거든요.

소나무집 2006-01-2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 사상을 주장한 선생은 김지하 씨와도 깊은 인연이 있고, 생협 운동을 시작해 한살림을 설립하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