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영광, 그리고 이상 키드의 한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정좌를 하고 책상의자에 앉는다. 평소에는 타이핑할 때만 쓰던 책받침대에 책을 놓고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넘겨 읽는다. 항상 배경 음악은 없다.

이것이 나의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 대상 수상작을 읽을 때, 코스이다. 존경의 표함과 필사의 다짐을 위해... 즉, 공부하며 읽는 것이다.

 

모든 코스는 깨질 때가 맛이라는 말도 안되는 법칙을 만들고 6시를 넘긴 회사 책상에서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읽었다.

배경음악은 starsailor의 alcoholic

 

아무래도 이 단편은 김연수가 산책하듯 쓴 소설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척척. 언제나 앞날개에 적힌 심사평들을 읽으면 주눅들기 마련인 여러 장치들이 무색해질 만큼 어딘가 모르게 문학의 절정이라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은 지나치게 '하루키적'이다. 하루키적이라고 한다면 우리 작가들의 한계이고 그의 한계이고 나의 한계인 것 같다.

 

언제나 문학과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텍스트를 서사에 갖다붙이기를 '천재적으로' 즐기는 김연수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을 활용)세 번을 읽어도 최윤 '하나코는 없다'의 서사의 완벽성과, 은희경 '아내의 상자'의 존재론적 비극성과, 정미경 '밤이여, 나뉘어라'의 흡입력과, 김훈 '화장'의 문학적 처절함과 삶의 허무에는 다다르지 못한 장치였다. 몇 년 전부터 이상문학상이 여성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가는 것을 심사위원들이 참을 수 없었나 보다(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에 대한 김연수의 애정'만큼 '김연수에 대한 나의 무한 애정'으로 이 작품을 해부해 보자면,

처음 읽었을 때 잡아내지 못한 '코끼리'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와 제목 그대로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 대한 공감이 있어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코끼리' 한 마리를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으며 '산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산다.

 

1. 짧은 시간에 척척

2. 코끼리도 재울 수 있으며

3. 침대에서는 잠만 자고 섹스만 하고

4. 결국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며

5.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김윤식 선생님의 심사평이 없었다면 나는 김연수의 '백악기적 상상력' '신생물학적 상상력'에 닿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설은 나중에 읽었기에) 산책하듯 짧은 시간에 한 작가의 단편을 척척, 그것도 코끼리(고통이라 할 수 있는 장치, 설명하기도 구차하다)를 재우지도 못하고, 침대에서는 책을 읽다 잠을 자고 섹스는 다른 곳에서 하고, 혼자서 길을 걷는 시간이 적으며,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 따위는 만나지 못하고 사는 내가 무슨 평인가 싶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우리 좀 걸을까요?"란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며 막상 걷기 시작하면 다리가 아프기 전까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책에 굶주린 듯 '걷는 행위'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안개뿐인 소설 속에서 작가 윤후명처럼 웅숭깊은 사유를 이끌어 내기 위해 나도 오늘부터 더 많은 산책을 할 것이다. 우수상 수상작에 대한 평은 다음으로 미룬다. 

짧은 시간에 척척.

그가 산책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 문장 때문이었다. p14

 

언제나 메타포는 하나의 문장이다.
(이것이 천재들의 전유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다)

 

by ego2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