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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라는 부제를 단 유현준 교수의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었다. 수 세기 동안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탄생했고, 이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융합시켜 변종과 혁신을 만들어 냈다. 유현준 교수는 이 책에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가 건축을 전혀 모르는 내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네 전체가 마을로 불려지던 곳.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푸르렀지만, 탄광촌이라 산 한 면에는 버려진 석탄이 가득 쌓여 있었고, 그 덕에 읍내를 가로지르는 또랑가에도 검은 물이 흐르던 곳. 내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이 곳을 공간이라 생각한 건 그 곳을 떠난 후 부터였다. 마치 사랑이 끝나고 그게 사랑이었다고 알게 된 것일까. 무엇이 있던 곳. 나를 둘러쌌던 무언가가 내 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도시에 살면서 공간에 대한 개념이 넓어졌다. 지하철도 있었고, 출퇴근 시간에 6차선을 가득 메운 자동차들, 한 번도 본 적 없던 30층이 넘는 건물들이 서울 하늘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내가 살고 싶은 곳에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던 데에는 유현준 교수의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이 기대되는 건 내게 참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부제가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였기 때문에 2016년 『생각의 미래』를 번역한 내겐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총 408페이지. 모두 받아들일 생각은 접었다. 이 책을 읽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만 발견해도 만족스럽겠단 생각을 하며 책을 폈다.
잘 모르는 분야의 텍스트를 읽을 때, 이 텍스트를 쓴 이유와 목적을 말해주면 좋다. 설명이 없다면 유추해 볼 수도 있지만, 건축처럼 잘 모르는 분야는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게 내게 더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발생하고, 서로 다른 생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융합되고 어떻게 생각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지 추리해 보는 책이다. 이 추리의 과정에서 건축의 빈 공간의 특징은 중요한 물질적 단서와 증거가 된다.'
유현준 교수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부터 미래까지 아우른다. 혼자 생각해보기 어려운 광범위한 공간에 대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9가지 질문을 마주쳤다.
1. 왜 건축물의 빈 공간을 보아야 하는가?
2. 왜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는가?
3. 첫 도시가 만들어지는 데 왜 6000년이나 걸렸을까?
4. 동양은 왜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5. 도자기는 어떻게 서양의 문화를 바꾸었는가?
6. 공간의 융합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7. 학문간 융합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8. 코로나19는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꾸는가?
9.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의 내용을 토대로 내 마음대로 재구성한 질문들이다. 이 중 두 개의 질문에 대해서만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조금 옮겨보겠다.
1. 왜 건축물의 빈 공간을 보아야 하는가?
'건축은 어떻게 시간을 뛰어넘어, 시대가 다른 사람 간에도 소통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걸까? 건축 공간이 시간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빈 공간이 주는 시각적 3차원 정보는 다른 어느 예술이나 문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같이 건축물의 빈 공간은 건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사 전달 수단이요, 특징이다. 그래서 이 같은 빈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했느냐가 문화적 성격의 특징을 규정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서양 문화권의 공간은 벽으로 구획된 기하학적인 모양의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간은 기둥으로 만들어져서 빈 공간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각각의 문화는 독특한 빈 공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p. 25-26)
9.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은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조적 변화는 멈추게 된다.' (p. 396-397)
내게 새로운 생각이 필요할 때, 공간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이 책을 펼쳐볼 것 같다. 지금 내게 중요한 공간은 내가 일하는 공간, 내가 사는 공간, 그리고 내가 달리는 공간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간과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아마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공간이 어떻게 힘을 가지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앞으로 공간은 어떻게 변할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의 제목이자, 이 텍스트를 끝까지 읽은 당신에게 중요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당신의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2020.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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