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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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초판1쇄 발행: 2018.03.20, 183p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우리는 단 한순간도 똑같은 존재일 수가 없다. 지금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나는 매순간 변화하고 있다.' 와카마쓰 에이스케가 이 글의 끝머리에 남긴 말이다. 실은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에서 공부하고, 취업을 해 일하고, 2주 간의 시간 동안 재충전(?)하고, 또 다시 일하기까지의 내 과정들을 보면 나는 한 사람으로 수렴되었다가 또 다시 여러 면의 나로 분할되어 왔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나로 완성되어왔고, 또 오늘까지의 나를 수렴한 다른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갈 것이다. 미래의 내가 계속해서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작가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글을 쓰기까지 한 사람으로의 몫을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치밀어오르는 두려움, 그리고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슬픔을 차례로 겪어 왔다. 물론 이 말고도 그가 겪어온 다양한 일들과 감정, 읽었던 책과 다녀보았던 여행지들이 그를 더 풍성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내가 아주 특별한 일을 겪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일상적이고 편안한 감정들을 풀어놓고 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나 읽었던 책들의 인용, 누군가의 말들을 우리에게 하나의 주제 하에서 짧은 산문으로 풀어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 세상은 의미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될지도 모를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알고 보면 우리가 만들어낸 의도와 계획일지도 모른다. / '낮고 농밀한 장소', 24p

 

 

 

그는 한 권의 책 안에서 총 스물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전부는 아니지만 그 책에 담겨 있는 메시지 중 하나는 '작품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독자는 작가가 쓴 글을 읽고 자신만의 해석을 보탬으로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존재이며, 작가와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그 내용을 적용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말을 다시 해석하면... 책을 쓰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모두 의미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A라는 내용을 썼지만 그 내용이 여러 독자를 거치면서 A, G, H, Z 등 다양한 모양으로 바뀌는 일. 천편일률적인 삶은 없고 백이면 백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면서 살아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면면을 대할 때-가령 책을 읽을 때, 이야기를 나눌 때, 구글링 할 때-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말'이 주는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말. 더없이 의좋았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실의에 빠져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말. 한편으로 건강했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없던 병도 만들게 하고, 반대로 나을 수 없을 것 같던 병을 치료하게도 하는(플라세보 효과처럼) 말. 이러한 비슷한 이야기는 책 속 인용구에서도 나온다. 철학자 이케다 아키코의 '말의 비의에 대한' 인용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의료가 아니라 말이다. 종교도 아니며 그저 말이다. - 이케다 아키코(池田晶子), 『전부 당연한 것이다』

/ 각오에 대한 자각, 69p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이 역시 <슬픔의 비의> 안에 언급된 작품이다.

 

영감님에게는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영감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은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하지요. 즐거움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감님의 그 힘은 말이나 얼굴 표정처럼 하나하나가 사소한 거라서 숫자로 합계를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얻은 행복은 재산 한 몫을 떼어준다고 해도 살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죠. -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912~1870), 『크리스마스 캐럴』

/ 신뢰의 눈길, 99~100p

 

 

 

이런 말에 대한 인용들은 우리가 순간순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상처 입히기도 하는지 떠올리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섭고 그를 곱씹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용기의 원천이 되기도, 폭력이 되기도 하는 말.

더불어 우리는 손을 베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체하거나 하는 몸의 고통에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푹 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유난스럽기까지 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마음의 문제에는 무감한 사람들이 많다.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일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다시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어서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이 힘들고 사람에 북받치고 한계에 한계를 쥐어짜내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실은 상처입은 근원부터 돌아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힘들다. 성찰은 힘든 일이지만, 더 이상 상처를 곪게 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 번 더 느낀다. 아프기 때문에 상처를 곱씹고 헤집는 일은 괴롭고 또 외롭지만 그 과정을 통해 다시 용기를 내 타인에게 손 내밀기도 하고 나 자신을 독려하며 내일을 살아나갈 수 있다. 절실히 혼자 같은 순간이 있지만 실은 그 고독도 꽤 달콤한 순간이라는 걸 겪고 나면 안다. 작가가 말하는 나와의 조우는 바로 이러한 통찰에서 온다.

 

 

 

"내가 고독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나의 생존과 의지에 권위와 축복을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을 붙잡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 기시다 류세이( 岸田劉生, 1891~1929)

우리의 인생은 고독을 느끼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고독을 느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생의 비밀과 조우한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심으로 타인과 만나는 것도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고독의 경험은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과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를 인류라고 하는 영역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 고독을 붙잡는다, 118~119p

 

 

 

육체적인 아픔은 고통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치유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몸의 신호이기도 하다.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비통함'이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가끔은 치유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인생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괴로움을 바라볼 줄만 알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간과한다. 눈물은 심신이 휴식과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눈물을 흘렸을 때 비로소 자신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슬픔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눈물은 가르쳐준다. 고바야시 히데오는 '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슬픔과 눈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슬픔을 가라앉혀 보려고 육체가 눈물을 필요로 하듯이 / 슬픔에 대해서 정신은 슬픔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말' (『생각하는 힌트』에 수록)

/ 저편 세상에 닿을 수 있는 노래, 4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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